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 정도면 됐어, 아니야 이게 좋다 [미술/전시]

글 입력 2024.03.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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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머릿속 이미지를 실현해 줄 마법사를 원한 적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디렉팅한 이 아이디어를 그대로 구현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그러면 이게 되는지 안 되는지 알 수 있을 텐데.

 

40쪽의 PPT 마지막 장에 교수님의 최애 데이비드 오길비의 명언을 집어넣으며 성공적인 광고에 대한 고찰에 사로잡힌 적이 몇 번인지 이제는 셀 수도 없다. 오길비는 광고는 과학이라고 했고, 번벅은 광고는 예술이라고 했다. 그리고 교수님은 광고는 과학과 예술의 조화라고 하셨다. 아무렴 뭐든 당연한 말씀이다.

 

광고를 전공하며 느낀 것이 있다면 광고는 과학이지만 예술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예술은 무엇보다 원색적이며 직관적이어야 한다. 자신의 역량과 상관없는 분명한 목적, 즉 소비자의 이목을 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시다 유니의 마법은 그래서 광고인에게 매력적이다. 착시를 이용한 원색의 이미지, 오브제의 다양한 질감 등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부각시키기에 차고 넘친다.

 

주로 무게감 있는 브랜드 이미지를 가진 기업들이 그의 작품을 선호하는 듯 보였는데, 이는 요시다 유니의 작품이 간결하게 떨어지는 묵직한 색감으로 단절과 연속을 반복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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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도록 맞아떨어지는 대비와 착시 이미지들은 일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나 <비바리움(2019)>을 연상시켰지만 일본 특유의 스타일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서구의 그것과는 다른 결의 느낌을 주었다. 꽃과 과일을 사용한 작업이 많았는데, 싱그러움이 제한된 것으로 작업을 하기 때문에 가끔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다고 인터뷰한 것이 인상 깊었다. 그렇게 변화하는 사물을 다루기 때문에 매 작업이 다음 작업을 위한 아이디어 레퍼런스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생각을 현실로 구현해낸 것에 대해서는 작가의 성격적인 면이 큰 작용을 했다고 짐작했다. 전시장의 한쪽 벽은 요시다 유니에 대한 타 창작자들의 평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개중 하나는 그를 묘사하며 이렇게 말했다. “유니 씨의 작품이 모두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 정도면 됐다”가 아니라, “이게 좋다!”하는 것만을 형상화하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전시를 본 친구는 “전시가 꼭 거대한 포트폴리오 같다”고 했다. 이것보다 그의 전시를 더 잘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나와 친구는 부정적으로 한 말이었지만 누군가는 이것을 좋아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거대한 미술관 전체를 채울 만큼 꽉 찬 작업물의 향연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굳이 전시회장에 가서까지 광고 포트폴리오를 보고 싶지는 않은 쪽에 속했다. 우리에게 광고 포트폴리오는 예술이 아니라 직업이자 공부였다. 그러나 타인에게는 이것이 예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다른 많은 것들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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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스스로 생각하건대,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예술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예민하다고 하여 모든 것을 감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어떠한 것들을 보면 울게 되지만 어떠한 것들에는 피로를 느낀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대개 삶의 궤적과 관련이 있다. 광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전공한 내 삶은 상업광고에 쓰인 이미지에 있어 그 예술성과 아이디어에 감탄하기보다 얼마나 브랜드를 잘 살렸는지, 그 과정에서 어떠한 디렉팅이 오갔을지, 어떤 제품에 이 디렉터의 특성을 접목하면 좋을지를 분석하게 했다.

 

다시 말해 나에게는 이 전시가 현실과의 안전거리 없이 너무 삶에 가까웠던 셈이다. 쉼을 기대했지만 되려 공부를 하고 나온 뒤의 하늘은 너무 눈부셨고 바람은 차가웠다. 돌아오는 길의 버스에서 나와 친구는 많은 얘기를 나누었지만, 결국 대화는 우리의 삶이 이것을 예술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슬프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가 좋아하는 많은 것들을 직업 삼아 하는 이들의 애환에 대해서도 공감했다.

 

가끔, 삶으로부터 안전거리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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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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