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름을 고려하는 위로의 방식 [영화]

영화 <바튼 아카데미>
글 입력 2024.02.2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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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영화 ‘바튼 아카데미’의

내용 및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 겨울, 미국 동부의 명문 사립학교 바튼 아카데미에는 세 사람만이 남겨진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아 셋을 제외한 모두가 각자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떠나고,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는 역사 교사 폴, 학생 털리, 그리고 주방장 메리가 함께 학교에 머물게 된다.

 

세 사람은 과거에 상실을 경험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우선 폴은 동기의 논문 표절 누명을 쓰고 대학에서 불명예스럽게 쫓겨나게 된 기억을 안고 산다. 하지 않은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진 채 꿈을 포기하게 된 괴로움과 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상처를 입은 것처럼 보인다.

 

물론 지금은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여전히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나오지는 못한 상태다. 주변에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시피 하며 항상 위스키를 달고 사는 알코올 중독자다. 학교에서도 독특한 눈의 생김새와 다소 융통성 없는 성격 탓에 학생, 학부모들의 불평과 조롱은 모두 그의 차지다.

 

폴이 가르치는 학생 중 하나인 털리는 과거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떨치지 못한다. 아버지의 병세와 폭력으로 인해 가정은 이혼 절차를 밟았고 재혼한 어머니는 요양원에 있는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 하는 털리를 마뜩잖게 여긴다. 화목한 가족을 상실했다는 상처와 상태가 점점 악화되는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은 그를 공격적으로 만든다.

 

마지막으로 연휴 동안 폴과 털리에게 식사를 만들어 주며 그들과 엮이게 된 메리는 무뚝뚝함 때문인지 사람들이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긴다.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후, 더 이상 세상에 아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허함에 버거워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특유의 무표정은 그녀를 아무렇지 않아 보이게 만들지만 실상은 속의 깊은 슬픔을 감추기 위한 수단인 듯하다.

 

결핍과 상처를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세 인물은 고독 때문에 외로워하면서도 동시에 그 고독으로 자신을 방어하려 한다. 우리 모두가 남에게 감추고 싶어 하는 치부를 갖는 것처럼, 세 사람 역시 타인에게 가까이 다가가 자신을 내비치는 행위를 꺼린다. 어쩌면 내면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행위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외로움은 고질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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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렇게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세 사람이 저마다의 상처와 고독을 떠안은 채로 원치 않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을 그리는 데 중점을 둔다. 그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함께 하게 된 세 인물이 서로를 치유하는 위로의 방식이 인상 깊다.

 

사실 위로의 방식은 다양하지만 그 본질은 모두 같다고 느껴진다. 위로는 아픔을 헤아리거나 슬픔을 덜어주려는 행위로, 공감에 기초한다.

 

그러나 자신을 위로할 때는 내면의 상처를 올곧게 직시해야 한다는 점에서, 타인을 위로할 때는 내가 아닌 상대의 감정을 섬세하게 헤아려야 한다는 점에서 위로는 쉽지 않다. 각자가 안고 있는 상처와 감정의 정도는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온전한 공감에서 우러난 위로는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세 인물의 위로는 타인 간의 다름을 적극 고려하는 방식을 택한다. 상대가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사정을 함부로 묻지 않는 것, 상대의 한 면만 보고 그를 쉽게 재단하지 않는 것. 이 두 가지를 전제로 한 채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 후에 상대가 말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이야기를 들을 때는 진심으로 경청하는 태도를 보이며 서로를 존중한다.

 

학교를 계속 떠나려던 털리를 혼내다가도 그가 속마음을 먼저 털어놓자 조용히 그 옆을 지켜주는 폴, 폴의 거짓말에 얽힌 예전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다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녹이는 털리, 그리고 그들에게 따뜻한 밥을 대접하며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만드는 메리의 모습에 그들 나름의 위로가 비친다.

 

나와 다른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들으려는 시도 자체가 위로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영화의 시선이 폴, 털리, 메리 모두를 관통한다. 그들은 누구나 조금씩 숨기고 싶은 것이 있고 회복되지 않은 상처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서로를 향한 사려 깊은 위로가 가능했다고 느껴진다.

 

그렇게 인물들 사이의 단절이 소통과 위로를 통해 관계로 이어지는 순간, 각자와 외부 세계 간의 단절도 서서히 메워진다. 폴이 건넨 두 권의 책과 비뚤어졌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트리가 타인과 세상을 향해 열리기 시작한 그들의 마음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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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튼 아카데미>는 우연히 함께 보내게 된 연휴 덕분에 다시 앞을 보고 나아갈 수 있게 된 인물들의 모습으로 위로를 전한다. 

 

물론 앞으로 각자의 길을 걸어갈 때 셋은 또다시 혼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함께 보냈던 시간에서 얻은 위안이 그들에게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과거와 상처에 얽매이지 않고 굳게 세상을 헤쳐 나갈 세 사람에게 응원을 보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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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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