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모두의 글씨체가 다르듯이 [도서]

김소연의 <마음사전>을 읽고
글 입력 2024.03.13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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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동화책을 읽으며 우리가 하나하나 배워 갔던 단어들에는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뜻이 있다. 책은 책이고, 신발은 신발이며 안경은 안경이다. 그들을 구태여 다른 어떤 것으로 바꾸어 해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누구도 콕 집어 말해준 적은 없지만, 저마다에게 유독 달리 와닿는 단어들이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겐 '김밥'이라는 단어에서 엄마의 사랑이 느껴질 수도 있고, 어떤 누군가는 '학교'라는 단어를 읽고 학창 시절에 대한 그리움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이렇듯 단어에는 한 사람의 인생을 지나오며 수없이 많은 추억들이 묻는다. 그렇게 묻어난 기억들은 마침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낸다. 비록 그것이 이전과 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손때가 묻은 그 단어들은 사전에 기록되지 않는다. 아쉬운 대로 그저 마음속에만 간직되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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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쉬움을 종이에 적어내고, 단어마다의 묘한 사람 냄새를 기록한 책이 바로 김소연 작가의 <마음사전>이다. 책 속에서 작가의 단어에 대한 정의는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을 대신 눌러 담고 있다.

 


 

착시


당신을 착시하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아름답다.

노을이 아름답게 타오르는 것이 우리 눈의 착시이듯이, 내가 보고 있는 당신이 허상인 줄 알면서도 나는 당신을 믿는다.

노을을 믿듯이. - p.35

 


 

당신은 '착시'라는 단어를 보고 어떤 의미를 떠올리는가? 실제 국어사전에서 '착시'의 정의는 '시각적인 착각 현상'이다.

 

다르다. 많이 다르다. 같은 글자이지만 작가 마음속의 착시와 사전 속 착시는 전혀 다른 단어이다. 이는 작가의 살아온 경험에서, 어쩌면 누군가를 착시했던 사랑에서 흘러나온 속뜻일 것이다.


필자는 '착시'를 '실제로 그러하지 않은 것을 그러하다고 믿는 것'이라 정의했다. '믿는다'는 동사에는 인간의 의지가 담겨 있다. 그리고 믿기로 선택한 데에는 그에 따른 결과도 감당하리라는 용기가 함께 있다.

 

비록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노을이 허상일지라도, 그것의 아름다움을 믿어보고자 하는 용기.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바라보는 그 사람이 그저 일부에 불과하더라도 마음 다해 사랑하고자 하는 용기. 그리고 아마도 우리 모두는 그 무모한 용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책에서 작가가 정의했듯, 나는 당신을 착시하기 때문에 당신이 아름다워 보인다. 그것이 허상일 줄 알면서도 우리는 끝내 온 힘을 다해 사랑한다.

 

그런 사랑의 감정은 결코 거짓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허구를 사랑하는 마음은 허구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역설적이고, 또 어떻게 보면 슬프기도 하다. 우리는 과연 무엇에 우리의 감정을 쏟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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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인지하고 있는 그 사람이 비록 허상일지라도 그와 내가 보낸 시간은 기억의 뒤편에 그대로 기록된다. 비록 시간이 지나 지금은 손에 잡히지 않더라도 분명 어딘가에 남아 있을 추억들이다. 그러니 우리가 허상을 믿는다고 너무 허무해할 필요는 없다. 그때 우리가 함께 본 노을은 허상일지라도, 그 노을을 함께 바라본 우리는 그곳에 영원히 존재할 테니 말이다.


'착시'라는 사전 속 단어 하나로 많은 생각이 튀어나왔다. 다시 정의된 <마음사전> 속 단어들이 인간적 체취를 머금고 있기 때문 아닐까?


하나의 단어 속에는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다. 국어사전에는 정의되어 있지 않은, 사전적 정의 그 너머의 사연이 낱말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인간의 감정이 단일적으로 정의될 수 없듯이, 인간이 쓰는 단어 또한 마찬가지인 것이다.


사람마다의 글씨체는 고유하다. 유일한만큼 그 사람을 잘 나타내기도 한다. 단어도 똑같다. '푸근함' 하면 언제든 뒤에서 든든히 지켜봐 주시는 우리의 아버지가 떠오르는 것처럼, 한 문장으로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은 무궁무진하다. 그런 언어의 묘미를 즐겁게 향유할 수 있는 새로운 사전을 가지게 된 것 같아, 새삼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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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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