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지만 -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베를린 심사위원상
글 입력 2024.04.02 10:1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소위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속담이 영화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도쿄에서 내려온 이들이 사업을 잘 진행해야 아래 마을 사람들의 생태도 유지되며, 마을 주민들이 현명하게 행동해야 아이들도 잘 자란다.

 

하지만 본래 물이란 형태가 없는 것이라 어디가 위이고 어디가 아래인지 확신하기 어렵다. 이러한 물의 성질을 영화도 잘 담아내고 있다. 일례로 타카하시(플레이모드 상사)가 마유즈미(플레이모드 직원)보다 직위상 더 위에 있지만 능력적인 면이나 마인드적인 면에서는 그녀가 한 수 위인 것으로 보인다. 사업을 진행하려는 도쿄 일행이 처음에는 갑인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며 마을 주민이 되고자 자처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88091224094_727.jpg

 

 

위아래가 뒤바뀌는 흐름 속에서 자연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영화 내내 마을 주민의 생활을 책임지던 자연은 결말 부분에서 타쿠미의 딸인 하나를 해치는 포식자로 나타난다.

 

‘중요한 건 균형’이라고 타쿠미는 말했지만, ‘물이 우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우동집 사장은 말했지만, 결국 그들 또한 자신들이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다면 자연의 힘을 더욱 이용할 사람들이다. 그래서 도쿄 일행의 엉터리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글램핑 계획에 반대라는 결정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이, 사슴이 하나를 죽인 이유가 설명된다. 자신의 자식이 인간의 총에 맞은 것처럼 타쿠미의 자식에게도 똑같이 대한 자연의 입장이. 타쿠미가 타카하시를 기절시킨 이유도 관련 있다. ‘중요한 건 균형’이라고 외쳤던 타쿠미는 자연을 향해 쏜 총알이 결국 하나에게 날아온 것을 보며 현 상태로도 자연과의 균형은 벅차다는 것을 느꼈을 테다. 한편으로는 글램핑장 사업에 반대하지 않은 자신의 욕심에 대한 부끄러움, 또 ‘그럼 사슴이 어디로 갈까’라는 질문에 ‘어디론가 가겠죠’라고 얄팍한 대답을 내놓은 타카하시를 향한 분노도 말이다.

 

 

88091224088_727.jpg

 

 

그러나 그 누구도 악이라고 부를 수 없다. 모두가 그저 살고자 했을 뿐이니까,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타쿠미는 이 점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하나는 미래가 없어보인다. 마지막 신에서 달빛이 나무 사이로 서서히 모습을 감추듯.

 

언뜻 보면 이 영화 속에서 그다지 현명한 인물은 없어 보이지만, 이는 하마구치 감독이 프레임에서부터 의도한 것이다. 그는 기본 프레임보다 작은 비율을 활용하여 관객들이 영화를 체험이 아닌 관찰하도록 유도했다. 물론 체험과 관찰은 분리될 수 없는 단어지만, 발을 한 걸음 빼느냐와 더하느냐의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그 결과, 멀리서 지켜보는 관객은 이 우화 속 이면을 알아차릴 수 있지만 등장인물들은 그렇지 못하다.

 

섬뜩한 부분은 영화 속의 상황들을 관찰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 하나가 유일한 사망자라는 것이다. 관객을 관찰자로 초대한 하마구치 감독의 분명한 경고다.

 

 

88091224087_727.jpg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영화의 해석을 위해서는 결말부부터 원인을 찬찬히 따져가며 초반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영화 스토리 또한 시간순으로 진행되지만 앞서 말했듯 물은 어디가 위이고 어디가 아래인지 확신할 수 없기에 영화 스토리 또한 이러한 해석 방법을 필요로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 이 영화는 매우 자연적이다. 메세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인공적이거나 작위적인 부분이 없다. 일상을 녹여낸 대사로 캐릭터의 쓰임새와 장면의 연속성을 티 나지 않게 드러낸다. 얼마나 자연적이냐면, 앞서 언급한 '위에서 아래로'라는 물의 순리마저 작위적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다. 갑자기 찍었다는 하마구치 감독의 말에 '그래서 영화가 더 물 흐르듯 했나' 싶지만, 영화의 완성도를 따지기 시작한 순간, 그 생각은 와르르 무너진다. 그의 영화적인 재능을 여실히 알게 되는 그런 영화가 아닐지.

 

 

[유민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1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