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부서진 세계를 그려낸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 [도서]

현실의 조각난 틈을 파고드는 환상 호러 소설집
글 입력 2024.03.12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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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 2D_L.jpg

 

 

사라진 사람들, 편집증, 정신병..

에븐슨은 독자를 미로와 함정에 끌어들이고는 그대로 내버려 둔다.

이렇게 일관적으로 두려움을 선사할 수 있다니, 믿기 어렵다.


-뉴욕 타임스-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는 미국 사변소설계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브라이언 에븐슨의 단편 소설집이다. 기묘하면서도 공포스러움을 자아내며 때론 SF 소재까지 능숙하게 오가는 작가의 소설 22편이 수록되어 있다.

 

짧게는 한 장 남짓, 길어야 스무 페이지 이내인 소설들은 모두 불친절하다. 배경이나 인물 설명을 자세하게 하지 않는 것은 단편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 속 소설들은 현실 세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현상이나 상황을 아무 설명 없이 독자에게 제시한다. 갑자기 눈앞에 펼쳐지는 기묘한 세계나 인외 존재는 독자를 더욱 공포스럽게 만든다.

 

책 속의 이야기들은 각각 독립된 이야기인 것 같으면서도 때론 마치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것 같기도 하다.

 

[새어 나오다]에는 누군가의 안에서 한동안 머무르다가 그를 삼키고 가죽을 뒤집어써 마치 본인 행세를 하는 미지의 생명체가 등장한다. 어느 도시괴담 같은 이 인외 존재는 [자매들] 속 인물들과도 비슷해 보인다. 전류를 타고 이동하며 콧구멍을 통해 (인간)가죽의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는 가족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이들은 영혼일까? 인간을 '표본'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이 존재들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단지 이 책에 묘사된 것처럼 '기묘하게 걸쳐져 있는 듯한(32p)' 피부가 떠오를 뿐이었다. 이유 없이 누군가를 잡아먹고, 그의 껍데기를 쓰고 마치 그 사람인 양 행동하는 존재가 어딘가 있다고 상상하면 목덜미가 서늘해진다.

 

인외 존재와 더불어 소설은 '구멍', '틈' 속에서도 공포를 만들어낸다. [탑]에는 구멍에 빠진 후 비현실적인 존재로 재탄생한 인물이 등장한다. '한 피부가 다른 피부에 스며들어(140p)' 탄생한 것처럼 바로 다음 소설 [구멍]에도 한 명씩 구멍으로 끌어들어 '우리, 그, 나, 홀로(155p)'가 된 존재가 나타난다. [시선] 속 인물들을 거슬리게 했던 기묘한 깜박거림은 좁고 긴 틈이 되어 누군가를 가두고, 갇히게 하는 통로가 된다.

 

자그마한 구멍이나 좁은 틈새는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단순한 궁금증으로 들여다보던 공간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섬뜩한 곳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기묘하다. 평범했던 삶을 비집고 들어와 일상을 방해하는 알 수 없는 존재들 때문에 더욱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짧은 소설에서도 압도적인 몰입감을 느끼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독창적이면서도 충격적인 소재들로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

 


[정선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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