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영화]

마지막 몸부림
글 입력 2024.01.12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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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속 그 어디에도 관객은 없다. 마지막 콘서트라 불리기 민망할 정도로 초라하다. 마이크 몇 대와 피아노가 전부. 심지어 영상은 흑과 백으로만 존재한다. 내 생에 가장 지루한 103분이 되겠구나. 이렇게 심플할 거면 20곡 음반만 내지 왜 영상으로 만들었을까. 팝콘 없음이 후회된다.


피아노에 비친 건반, 건반 위 손가락 그림자, 외로이 웅장한 그의 뒷모습이 심상치 않다. 음마다 끈을 연결하여 그는 한 올 한 올 지휘하고 있었다. 피아노 줄 사이의 집게핀은 병정처럼 그의 쉰 소리를 따라 구령을 맞추고, 힘없이 울리는 페달 소리는 잊히기 두려워하는 누군가의 호소 같다.

 

대장암 투병 중이던 당시에 하루에 3곡씩 2~3번의 테이크를 거쳐 8일간 찍었다는데 얼마나 간절했을까. 관중 하나 없이 관중을 압도하는 그의 연주.

 

“다시 합시다.”

 

그가 마지막 힘을 쏟아내고 있음이 느껴진다.

 

 

이걸로.jpg

 

 

카메라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왼편에서 그를 비춘다. 그가 고개를 숙일 때마다 보이는 광마저 그를 막을 수 없다. 그러다 연주 뒤로 갈수록 흑만 남는다. 그가 사라졌다 나타나고 다시 사라지고. 그의 임종을 암시하는 듯하다.

 

떠나는 발소리 뒤로 빈자리만 남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건반은 지휘자 없이도 움직이고 있지만.

 

류이치 사카모토

1952.1.17 - 2023.3.28


Ars longa, vita brevis.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생전 그가 좋아했다던 글귀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단지 그가 좋아했던 문장이라 엔딩에 넣었을까. 영화를 연출한 그의 아들이 그를 대신해 예술을 향한 아쉬움을 표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우리에게 인생의 유한함을 말해주려고, 끝이 있음이 정해져 있으니 후회 없이 잘 살라고.

 

끝남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영화관을 나온다. 인적 없는 밤길에 종종걸음을 놓는다.

 

딴 따라 따라라라 쿵 딴 따라 따라라라

 

마지막 콘서트를 생각하며 도착해서도 그의 곡을 반복해서 듣는다. 다시, 다시, 누구처럼.

 

103분의 여운은 길고, 새벽은 짧다.

 


 

김윤 에디터 명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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