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글에는 인생이 담긴다 [도서/문학]

페터 비에리, <자기 결정>
글 입력 2024.02.0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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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격>으로 유명한 저자 페터 비에리의 다른 책, <자기 결정>을 읽었다.

 

 

무엇보다도 서사적 텍스트를 쓰는 것은 자기 인식의 풍부한 원천이 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배우는 일은 여러 가지 매우 다양한 차원에서 이루어집니다.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차원은 선택된 특정 주제를 놓고 쓰는 것입니다. 마음속에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쓸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줄거리로 삼을 것인지 또는 역사적 소설을 쓸 것인지 등등...

 

글쓴이가 무엇을 선택하는지는 겉으로 보기에 그저 단순한 우연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글쓴이가 어떠한 갈등을 겪고 있고 어떤 상처를 가지고 있으며 어떠한 갈망과 행복을 원하는지가 주제의 선택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글쓴이는 자신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됩니다.


- <자기결정> 中

 

 

어릴 때부터 나는 시답잖은 농담과, 사람들 앞에서의 웅변, 신랄한 토론을 가리지 않고 말하는 자리를 원래 좋아하는 편이긴 했으나 펜을 잡으면 주로 중구난방이 되곤 했다. 스무살 때 뒤늦게 글 쓰는 법을 좀 배운 뒤에, 지금은 에디터가 되다니 참 모를 일이다.

 

저자는 글을 쓰는 것이 (오히려 독서보다도) 자신의 자아상을 발견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자신에 관해 쓰는 글들과, 페터 비에리 본인이 늘 강조하듯 그사이 사용하는 언어가 무의식에 기인하기에, 자신에게 거대한 내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글이 매력을 가지려면, '무의식의 판타지'라는 깊은 정서 속에서 오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도 인상 깊었다. 여러모로 언어를 중시하는 학자인 만큼 정신분석과도 맞닿아 있는 면이 많다고 느꼈다. 정신분석에서 굉장히 중시하는 것 중 하나도 언어와 그 시니피앙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다."라는 말을 글에서 자주 쓰는 편이다.

 

유진성 작가의 소설에서 처음 본 말인데, 나는 이 구(句)를 꽤 좋아한다. 페터 비에리의 말처럼, 인생이란 끝없는 자기 확인과 자기 결정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사유로, 글로, 경험으로 나를 확인하고 무엇이 나인지를 결정한다.


각설, 세상에 온전한 나의 것이란 존재할까? 사람은 외국어로 생각할 때 기본적 습관마저 버릴 정도로 생각의 폭이 달라진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나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언어의 사용자로 태어나 많은 사람을 만나 많은 것을 내면화했는데, 이러한 나에게서 온전히 나의 것을 찾을 수 있을까? 그 출처만을 따지자면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 주장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대다수의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그가 나고 자란 곳에서 벗어나기 힘들며, 큰 틀에서 필연에 가깝다는 생각마저도 든다. 운에 따른 요소가 지나치게 크다. 특히 약하거나 어릴 때, 내가 소속된 곳을 거스르기란 쉬운 선택이 아니다.

 

따라서 그 시기의 선택은 온전히 나의 것이라 보기 더더욱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어린 시기의 아이들은 주변 환경을 빠르게 답습(踏習)한다.


이런 과정과 남들보다도 훨씬 한정적인 환경에서도 사유를 통해, 자신이 속해 있는 곳의 억압과 압제 속에 '노예'가 되지 않은 많은 사람을 존경한다. 악의의 통제가 자신을 집어삼키는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사유하길 멈추지 않고 '어떤 것이 나인지'를 떠올렸을 많은 시도를, 그리고 결국 '그것은 내가 아니다.'를 외치며 본질을 회복해 낸 용기를 존중한다.

 

*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내 글을 썩 좋아하는 편이다. 완결성이 남다르다거나, 필체가 수려하진 않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무의식의 판타지'에 대한 서사를 나 본인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증상'과 '결핍'을 제대로 직시하고 이와 동반해 살아갈 준비가 되는 것이야말로 극복일 것이다.


페터 비에리는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글'이라는 매개는 충분히 나의 모습을 내가, 또 남들이 보게 할 수 있는 창구와도 같은 것이다. 이를 통해 자아상을 발견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는 아니다. 그저 묵묵히 하루 또 하루, 삶을 버텨내고 쌓다 보면 어느 순간 누군가 읽을만한 재미난 거리가 생기지 않을까.

 

 

 

김우현.jpg

 

 

[김우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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