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질적인 타자와의 대면 [도서/문학]

공선옥의 「명랑한 밤길」과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에 나타난 타자
글 입력 2024.02.0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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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의 「명랑한 밤길」과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는 ‘이질적인 타자’를 주제로 하는 작품이다. 두 소설 모두 외국인이 화자의 일상에 스며들면서 느껴지는 불편함의 감정과, 극과 극에 놓인 주체들의 가치관 차이가 주는 팽팽한 긴장감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더불어 두 작가는 타자의 유입을 부정적인 관점에서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사이에 내포된 소통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이질적 타자에 대한 이해로까지 감정이 확장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현대 사회와 타자


 

공선옥의 「명랑한 밤길」과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는 각각 2007년, 1979년 발표되었다. 그리고 2022년 현재, 우리는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에 비해 외국인을 이질적으로 인식하지 않으며 그들과의 문화 교류를 비교적 자연스럽게 여긴다. 현대 사회에서는 외부와 내부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으며 이방인이 그저 관념의 산물이 되었다. 그러나 이를 다르게 해석하면, 현대에 우리는 자의적으로 타자를 이방인으로 규정해 그들과 우리의 다름을 마음대로 규정할 수 있는 위험한 권한을 지닌 주체이기도 하다. 다문화 사회가 안정적으로 들어서는 것 같으면서도 집단 간 갈등이 첨예해지는 현재의 시점에서, 다문화를 소재로 하는 문학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이질적인 타자와의 관계 형성에 관해 고찰해볼 필요성이 있다.

 

 

 

명랑한 밤길


 

「명랑한 밤길」의 인물은 화자인 나, 수아, 깐쭈와 싸부딘이다. 나는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며 아픈 어머니와 함께 사는 인물로, 도시에서 온 남자와 연애를 하지만 실연을 당한다. 수아는 나의 친구이고, 깐쭈와 싸부딘은 내가 거주하는 도시의 공장에서 근무하는 이주 노동자이다. 주요 사건으로 화자인 나는 이주 노동자들로부터 모욕감을 느끼며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관점을 지니지만, 두 노동자의 대화를 들은 후 이방인이 타국에서 겪는 고충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나는 이들에게 동질감을 느껴 나의 아픔을 해소하기 위해 그들처럼 행동하며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 이는 ‘저기, 네팔의 설산에 떠오른 달이 보인다. 나는 달을 향해 나아갔다.’라는 구절을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이 소설을 쓴 공선옥 작가는 여성 및 소외 계층을 소재로 다양한 집필을 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KBS와 진행한 한 인터뷰에서 물질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 정신적 가치를 세속적 가치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녀의 생각이 해당 소설에도 반영된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다.

 

 

 

중국인 거리


 

「중국인 거리」의 인물은 화자인 나, 매기 언니와 치옥이다. 나는 인천의 중국인 거리에 거주하는 아이이며, 매기 언니는 미군에게 매춘을 하는 이웃집 여성이다. 치옥은 나의 친구이자 매기 언니의 삶을 진심으로 동경하는 아이이다. 소설은 중국인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묘사한다. 나는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을 바탕으로 이들을 관찰하는데, 중국인에 대한 주변 어른들의 비난 및 매기 언니의 죽음 등을 겪으며 일상에서의 거북함을 느끼게 된다. 이는 삶에 대한 혼란으로 이어지는데, 화자는 ‘인생이란... 그러나 뒤를 이을 어떤 적절한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복잡하고 분명치 않은 색채로 뒤범벅된 혼란에 가득 찬 어제와 오늘과 수없이 다가올 내일들을 뭉뚱그릴 한마디의 말을 찾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살아갈 날들을 고민한다. 

 

해당 소설의 시점이 주목할만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해당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주인공은 자신의 삶만을 자세하게 소개하기보다는 주변 인물들의 삶을 비중 있게 다루어 관찰자의 역할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또한 성인 화자가 자신의 유년기를 회고하는 구성을 활용하였기 때문에 무거운 소재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서술함과 동시에 어린 아이라면 설명하기 힘들 어두운 현실까지 고발하는 성격을 지닌다.

 

 

 

두 작품의 유사성 및 차이


 

「명랑한 밤길」과 「중국인 거리」는 내용 구성에 있어 유사한 점이 많은 작품이다. 첫 번째로, 둘은 변화의 시점을 다루고 있다. 「명랑한 밤길」은 공장이 들어서며 이주노동자가 유입되는 등 변화하는 농촌의 모습을 배경으로 하며, 「중국인 거리」는 인천상륙작전의 배경이 되었던 인천에 중국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하며 드러나는 거리의 변화를 배경으로 한다. 

 

변화하는 것은 비단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각 소설의 화자도 심리적인 변화의 기점에 놓여 있다는 특수성을 지닌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상황에서 약간의 차이가 드러나는데, 「명랑한 밤길」 속 화자는 사랑하던 남자로부터 실연당함으로써 내적인 혼란을 겪는다. 반면 「중국인 거리」 속 화자는 유년기와 청년기의 과도기에 위치한 사춘기를 겪으며 주변 사람들의 삶이 지니는 모순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이들의 심리적 변화와 맞물리는 외국인의 등장은 이들의 내면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기폭제의 역할을 하며, 동시에 각 소설의 화자를 성장하도록 돕는 보조제의 기능도 수행한다. 

 

두 번째로, 두 소설에는 외국인에 대한 적대심을 지닌 인물이 등장한다. 기존에 일정 공간을 점유하며 삶을 향유하던 마을 구성원들은 대체로 외국인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관찰한다. 「명랑한 밤길」 속 화자를 포함한 주변 인물들은 이주노동자의 등장을 불편으로 느끼는데, 이때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사장은 노동자를 무시하는 태도까지 당당하게 표출한다. 「중국인 거리」에서 마을 사람들은 자유분방하고 방탕한 중국인들의 문화를 비난하며 그들을 비하하는 호칭으로 명명한다. 

 

세 번째로, 상반된 집단의 대립 구도가 상대를 향한 폭력으로까지 이어진다. 소설 속에서 이질적 존재의 등장은 기존 공동체가 지녔던 항상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연결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항상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주체가 다르다는 차이가 있다. 중국인 거리에서 거주하는 중국인들과 같이 때로는 이방인이 그 공간을 자유롭게 영위하며 자신들의 항상성을 지키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때로는 이주 노동자들을 고용한 사장처럼 기존의 원주민이 공간을 지배하며 타인을 이질적 존재로 규정해 자신의 항상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항상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의 표출은 폭력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자신의 거주 환경에 촘촘하게 결부되어 있는 가치관을 지키고자 이들은 이질적인 존재를 억압하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약자가 발생한다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두 작품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렇기에 이들을 통합적으로 연결해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질성에 대한 환대


 

결국 두 소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주제는 ‘이질적인 타자를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주인공들은 이방인으로부터 일종의 유대감을 형성하며 그들과 소통을 시도하게 된다. 「명랑한 밤길」의 화자는 이방인의 아픔에 공감하며, 「중국인 거리」의 화자는 중국인 거주자로부터 선물을 받게 된다. 이를 계기로 그들이 이방인에 대해 지녔던 거부감은 누그러드는 모습을 보이지만, 두 화자는 자신들의 마음을 상대에게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저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처럼 노래를 부른다거나, 혹은 받은 선물을 항아리에 간직할 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두 화자는 이질적인 타자와 온전하게 합일되지는 못했다는 한계를 지니지만, 기존의 사회가 지닌 통념을 깨고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고자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이를 철학적 관점으로 분석해본다면 자크 데리다가 제시하는 환대의 개념과 연관성을 가진다. 데리다는 환대를 조건적 환대와 무조건적 환대로 구분하여, 조건적 환대는 환대를 베풀기 전 그 결과와 보상을 고려하는 반면 무조건적 환대는 어떠한 계산 없이 타자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데리다가 주장하는 무조건적 환대는 현대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환대라는 비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의 두 화자가 이방인을 이해하는 과정은 온전히 마음을 기반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무조건적 형태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들이 시도했던 소통의 방식은 환대라고 하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지만, 이방인을 마음속으로 포용함으로써 진정한 소통의 전 단계까지 다가갔다고 분석할 수 있다.

 

 

 

성장의 과정


 

만약 두 소설을 ‘성장소설’이라는 특성에 집중해서 분석한다면, 이방인의 존재와 이방인으로부터 느끼는 거북함은 각 화자가 점차 성숙해지는 과도기적 단계에서 이들이 일상으로부터 느끼는 괴리감을 묘사하기 위한 서사적 장치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심리적 변동기를 거치는 사람들은 주변의 사물을 다르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집, 환경 그리고 일상을 그저 평온하고 익숙하고 지루한 것으로 보기보다는 마음 한구석에 계속 불편함을 지닌 채 모든 것으로부터 이질감을 느끼곤 한다. 각 소설의 두 화자 모두 이질적인 타인의 등장으로 이러한 혼란을 더욱 세게 느끼는데, 이는 외국인에 대한 거부감을 넘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특히 「중국인 거리」의 경우 화자인 나는 내가 거주하는 환경에 대한 거부감과 맞물려 여성으로서 자신이 살아갈 삶의 운명에 몸서리치는 모습을 보인다. 

 

정리하면 명목상으로는 외국인의 존재가 두 화자에게 괴리감을 주는 존재이지만, 사실상 그들에게는 그들 주변의 모든 사람들, 그리고 그들 자신마저 이방인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이질적인 존재에게 한 걸음 다가감으로써 변화하고 있는 자신의 삶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이질적 존재와 쌍방향의 정서 교류까지 시도하지는 못함으로써 여전히 미성숙의 단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모습을 보인다.

 

 

 

경계의 모호성


 

감상을 하며 흥미롭게 다가왔던 지점 중 하나는 모호한 공간의 경계이기도 했다. 이방인과 내부인의 거주 환경이 맞물리는 순간, 그곳이 누구의 공간인지가 모호해진다. 이방인은 내부인의 문화와는 상반된 행동을 보이며 원주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부인의 문화 및 정서에 동화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방인의 등장으로 인해 원주민의 삶의 모습에서도 변화가 일어난다. 

 

이를 생각하며 현대 사회에서의 국경의 개념이 함께 떠올랐다. 우리는 더 이상 땅의 경계로 국경을 나누고 있지 않으며 다양한 문화권을 고려하여 문화 영역에 따라 다른 국경을 설정한다. 또한 인터넷의 발달로 지표라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 디지털 세계 속에서 새로운 국경이 형성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각종 sns와 유튜브 등의 영상 매체로 인해 가속화되었다. 이제 국가 간의 경계는 국가의 문화적 사정과 뗄 수 없는 관계로 진화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적 정체성과 물리적 국경의 괴리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일례로 「중국인 거리」의 경우에도 우리나라의 경계에 속하는 지역에 중국 문화권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며 지역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이처럼 지표면을 기준으로 하는 경계가 문화를 기준으로 하는 경계와 불일치하는 것은 갈등의 속성을 내재한다.

 

 

 

정리하며


 

「명랑한 밤길」과 「중국인 거리」는 외국인을 관찰하며 느낀 솔직한 감정을 여실히 드러내는 작품이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이질성’이란 개인의 주관성을 기반으로 하며 상대적인 개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 소설의 화자는 그들을 ‘외국인’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그저 인간으로 대할 때 비로소 그들에 대한 소통의 가능성을 깨닫게 된다. 점차 이방인과 원주민의 구별이 불가능해지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기존의 ‘이방인’의 개념을 바탕으로 타자와 마주하기보다는 이들과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에디터 고은샘.jpg

 

 

[고은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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