[Review] ‘콜로노스’는 실재할 수 있는가 - 연극 출입국사무소의 오이디푸스

글 입력 2024.04.23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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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오이디푸스. 그는 자기 눈을 찌르고 신들의 땅 콜로노스로 향한다. 콜로노스의 시민들은 그가 저지른 악행을 이유로 그를 거부한다. 오이디푸스는 그들에게 애원한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건 자기 뜻이 아니었다고, 자신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고.


본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본국을 떠나온 그 어느 곳에서도 환대받지 못하는 자. 연극 <출입국사무소의 오이디푸스>는 이 시대의 오이디푸스, ‘미등록체류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서로 다른 사연을 지닌 미등록체류자들. 그들은 모두 출입국사무소 내 외국인 감호소에서 본국으로 추방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연극은 산발적으로 그들의 제각기 다른 사연을 펼쳐 보인다. 평생 가꿔온 삶의 터전이 한순간에 사라졌기에, 나를 보호해야 할 국가가 나를 위협했기에, 가난이 지긋지긋했기에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사람들. 쫓겨나듯이 고국을 떠나온 이 오이디푸스들은 이곳에서 ‘난민’, ‘이주노동자’, ‘불법체류자’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 나라는, 그들에게 결코 ‘시민’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언제, 어디로 쫓겨날지 알지 못한 채, 기댈 곳 하나 없이 그들은 언제까지나 이방인으로, 그렇게 부유한다.

 

 

포스터_출입국사무소의 오이디푸스.jpg



1. 농장에서 일하는 남자는 종종 댐을 보러 간다. 그는 댐 너머의 강을 보며 고향 생각을 한다. 그의 고향은 물에 잠겨 없어졌다. 그곳의 사람들은 신이 노했다고 말했지만, 그녀의 아내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신이 노한 게 아니라, 해수면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사는 나라들이 곳곳의 나무를 베고, 경쟁하듯 이산화탄소를 뿜어댔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녀는 너무 잘 알았다.


남자는 아내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지구상에 어떤 나라도 기후난민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는, 그리고 우리가 평생 살아왔던 이곳은 그저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사례로만 이용될 거라고. 하지만 평생을 일궈온 삶과 그 터전을 잃는 건, 모든 것을 한순간에 빼앗기는 건, 그들 눈앞에 놓인 현실이다.


2. 난민 심사관이 윽박지르듯 묻는다. 왜 말을 하지 않는 거냐고. 위협적인 이 심사관 옆에 서 있는 여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말을 하지 않으면 난민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럼에도 여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녀는 결국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소수민족으로 본국에서 박해받았던 그녀는 숱한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 그녀는 이웃 나라 보호소로 탈출했고, 그곳에서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 그 나라는 여성의 임신중절을 금지했다. 자살 시도가 있었고, 그녀는 말을 잃었다.


출입국사무소에서 그녀는 그저 간절하지 않은 사람으로 간주된다. 난민 심사관의 손에는 이미 그녀 이외에도 난민으로 인정받고 싶은 수많은 이방인들의 간절함이 들려 있다. 그는 그녀에 대한 서류를 맨 뒷장으로 빼내고, 다른 이방인의 서류로 눈길을 돌릴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똑같이 왜 이곳에 왔는지 대답하라고 할 것이다.


3. 자신을 위협하는 고국으로부터 빠져나온 여자. 출입국사무소에는 그녀의 언어를 통역해 줄 수 있는 통역가가 없다. 결국 그녀가 구사할 수 있는 또 다른 언어의 통역가가 배정된다. 그녀는 자신이 난민 신청을 하게 된 이유를 전하고, 통역가는 그걸 통역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녀는 자신이 한 모든 답변을 부정한다. 그리고 대뜸 가난한 고국을 떠나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전한다. 그녀는 자신이 한 말이, 그리고 그 통역이 조사관에 의해 모두 조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녀는 1인 시위를 벌이고 단식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자신의 억울함을 알아달라고 외친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냐, 똑같은 이야길 반복해서 하는 게 입 아프지 않냐는 말에 답한다. 들어주기만 한다면 몇 번이고 말할 수 있다고.


4. 불법체류자 신세가 된 남자. 그는 단속반을 피해 밤에만 일을 한다. 밤에 일을 하고, 아침이 되면 자신의 공장에서 불과 여덟 걸음이 떨어진 컨테이너 숙소로 향한다. 여덟 걸음, 고작 여덟 걸음이다. 그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는 자신에게 친절한 이주노동자가 언젠가 이 여덟 걸음을 걷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모두 다른 사연으로 고국을 떠나 이곳에 왔다. 이곳에서도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다른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심사라는 이름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자기 증명, 질문이라는 이름의 무례함, 그리고 국가라는 이름의 보호막이 없는 자신을 향한 일상적인 적의와 하대. 그들은 부당함에 항의할 수 없었고, 억울해도 말할 곳이 없었으며, 그런 자신들의 이야길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고국에서 버림받고, 어느 곳에서도 환대받지 못한 오이디푸스들의 서러움과 분노, 소외감과 외로움은 무대 위에서 그들의 역동적인 동작으로 표출된다. 그들을 옭아매는 현실을 상징하는 듯한, 삼면이 철창으로 둘러싸인 무대가 배우들의 에너지로 가득 찬다.


연극은 오이디푸스 신화와 현실의 출입국사무소 이야기를 교차해서 보여준다. 비현실적이고 오래된 신화 이야기로 극은 관객의 현실과 멀어지는 듯싶다가도, 이내 ‘현실의’ 오이디푸스들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온다. 그 전환의 순간마다 우리는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현실의 오이디푸스들이 외고 있는 어려운 비자 명처럼, 이것이 그 어떤 이야기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복잡한 세상과 밀접한 이야기임을.


외면하고 싶어진다. 인간사에서 벌어지는 모든 슬픔이 만들어낸 비참한 사람들을.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지만, 내가 속하지 않은 어떤 세상,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그 세상에서 분명히 존재하며 살아가는 어떤 사람들을. 미등록체류자들을 돕는 한국인 활동가는 큰 절망감과 무력감에 빠져 일을 그만둔다. 인간의 잔혹함과 그로 인해 야기되는 절망, 슬픔, 비참함으로부터 눈길을 돌리고 싶은, 내가 ‘시민’일 수 있는 안온한 세상에 언제까지고 머무르고 싶은 그 마음을, 너무나 이해한다.


하지만 이 여섯 명의 오이디푸스들은 그러한 관객의 마음을 알기나 하는지, 관객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며 묻고 답한다. 본국에서 있었던 일들과, 그곳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자의로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연극의 마지막, 오이디푸스들은 무대 맨 앞에 일렬로 서서 관객들과 눈을 맞춘 채,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말한다. 일순간 콜로노스의 시민이 된 관객들은 묵묵히 오이디푸스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결국 오이디푸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필요한 건 소통이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질문을 했다면, 그 답변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만 오이디푸스에 대한 오해를 풀고, 그를 이해하며, 그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 연극은 오이디푸스와의 진정한 소통을 통한 수용을 말한다.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는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자신을 받아준 콜로노스에서 오이디푸스는 생을 마감한다. 테세우스는, 오이디푸스를 받아들인 콜로노스는 어디에 있는가. 수많은 현실의 오이디푸스들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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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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