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쉬운 마음을 담아

친구에게
글 입력 2024.01.1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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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게서 저녁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나는 점심에 만나는 것이 좋아요. 점심은 견디지 않아도 됩니다. 점심은 고여 있지 않아요. 점심은 가능합니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있어요. 우리는 점심에 만나요. 시를 쓰려고 만나서 시는 안 쓰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시 이야기를 해요. 집에 가서 시를 쓰고 싶어지도록. 혼자 쓰는 기분이 들지 않도록. 어느 날엔 멍하니 각자 창밖만 보다가 헤어진 적도 있어요. 내가 하는 고민을 네가 대신하고 있구나, 나는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구나. 이런 이야기도 나누면서요. 사실 나는 무슨 이야기를 더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우리에 관해서요. 우리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말자고 했던 적도 있는데······ 우리 대신 어떤 말로 써야 할까요. (후략)

 

- 안미옥, 「만나서 시쓰기」

 

 

2023년 7월의 끝 무렵. “내가 있을게.”

 

어떤 일에 같이 열을 내다 네가 이렇게 말했다. 너는 침대에 앉아서, 나는 방바닥에 너를 등지고 누워서. 계속 한 방향을 보고 있자니 목이 아파 잠깐 돌려누운 참이었다. “내가 있을게. 순순해지지 말자.” 나는 누운 자세 그대로 약간 얼어서 냉장고와 바닥의 틈에 어색하게 시선을 두고 “나도야.”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네가 있겠다는 말에 대한 대답이었던 것 같지.

 

기온이 33도까지 치솟았던 날이었다. 우리가 갔던 카페는 통유리창인 데다 2층에 있었어서 창밖으로 보이는 낮은 건물들과 네가 사는 동네의 전경, 땅거미가 앉는 하늘이 한눈에 들어왔던 게 기억이 나. 밖이 완전히 어둑해졌을 때, 카페 사장님께서 우리가 앉은 창가로 오셔서 책상 위에 있던 노란색 조명을 ‘탁’ 켰잖아. 그걸 책을 읽는 내 쪽으로 ‘슥’ 밀어주셨고, 곧 카페의 전체 조명이 ‘탁’ 하고 꺼졌다. 그 ‘탁’과 ‘슥’과 ‘탁’으로 미끄러지듯 변하는 시공간의 이미지가 환상적이고 또 훌륭해서 우리는 동시에 눈을 맞추고 좋다, 말하고 웃었다.

 

네게는 쉬워지는 말, 좋다. “나는 이런 게 좋고 또 저런 게 좋았어.” “참, 이것도 좋았어.” 내 말을 듣다 네가 웃었다. 죄다 좋은 것뿐이라 내 말에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고 했다. 나는 아마도 이건 내 콩깍지가 아니라 객관적 사실에 가까운 주관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더듬더듬 말을 골랐을 거고, 하지만 별 수없이 내 말은 “그래서 좋았어.”로 끝났을 거다.

 

물리적인 시간적 개념으로만 보자면 모든 현재는 단 하루의 과거도 건너뛰고는 올 수 없는 곳이다. 그렇다면 나는 네 꼿꼿한 등을 따라서 틈틈이 의자를 바짝 당겨 앉거나 내 꿈인 것처럼 네 꿈을 꾸던 17살과 19살과 21살과 24살들에 근거해, 너는 드물게 내가 믿고 있는 세상의 구석이고 또 내가 지금의 나에 관해 믿는 구석 중 하나는 너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건 좀 이상한 말이다. 그렇지만 막연하고 분명하게 느끼는 건, 너와 포개지고 멀어지기를 반복하면서 만들어졌다고 믿고 있는 그 시절의 아주 무른 세계가 지금의 나에게서 무관해질 수 없다는 점이다. 어젠 우리가 짝으로 만났던 사건을 떠올리면서 과연 너는 하늘이 내게 점지해 준 친구! 라고 또 유치한 생각을 해버렸어. 철없게도, 한참 어릴 적에서 변한 게 하나도 없이 나는 여전히 너와 더 지독해지고 싶은가 보다.

 

오래전 네 생일 편지에 ‘너에게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적었던 걸 기억해. ‘버팀목’이라는 단어를 함께 썼던 걸 보면, 어설픈 비유로나마 나는 너에게 의지가 되는 친구이고 싶은 마음을 전했나 보다. 지금은 이런 부탁을 얹어. 있다는 믿음 - 살아있다, 남은 게 있다, 있었다, 아직 있다, 있을 것이다 - 이 너에게 필요할 때, 나는 아주 간결하고 쉬운 마음으로 계속 있다고 말할게. 그건 내가 할게. 그건 내가 할 수 있게 해줘.

 

그러니까, “내가 있을게. 순순해지지 말자.” 이건 네가 한 말, “나는 계속 있다고 말할게.” 이건 내가 하는 말. 비슷하고도 다른 말, 다르고도 비슷한 말. 이건 꼭 지금의 우리 같다. 다음날 너와 늦은 점심을 먹고 멀리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쭉 이 노래를 들었어. ‘우리 나중에 함께 살면 라일락 꽃을 심어놓자.’ (밍기뉴, 「라일락 꽃 : 첫 사랑, 젊은 날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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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너와 각각 또 함께 본 제주 함덕바다

 


[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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