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는 서로에 대해 온전히 알 수 있을까 - 실종법칙 [공연]

글 입력 2024.04.20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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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극 <실종법칙>의 결말에 대한

강력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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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서 승진을 앞둔 유진. 그녀가 휴대폰을 꺼놓고 행방불명된지 24시간이 지났다. 유진의 언니 유영은 유진의 오래된 남자 친구 민우를 의심한다. 평소 민우에 대해 꺼림직한 느낌이 들었고, 실종되기 하루 전날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유진의 고백을 들었기 때문이다. 민우의 범죄에 대해 강한 심증을 가진 유영은 민우의 자취방을 찾아가 문을 두드린다. 해가 들지 않는 눅눅하고 컴컴한 민우의 반지하방. 그곳에서 마주한 두 사람은 날 선 대화를 이어간다. 그리고 생각지 못한 진실이 하나둘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번 달 10일부터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시작한 <실종법칙>은 한 사람이 실종을 하면서 그 일을 마주하는 유영과 민우의 만남을 통해 이야기가 펼쳐지며 생각지 못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되는 연극이다.

 

어렸을 때부터 치밀한 복선과 기막힌 반전이 주는 짜릿함을 좋아했던 나는 이번 연극이 추리물이라는 소식에 바로 달려갔고, 예상외로 ‘실종‘이라는 키워드에 알맞은 스릴과 서스펜스가 연극에서 주요 기둥을 해주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의 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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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법칙>은 사건의 화려함이나 역동성보단 인물 내면의 심리와 성격에 집중된 연극이다. 두 명의 배우가 나누는 대화가 극의 주요 내용이며, 민우의 칙칙하고 어둑어둑한 자취방이 연극의 하나뿐인 무대이기에 오롯이 인물과 그들의 대화 내용에 집중하게 된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극의 주인공인 유영과 민우는 그리 매력적인 캐릭터는 아니다. 실종된 유진의 남자 친구인 민우는 작가를 꿈 꾸지만 몇 년째 성공하지 못해 반지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캐릭터이다. 성격 또한 물질적인 것에 집중하며 말꼬리를 잡거나 짜증을 내는 등 우리 주위에 정말 흔히 있을 것 같은 현실적인 인물이다.

 

이런 그가 마찬가지로 현실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인물인 유영과 말싸움을 벌이는 모습은 어찌 보면 하찮거나 찌질해 보이기도 하는데, 배우님들의 연기 실력과 연극의 특성과 합쳐져 마치 주위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싸움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사람의 그림자는 매우 길다


 

<실종법칙>은 사람들은 친구나 가족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 사람의 깊은 고민과 고통은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전제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한 사람이 실종된 긴박한 순간에 비로소 알게 되는 진실과 그 진실을 마주하기 힘들어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유책을 회피하려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임을 보여주고 공포는 그 거짓말에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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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그림자는 매우 길다고 했던가. 연극이 진행될수록 인물들의 숨겨진 면모가 하나씩 드러나며 관객들은 유영과 유진, 민우의 그림자를 하나씩 알게 된다. 유진은 민우 몰래 연하의 변리사와 바람을 피고 있었고, 가진 것은 없지만 유진을 매우 사랑하는 것 같아 보였던 민우 또한 친한 후배와 바람을 피고 있었다. 동생을 매우 걱정하고 생각하는 것 같은 유영은 사실 동생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떻게 보면 사이코패스 같은 본성을 숨기고 있었다.

 

이러한 그들의 뒷면이 밝혀지는 과정이 어떤 이들은 조금 답답하고 지루하다고 할 수 있지만, ‘가장 연극의 본질’을 담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은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 있는 ‘가족’이나 ‘연인’ 또한 예외없이 마찬가지이며, 때로는 비밀 하나로도 관계가 파탄이 날 수도 있다. ‘실종’이라는 독특하고도 뒤가 없는 상황이기에 사람과의 관계가 더 진솔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반전으로 완성한


 

<실종법칙>의 장르는 추리물이지만, 연극을 감상하는 초중반에는 고개가 갸웃했다. 유진의 실종이라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민우의 반지하에서 두 인물이 대립했지만, 사건의 진행보다는 폭로전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연극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무거운 분위기로 진행된다. 유진의 바람, 민우의 실패, 유영의 애인 문제 등 미처 자신이 알지 못했거나 숨기던 비밀이 밝혀져 배신감과 현실 부정이 인물을 채우고 있다. 그렇기에,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감정선이 상당히 짙어서, 연극 초중반에는 감정에 짓눌려 살짝 지치는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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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사건의 단서가 모두 모여 마침내 결말에 다다르면, 앞선 폭로전이 이 모든 사건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연극이 처음 시작했을 때 나오던 민우의 고뇌, 유영의 알레르기, 유진의 실종 전 발언 등 모든 것이 유영을 노리기 위해 이루어진 덫이었던 것이다.

 

연극의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었던, 유진이 실종 전 마지막으로 입고 있던 빨간색 가디건이 연극 내내 걸려있던 민우의 겉옷 뒤에서 나타난 장면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뒷목이 쭈뼛 설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이 실종 사건 자체가 유진이 언니를 죽이고 보험금을 타려고 한 계획이란 것이 밝혀졌을 때는 공포심에 나도 모르게 남남인 옆사람을 잡을 정도였다.

 

연극에서 이루어진 농담과 대화가 모두 충격적인 결과를 위한 복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기에, 이 모든 진실을 알고 연극을 다시 보았을 때 새롭게 보이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다시 보기’를 하게 만드는 것이 추리물만의 색다른 매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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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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