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꿈꾸는 자 - 너를 위한 글자 [공연]

글 입력 2024.02.0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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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롤라.jpg



 

캐롤이 고향에 돌아왔다.

 

“네가 하는 행동들이 20투리라고 생각하겠지만, 70투리 정도로 나에게 들린다는 걸 알아주고 조용히 행동해주길 바라.” 괴짜 발명가인 투리는 캐롤의 컴백홈이 성가신다. 캐롤의 발랄한 소음이 불규칙 변수와 같아서 발명에 집중할 수가 없다. 자신만의 세상에 생긴 균열은 투리에게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을 암시한다.

 

반대로 캐롤의 표정과 노래는 투리와 다르게 매우 밝다. 가사를 곱씹으면 꼭 밝지만은 않지만. “모든 게 그대로인 마나롤라, 나만 훌쩍 커버린 시간들,” “난 요즘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게 다 감사하게 느껴지거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나 각자 자신만의 색깔을 내고 있는 예쁜 과일들. 이런 것들을 내 눈으로 보고 느낀다는 게 엄청난 축복이란 생각이 들어.” 눈이라는 단어가 내 귀에 꽂힌다. 복선인 듯하다.

 

마지막으로 한 작품만 쓸 수 있다면 어떤 걸 쓰고 싶은지 캐롤이 도미닉에게 묻는다. 작가인 도미닉은 나다운 글을 써보길 권한다. 나다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캐롤의 말에 도미닉은 꿈에 대해 써보길 권한다. 캐롤이 작가의 꿈을 잃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투리는 캐롤의 속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툭하면 툴툴댄다. 그러다 캐롤이 두고 간 노트를 읽게 된다. “소나기 안에 담겨진 햇살을 향한 갈망, 자신에 대한 연민, 어두운 밤을 두려워하는 시간들.” 투리는 캐롤이 밤의 어둠을 무서워하는 줄 알고 자신이 발명한 등불을 그녀에게 버린다(선물한다). 아이처럼 기뻐하는 캐롤의 모습을 보며 잊고 있던 자신의 꿈을 발견한다.

 

“많은 걸 바라지 않아, 성공 따윈 원하지 않아, 그저 다시 누군가가 내 작은 발명품으로 미소 짓는다면.” 어머니를 웃게 하기 위해 발명품을 만들었던 꼬마 투리. 캐롤의 웃음을 보니 투리는 자신이 다시 필요한 존재가 된 느낌이다.

 

어둠이 물러간 투리의 세상과 다르게 어둠은 캐롤을 삼키고 있었다. 오른쪽 눈마저 시력을 잃어가는 캐롤을 투리는 어떻게든 돕고 싶다. 어딘가 외롭고 어딘가 편안한 낯설지 않은 느낌이 투리와 캐롤을 이끈다. 존재 자체로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

 

투리는 발명협회의 초청으로 런던으로 갈 기회를 버리고 캐롤 곁에 있으려 했지만 그녀의 조언을 따라 떠나기로 결심한다. 고심 끝에 그녀가 작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머릿속 생각을 종이 위로 옮기는 타자기를 선물한다. 어둠 안으로 숨지 말고 마음의 빛을 간직하길 바라면서.

 

“고마미워.” 너를 위한 글자를 삐뚤빼뚤 누르는 캐롤과,

 

“고마미우면 (...) 편지해줄래?” 나를 위한 글자로도 써달라는 투리.

 

둘의 이야기는 마음에 빛을 선사한다.

 

연극을 보는 내내 앞뒤 양옆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감동적이라 많이들 우는 것 같았다. 아쉽게도 나는 많이 몰입하진 못했다. 꽃다운 나이의 아가씨가 갑자기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면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프거나 집에 일이 있거나 하지 않을까. 연극 초반부터 원인 파악에 나서느라 머리가 바빴다. 그러다 소나기 노래에서 무엇이 우산이 되어줄까 하는 도미닉보다는 응결된 수증기 어쩌고 하는 투리를 봤을 때 가장 와닿았고 감동적이었다. 투박한 투리의 모습이 가장 친한 누구와 닮아 있어서인 것 같다.

 

각 캐릭터는 다르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동일하게 들렸다. 상황이 어떻든 꿈이라는 빛을 잃지 말라는 것. 삼류 로맨스 소설을 쓰는 사람이란 평을 듣더라도 작가의 길을 걸었던 도미닉, 쓸데없는 것만 만든다는 주위의 시선에도 발명을 해왔던 투리, 어둠 속에 혼자 있더라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는/않을 캐롤처럼. ‘꿈’이야말로 반드시 지녀야 할 ‘너를 위한 글자’로 느껴졌다. 꿈꾸는 자는 빛나고, 강건하며, 영원하니까.

 

 

 

김윤 에디터 명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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