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믿음과 사랑은 항상 같은 곳을 바라볼까? [도서/문학]

들키지 않게, 사랑을 묻는 일 - <오로라>, 최진영
글 입력 2024.03.3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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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없는 사랑이 가능할까?

사랑 없는 믿음은 무엇일까?

믿음이란, 사랑이란 무엇일까?


이 모든 의문점들에 대해 치열하게 질문하고 고뇌하는 최진영 작가의 단편 소설, <오로라>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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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는 작가의 전작인 <구의 증명>, <단 한 사람>에 이어 사랑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는 한편, ‘믿음’이라는 개념을 사랑과 나란히 두고 그 둘의 관계에 대해 골몰한다. 80쪽 가량의 짧은 분량의 소설은 겨울의 제주를 배경으로, 원래의 삶에서 도망쳐 숨기를 택한 한 여자의 이야기를 간결하고도 복잡미묘한 언어로 표현한다.


주인공 유진은 친구의 부탁으로 그 대신 제주도로 떠나 한 달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자신을 찾는 연락으로부터, 그리고 제주 이전의 삶으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킨다. 그곳에서 그녀는 ‘최유진'이 아닌 ‘오로라'로 살겠다는 다짐을 실행에 옮긴다. 되뇌이듯 스스로에게 반복적으로 자신을 ‘오로라'라고 소개하고, 제주에는 어떤 일로 오게 되었느냐는 일상적인 질문에 거짓을 답한다.


그녀의 단절에 숨은 내막은 후반부 그녀의 진솔한 고백을 통해 드러난다. 사랑했던 남자가 기혼자였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자신의 결백하지 못함을 되새기며, 거짓말에 대해, 믿음에 대해,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한다. 그녀와 그 사이의 믿음은 깨졌지만, 그녀의 사랑은 끊어지지 못해 괴로운 것이다.


믿음 없는 사랑이 가능한가? 줄곧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왔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둘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지금껏 나는 ‘사랑’을 잘못 정의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은 관계와 동의어가 아니다. 사랑은 관계에 우선한다. 관계는 결정이다. 사랑이라는 정동은 항상 관계라는 결정에 우선한다.


사랑은 감정인가? 의지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행위인가?

 

언젠가 사랑은 의지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사랑을 지탱하는 것은 순간의 사라져 버릴 감정이 아닌 누군가와의 사랑을 지키겠다는 의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랑은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를 의미한다. 때문에 이 경우, 관계로서의 사랑은, 믿음 위에서만 굳건하다.


 
“만약 그가 다정하게 굴지 않았더라면 사랑하지 않았을까? 너는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너는 사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p.72
 


그렇지만 사랑이 행위라고 한다면, 과연 그 기저에 믿음을 필요로 할까? 믿음이 사라졌다고 해서 한 순간의 사랑의 감정이, 그 누군가에게 온 마음을 다해 쏟아붓던 사랑이라는 행위가 멈추지는 않는다. 행위로서의 사랑은 믿음에 의해 멈추거나 시작되지 않는다. 그 사람을 믿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믿고 싶어지는 것이다. 행위로서의 사랑은 믿음에 우선한다.


유진의 사랑은 순간적인 감정도, 관계를 지키겠다는 의지도 아닌 행위이다. 믿음과 관계없이 그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어쩌지 못하는 마음의 반영이다.

 

 


유진이 땅에 묻은 새는 무엇인가?


 

유진은 제주에 머무는 동안 묵던 숙소에서 죽은 새를 발견한다. 그녀는 이 새를 어두운 밤에 숙소 관리인과 함께 땅에 묻는다. 불법이고, 비밀이다. 그녀가 묻은 것은 무엇일까? 그녀가 땅 속에 묻은 것은 정말 죽은 새뿐만이었을까?


 
“들키면 어떻게 되나요? / 사랑을 감출 수 없어요. / 누구나 감추고 삽니다. 한 명쯤은. 아무도 모르게. 어둠 속에서. 홀로 사랑합니다. 그러니 당신도 묻어버려요. 마음에. 심장처럼. 그럼 들키지 않고 그는 당신이 됩니다.” p.57
 


유진이 땅에 묻은 것은 그녀의 끝나버린, 그러나 아직 이어지고 있는 그녀의 사랑이다. 완전히 숨기 위해 떠난 제주에서 그녀는 들키지 않기 위해, 비밀을 숨기기 위해, 죽은 새를, 숨이 멎어버린 그녀의 사랑을 묻어버렸다.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유진과 함께인 관리인은 그녀를 ‘세정 씨'라고 부른다. 진실은 흐려져 있고, 누구도 구태여 그것을 바로잡지 않는다. 그가 그녀를 믿는지, 그녀가 그를 믿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믿음이 사라진 후 여전히 남아있는 사랑에 괴로워하던 최유진은, 어떤 비난과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는 오로라의 탄생과 죽음을 홀로 지켜보며, 어쩌면 믿음이 필요 없는 사랑을 인정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녹아 사라질 눈사람일지라도 있는 그대로 두어 보는 법을 배웠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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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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