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성냥공장 소녀의 꿈은 꽃이 되는 것 - 고전영화다시보기 [영화]

글 입력 2024.04.12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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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만으로 언제나 꿈꾸는 곳, 가보진 않았지만 파라다이스로 날아가고 싶어


 

매일 성냥공장에서 불량품을 골라내는 아이리스는 무료하다. 그녀는 공장일을 마치고도 퀭한 눈으로 밀린 집안일을 해야 하는 쳇바퀴 같은 삶 가운데 로맨스 소설을 읽고 맥주를 마신다. 밤이면 뉴스를 보는 부모를 뒤로한 채 서툴게 화장하고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댄스클럽에 간다. 술만 여섯 병째 마셔도 그녀의 짝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 그녀에게 한 남자가 다가오고 성냥공장 소녀(아키 카우리스마키, 2001)는 살며시 그려 왔던 꿈을 꾼다.

 

그녀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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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꽃이 되고 싶었다.

 

성냥공장을 제외하고 아이리스의 집, 아르네의 집, 맥주 가게, 파티클럽, 식물원, 심지어 복수를 계획하는 약국까지 푸른 잎사귀의 식물이 존재하고 있다. 무채색 그녀에게도 살아 숨 쉬는 징표인 양 핑크색 머리끈이 돋보인다. 생명력을 지닌 공간 속 핑크색 머리끈을 한 그녀는 꽃망울의 형상을 띄고 있다.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의 집은 꽃무늬 잠옷, 이불, 식탁보, 커튼 등 꽃밭을 연상시킨다.

 

엄마가 준 생일선물 꽃무늬 포장지 안에는 로맨스 소설이 들어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녀가 얼른 꽃이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자의든 타의든 그녀는 꽃이 되기로 결심하고 하룻밤 상대였던 아르네가 집에 방문했을 때 (아르네는 그녀와 자기 위해 갔다) 생화, 꽃무늬 찻잔, 머리를 푼 아이리스까지 꽃망울을 피울 만반의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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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에 사는 그녀는 로맨스 소설, 잡지를 읽으며 사랑하기를 꿈꿔왔다. 꽃망울을 닮은 핑크색 머리끈으로 자신을 표현함과 동시에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묶는다. 대개 욕망을 절제하고 있지만 남자를 만나러 갈 때면 머리를 풀고 자신을 드러내며 꽃이 되고 싶어 한다. 월급을 모아 산 핑크색 원피스에는 꽃들이 만개하여 온몸으로 그녀의 욕망을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꽃망울은 외부 환경에 의해 쉽게 져버릴 수 있는 연약함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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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완벽하지 않더라도 네게는 특별한 게 있어. 나는 늘 너의 키스를 꿈꾸지


 

긴 머리를 늘어뜨린 그녀의 욕망은 계속해서 좌절된다. 남자들에게 거절 당하고 월급을 모아 갖고 싶은 원피스를 샀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손찌검당한다. 비록 꽃망울에 물 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혼자서 맥주를 들이켜고 샤워를 한 후 꽃을 피울 준비를 한다.

 

꽃망울이 터져 꽃이 되고 열매를 맺고 싶었으나 하룻밤 사랑이었다. 사랑의 결실인 아기를 지우라는 아르네의 모욕적인 말, 그녀를 못마땅해하며 아버지가 건네는 오렌지와 수표는 뒤섞여 꽃망울에 생채기를 낸다. 그녀는 아버지가 준 오렌지를 우걱우걱 씹어먹으며 꽃이 되기를 포기한다.

 

부모와 함께 사는 꽃밭(집)에서 나와 새 거처를 구한다. 그 방의 벽지는 그녀의 상황처럼 갈색의 바짝 마른 꽃무늬를 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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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꽃은 이제 필 수가 없어. 당신은 어떻게

 

이제 그녀는 그녀 자신에게 담뱃불을 붙인다. 바짝 말라버린 그녀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더 활활 타오른다. 불꽃처럼 과감하게 물에 쥐약을 타고 복수를 시작한다.

 

복수의 1순위 대상 아르네의 집에 들어가 당당하게 마실 것을 요구하고 그의 잔에 쥐약을 탄다. 그가 창녀 취급했던 돈을 돌려준 후 발길이 닿는 대로 술집에 간다. 그녀는 전에 없던 은은한 미소를 띤다. 슬쩍 접근하는 남자에게 쥐약을 선물하고 홀연히 떠나는 아이리스는 전에 없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해 부모의 집으로 갈 차례지만 아이리스는 식물원으로 향한다. 푸른 식물 사이 핑크색 머리끈을 한 그녀는 한 송이의 꽃처럼 보인다. 아이리스는 잡지를 읽다가 멍하니 활짝 핀 흰 꽃을 바라본다. ‘너처럼 되고 싶었는데…난 머리를 풀어 헤친 바짝 마른 꽃이 되었구나.’


다시 머리를 높게 묶은 그녀는 쥐약과 함께 부모를 위한 마지막 저녁상을 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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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공장 소녀는 여느 때와 같이 제자리에서 일하다가 묵묵히 경찰을 따라간다.

 

그녀가 되고 싶었던 '꽃'은 사랑을 하는 여자를 상징한다. 조금의 따스한 사랑을 바랐던 그녀에게 현실은 가혹했다. 그녀의 온전한 마음을 노랫말과 편지에 담아 내비치고 있음에도 귀 기울여주는 사람은 없었고 아무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한 송이의 꽃이 되길 포기하고 타오르는 불꽃이 된 그녀는 오히려 팜므파탈처럼 보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성냥처럼 불장난만 해야 할 운명이었을까. 그녀는 헛된 꿈을 꾼 것일까. 모든 복수가 끝나고 재가 된 꿈은 아마도 그녀의 마음속에 갇혀 영영 나오지 못할 것이다.

 

 

*참고_소제목: 그녀의 마음이 담긴 노랫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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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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