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언덕의 한 중간에서 - 연극 '언덕의 바리'

글 입력 2024.01.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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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2023창작산실_언덕의바리_대학로예술극장대극장.jpg

 


우리의 안온한 현재는 쉽지만은 않았던 역사의 점철로 이루어진다.

 

역사 속 인물들을 마주하는 우리의 마음은 어떠한가. 그들의 미래를 뚫어지게 아는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그들의 선택을 바라볼 것인가. 무대 바깥 어두운 객석에서, 그들이 가장 격렬할 때, 나는 침묵의 가운데에 앉아 조용히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연극 ‘언덕의 바리’는 임신한 몸으로 폭탄을 던진 독립운동가 안경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극은 안경신의 꿈과 현실을 오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꿈속 언덕에서 배를 태워주는 소년을 만난 안경신은 감옥에서 모진 고문으로 죽어간 여자들을 구할 수 있는 곳으로 가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한 역사의 시작 지점이 된 그곳에서부터 이야기는 전개된다.

 

1888년 7월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난 안경신은 서른 두 살에 삼일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체포되어 29일간 감옥에 구금된다. 이 이후로도 안경신은 무장투쟁의 길을 멈추지 않는다.

 

이후 안경신은 대한애국부인회에 참여해 독립자금을 모금하여 전달하는 일을 하다가 상해로 피신하고, 독립의 결의를 호소하기 위해 폭탄 거사를 준비한다. 그녀는 광복군총영이 기획한 결사대의 일원으로 참여해 폭탄 제조 훈련에 참여한다.

 

결사대는 8월 3일 거사를 단행하지만, 안경신이 속했던 2조는 빗물 때문에 실패에 이른다. 결국 안경신은 1921년 3월 20일 체포된다.

 

폭탄을 던질 당시 안경신은 만삭이었고, 체포되기 직전 출산하였다. 여전히 편치 않을 몸으로 체포된 안경신은 10년 형을 선고받는다. 1927년 12월 7년 만에 가석방된 안경신은 눈이 멀어버린 아들과 재회하고, 그 이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만삭의 몸으로 폭탄을 던졌을 안경신의 선택과 마음을 헤아려본다. 그녀에게는 옳고 그름으로 나뉘는 단순한 두 가지의 선택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수만 가지의 갈래로 나뉘는 갈림길에 서서, 한 아이의 엄마 혹은 한 여성도 아닌, 투쟁의 의지로 똘똘 뭉친 독립운동가의 뜨거운 마음으로 폭탄을 던졌을 것이다.

 

*

 

객석과 무대는 한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관객들은 ‘ㄷ’ 모양으로 무대를 둘러앉아 배우들의 생동감 넘치는 연기를 볼 수 있었다. 본래 객석의 역할을 하는 곳은 무대의 연장선으로 이용되었다. 그곳은 무성한 풀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언덕의 역할을 했다.

  

실제로 배우들이 연기를 펼치는 공간 위에는 아무런 무대 장치가 없었지만, 극은 정말 빈틈 없이 흘러갔다. 그 모든 여백은 배우들의 격렬한 몸짓과 극장이 터져 나갈 듯한 에너지로 꽉 채워졌다. 배우들은 모든 대사와 움직임을 함께 했는데, 감정과 영혼이 스며든 그들의 움직임은 극에 몰입감과 생동감을 더했다.

 

때로는 절박함에 몸부림치고, 때로는 단호하게 매듭짓는 그들의 손짓과 발짓, 그리고 숨 가쁘게 헐떡이는 호흡은 현재와 역사의 연결 지점으로 우리를 사정 없이 끌어당겼다.

 

‘언덕’은 무엇을 의미할까. 하늘과 땅의 중간, 생과 죽음의 한 가운데, 그 의미를 넘어서 안경신과 한 시대를 지나온 영혼들이 차곡차곡 쌓아 올린 시간의 언덕 아닐까.

 

우리는 그들이 걸어온 길들로 이루어진 크고 작은 언덕들에 또 다른 시간들을 겹겹이 쌓아 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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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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