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종교지만 나는 절이 좋아 - ep.2 [여행]

절에서의 두번째 밤을 보내다-템플 스테이(용문사 편)
글 입력 2024.01.30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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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스테이 에피소드 1편에서 다루었던 다소 충동적이었던 낙산사에서의 첫 템플스테이 이후, 나는 또다시 절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이번에는 계절과 시기를 고려하고 후기도 찾아보며 나름 무작정 떠났던 첫 여행보다 체계적인 준비를 했다. 가을의 끝자락, 나무들이 색색깔 낙옆 옷을 벗고 그 흔적이 소복이 쌓이는 양평의 용문산 깊은 곳에 위치한 사찰을 나의 두 번째 목적지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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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서울 근교에 있는 양평의 교통이 수도권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짐작했던 나의 오산과 달리 어딜가나 줄지은 나무들과 냇물이 펼쳐진 풍경을 품은 이곳은 시골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의 생활양식을 담고 있었는데, 푯말만 덩그러니 세워진 버스정류장에 붙은 지류 시간표를 손으로 짚어가며 읽다가 문득 이런 경험도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그게 또 참 좋았다.


시간표에 명시된 시간에 정확히 도착하는 버스에 일정을 맞추기 위해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카페도 들렀다. 외지인 티를 폴폴 내며 어리둥절함을 감추지 못하는 내게 여느 손님들과 다를 바 없이 대하는 이곳의 정서 덕분일까, 금방 양평의 시내에 적응한 나는 아주 오래전 유년기를 이곳에서 보낸 것만 같은 착각같은 향수에 젖으며 덜컹거리는 버스 위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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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 초입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 얕은 경사의 산길(사실상 산책로라 봐도 무방할 정도의)을 올라야 용문사에 당도할 수 있다.

 

대부분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을 남긴 후 돌아올 봄을 기약하고 있었지만, 부드러운 흙길 위로 쌓인 낙옆은 아직 가을을 보내지 못한 내게 심심한 위로를 안겨주었다. 빠르게 걸으면 10분 안에도 도착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였지만 천천히 용문산의 풍경을 눈에 충분히 담고 싶었다.


이곳 풍경에서 독특한 점을 찾아보자면 단연 이상하리만치 많은 돌탑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염원과 바람을 담은 돌탑이 산길을 올라가는 내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잊고 살던 막연한 나의 꿈과 바람을 더듬어 보았다.

 

그 모든 상념 덩어리를 뭉쳐 넣는다는 생각을 하며 가장 모서리가 둥근 돌을 찾아 누군가가 쌓아놓은 돌탑 위에 올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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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낮에 방문 했음에도 용문사는 생각보다 붐비지 않았다.

 

고즈넉한 고도의 산 속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이루 말할 수 없는 평안감을 준다. 가만히 버티고 선 나무와 그 위로 드리운 화려한 문양의 누각, 그 사이로 간간히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풍경 소리를 들으며 도심에서는 느껴보지 못할 이곳에서의 삼삼한 자극을 온 몸으로 받아들여 본다.


용문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작은 불단으로 향하는 계단에는 이제는 안보이면 섭섭할 돌탑 외에도 아기자기한 불상 조각들이 즐비해 있었다. 마치 작은 전시회를 보는 것처럼 도자, 자개 등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진 불상들과 그 사이에 놓인 염주를 들여다 보며 햇빛을 머금어 더욱 신성한 기운을 뿜어내는 재단 앞에서 묵념했다.


내려오는 길에는 누군가의 간절한 바램을 담은 채 일렁이는 불꽃을 품은 촛불들, 글귀가 적힌 기왓장 더미와 이 사찰의 명물인 천년의 시간을 지킨 은행나무를 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사찰에 모인 사람들은 온 마음을 담아 나무에, 촛불에, 기왓장에 그 염원을 담았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품은 이 사찰에서는 무엇이든 괜찮을 것 같은 마법같은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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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스테이를 제공하는 사찰마다 숙소를 배정하는 방식이 다른데, 나처럼 혼자 방문하는 사람들은 모르는 타인과 한 방을 써야 하는 상황을 감수해야 할 때가 많다. 물론 그것 또한 새로운 인연을 이을 기회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혼자가 좋은 내향형 인간인 내게 1인 1실을 제공하는 용문사의 시스템은 너무나 은혜로웠달까.


간단한 사찰 소개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방 안에 있던 책상을 창가로 옮겨 책을 읽었다. 창문 밖으로는 저마다의 색을 띤 나무들의 군집으로 이루어진 산과 기와가 깔린 지붕을 지닌 생활관, 소원을 적는 용도의 기왓장을 첩첩이 쌓아놓은 공터가 보였는데, 별 대단한 풍경도 아니거니와 보다보면 이상하리만치 눈의 피로가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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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앞 마당에는 잘 조성된 잔디와 의자, 테이블이 놓여 있었는데, 이 곳을 터전으로 삼은 고양이들이 마치 제 영역인 양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검은 색, 갈색, 흰색 털이 오묘하게 섞인 '솜털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와 친해지려는 부던한 노력 끝에 책을 읽는 나의 지척까지 다가온 솜털이를 쓰다듬는데 성공하며 생각했다.

 

그래, 이런게 행복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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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곳곳에는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잘 발견하면 소소한 행복을 안겨주는 것들이 많다. 간도 별로 하지 않고 태반이 나물로 이루어져 있지만 어쩐지 밖에서 먹던 음식보다 맛있는 공양처럼 말이다.


인공적인 불빛이 부재해 칠흙 같은 어둠이 조금 빨리 찾아오는 절간을 촛불의 미약한 불빛에 의지해 더듬어 가며 찾아간 대웅전에서 불경을 외고 절을 하는 순간에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한 마음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하고, 그 신비한 경험으로 내일을 일출을 기대할 희망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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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불을 마치고 공용 찻간에 우연히 들렀다가 이루어진 모임 시간이 이번 템플 스테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곳에서 나처럼 혼자 템플스테이를 하러 온 사람들이 우연히 한 테이블에 둘러 앉게 되었는데, 템플스테이를 무려 10번 넘게 해보았다는 차분한 인상의 중년 여성 분의 주도로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연령대도 하는 일도 살아온 경험도 모두 다른 사람들과의 담소는 인생을 대하는 또다른 시각과 자세를 보여주었다.

 

앞으로 살아갈 내 앞에 놓인 길이 참 외롭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미 그 길을 다녀온 사람, 나보다 더 멀리 그 길을 앞둔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우리 모두가 어쩌면 다르게 살아가면서 비슷한 고충과 아픔을 삼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어떤 위로보다 그것이 위안이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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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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