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바깥이 좋은 내향형 인간의 나들이 목록 1편 [공간]

혼자 이렇게 놀아보는 건 어때요?
글 입력 2023.12.22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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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MBTI의 힘을 느끼는 요즘이다. 잠깐의 유행으로 금방 사그라들 줄만 알았던 MBTI는 이제 우리 사회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상대를 파악하는 지표가 되어 버린 듯 하다. 내가 자주 듣는 말은 "너가 I라고?"인데, 내향형 인간이라 하면 주로 집에서 상주하는 집순이 일거라는 일종의 무의식이 관여된 의아함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집순이, 밖순이로 따져보자면 확신의 밖순이다. 집에는 주로 늦은 시간에 들어와 잠만 자는 날이 태반이고 어쩌다 하루 종일 집에 있던 날 저녁에는 이유 모를 자괴감과 우울함을 느끼기도 한다. 집에서는 정말로 아무것도 안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누워서 핸드폰을 보는 것만큼 편하고 쉽게 끌리는 것도 없지만, 그것이 보람찬 즐거움을 주지는 못한다.


한달에 10만원이 넘는 교통비를 낼때마다 나는 내가 얼마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는지 체감하곤 한다. 누군가와 함께 하지 않더라도 혼자 음악을 들으며 좋아하는 풍경, 공간에서 좋아하는 것(그것이 전시회가 되었든, 책이 되었든)을 보는 일은 어쩌면 나 스스로와 데이트 하며 알아가고 친해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오늘은 나에게 일상에서의 소소한 행복을 주는 바깥 나들이 목록을 적어보고 추천해보려고 한다.

 

 

 

물에 비치는 다양한 풍경을 바라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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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옷을 갈아입으며 느리지만 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풍경들을 좋아한다. 가령 강물이 머금은 낮의 햇빛은 눈이 부시도록 반짝거리지만 밤의 인공적인 빛을 먹은 강물은 은은한 빛을 내뿜으며 또 다른 얼굴을 보여 준다. 항상 똑같은 모습인 것 같지만 사실은 단 한번도 같은 모습이었던 적이 없다. 강물이 거울처럼 비추는 세상의 민낯은 별 감흥 없이 지나치던 풍경이 사실은 이렇게나 아름다웠다고 보여주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을 좋아한다. 내가 추천하는 첫번째 물멍 스폿은 노들섬이다. 주말의 노들섬에서는 다양한 공연과 축제가 열리며 찾는 이들이 많지만, 내가 사랑하는 것은 평일의 고즈넉한 분위기 속 노들섬이다. 특이하게도 노들섬 내의 모든 실내 공간 중에서 김밥집이 가장 좋은 뷰를 지니고 있다. 이 곳에 크게 난 창은 대교 위를 지나다니는 차들, 끝없이 밀려오는 강물과 버들 나무, 바람에 스산하게 흔들리는 갈대까지 다채로운 풍경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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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반찬 삼아 김밥으로 배를 채우고 나서는 산책 겸 노들섬 한 바퀴를 돌아 보는 것을 추천한다. 노들섬은 타원형으로 이어진 산책로를 지니고 있는데, 거치는 것 없이 강물을 바로 옆에 두고 걸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곳곳에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있는데 날씨가 좋은 날은 이곳에 앉아 하염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물멍'을 하다 보면 마법같이 갖은 상념이 가라 앉기도 한다. 


제멋대로 자라난 갈대와 나무들을 보는 재미도 있다. 잘 손질된 조경은 아니지만 위태로운 듯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이름모를 풀꽃들은 어쩐지 방문 할때마다 자라나는 모습을 찾아보고 응원하게 된다. 혹독한 겨울 바람을 한 차례 견디고 봄에 다시 만나 한뼘쯤 더 큰 모습을 보면 괜히 뿌듯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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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뷰를 지닌 카페에 방문하는 것도 나의 소소한 낙 중 하나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물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으로 동작대교 위의 노을 카페를 추천하고 싶다. 대교에 우뚝 솟아난 기이한 다이아몬드 외형의 건축물은 언뜻 등대처럼 보이기까지 하는데, 놀랍게도 안쪽으로는 넓직한 테이블과 코앞에서 강물을 조망할 수 있는 완벽한 뷰가 나온다. 대게 한강 뷰 카페라 하더라도 건축물 너머 저 멀리 강이 보이기 마련인데, 이 곳은 대교 위에 있는 만큼 가리는 것 하나 없이 눈 앞에 펼쳐지는 강물과 마주할 수 있다. 


이 곳의 풍경이 특별한 이유로는 대교 위를 지나는 열차도 한 몫을 한다. 나는 주로 카페에서 작업을 하거나 책을 읽는 일이 많은데 집중을 하다가도 덜컹덜컹 대교가 울리는 느낌이 들면 어김없이 창 밖을 바라보곤 한다. 강물 위를 가로지르는 열차는 몇 분 만에 사라지지만, 그 잠깐의 찰나가 주는 낭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간지러움을 준다. 또 가끔은 그 열차에 타고 있을 사람들 또한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고단한 일상 속에서 함께 아름다운 풍경으로 위안을 삼는 그 마법 같은 순간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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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것도 스트레스를 푸는 데 아주 좋은 방법이다. 한국은 사실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는 편이 아니고, 소유하고 있는 자전거가 없다면 따릉이 대여소를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또 이렇게 어렵사리 나만의 루트를 찾는 것 또한 하나의 즐거움이 되고 자전거 타기에 애착을 붙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나는 주로 노들섬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리는데, 노들섬을 출발지로 둔다면 가장 손쉬운 루트는 여의도 공원 방향으로 빠지는 한강변 도로를 타는 것이다. 그런데 자전거로는 여의도 공원까지 생각보다 정말 금방이라 한창 속도가 붙고 신날때 자전거에서 내려와야 해서 항상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래서 최근에는 반대편으로 대교를 조금 더 타고 마포역 쪽으로 가는 루트를 개척했다.


개척이라는 말이 거창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정말 그도 그럴 것이 대교만 따라 가다 보면 절대 공원 아래로 내려갈 수가 없어 길을 잃기 마련이다. 이때 조금 주의를 기울여보면 대교 아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마포역 쪽으로 향하는 한강변으로 빠질 수 있는 유일한 루트이지만 그 어떤 지도에도 나와있지 않다. 그래서일까, 이렇게 개척한 길에는 알 수 없는 애착이 들곤 한다.

 

 

 

제멋대로 빛깔과 모양을 가진 빌라촌 골목을 걸어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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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잘 들여다보면, 어떤 상호명도 아파트명도 없는데 여러 건축물의 터만 덩그러니 그려져 있는 경우가 있다. 대게 그곳은 높은 확률로 재개발이 아직 되지 않은 빌라촌일 것이다. 내가 처음 빌라촌에 매력을 느낀 것은 고등학교 3학년, 한창 척박한 수험 생활을 견디던 때였다. 학교와 집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독서실에는 카페같은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에 빌라촌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창가 자리가 있었다. 


그 창가자리는 마법같은 힘을 지녔다. 그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집보다 독서실에 더 빨리 가고 싶어졌고, 지루하고 힘든 공부에 지쳤다가도 고개를 들어 빌라촌을 눈에 담으면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풀렸다.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노래(가령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에 수록된 곡이라던지)를 들으며 각기 다른 색과 모양새를 가지고 울퉁불퉁 존재감을 자랑하는 빌라촌의 지붕을 훑어 보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을 누군가의 하루를 상상해 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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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집중이 안 될 때에는 특단의 조치로 골목 산책을 나섰다. 커피 한잔을 사서 빌라촌 골목으로 직접 들어가 정처 없이 걷는 것이다. 산책을 하다보면 창으로 보이는 일부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즐거움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파란 지붕 집의 감나무에 남겨진 까치 밥, 미로 같은 골목 골목을 곧 잘 숨어 다니는 길 고양이들, 이제는 대형 마트의 등장으로 찾아보기 힘든 정감 있는 간판을 단 동네 슈퍼까지, 골목의 모든 것은 이상하게도 수험생이었던 그 시절 나에게 위안이자 행복으로 다가왔다. 


이제는 그때 다니던 독서실이 없어지고, 내가 애정하던 빌라촌을 담은 창가 자리는 없지만 나는 아직도 빌라촌 골목을 산책하는 취미를 지니고 있다. 공장 컨베이어 벨트 위 두부들처럼 똑같이 네모 반듯한 모습의 건물들 보다 제멋대로 이런저런 모양의 지붕과 떼묻은 외벽, 형형색색 전단지가 붙은 가로등을 품은 골목이 나는 더 좋다. 어린 시절, 가까운 이웃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의심 없이 무언가를 나누던, 사람 냄새 나던 그 시절 그대로 멈춰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주기 때문인 것 같다. 

 

가끔은 지도를 켜고 재개발이 되지 않은 빌라촌을 찾아 가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각자의 이야기와 특유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골목은 당신에게 온정과 낭만을 나누던 그 시절 그대로를 느낄 수 있는 시간 여행을 선물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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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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