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 사랑은 낙엽을 타고

글 입력 2023.12.2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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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주제로 한 많은 이야기는 판타지에 가깝다. 많은 이야기가 사랑의 희로애락 중 '희'와 '애'만 똑떼어내 사랑을 한없이 달콤하게 묘사한다. 모든 상황이 주인공을 도와주듯 착착 맞아떨어지고 우연의 순간들이 쌓여 운명을 만든다. 그러나 이는 현실의 사랑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사랑의 맛은 달콤씁쓸에 가깝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기까지 그리고 가까워진 후에도 수많은 삐거덕거림의 순간들을 마주한다. 마법처럼 나타나 주인공을 엮어주는 조력자는 없는데 마주하고 헤쳐나가야 할 문제들만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12월 20일 개봉한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동화 같은 사랑 대신 달콤 씁쓸한 사랑을 그리고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차가운 도시를 유랑하는 외로운 두 남녀 '안사'와 '홀라파'가 빚어내는 멜랑꼴리한 헬싱키 빈티지 로맨스를 담고 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만의 개성을 담은 영화는 많은 영화인들의 호평을 받으며 칸 영화제 심사위원 상을 수상, 로튼 토마토 99%를 기록하는 등의 성과를 남겼다.


 

 

퍽퍽한 삶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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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안사와 홀라파의 삶은 참 퍽퍽하다.

 

마트에서 일하는 안사는 매일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에 할인 태그를 붙이고 상품을 폐기하는 일을 한다. 퇴근 후에 먹으려고 유통기한이 임박한 음식을 하나 가져갔다는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는다. 공장에서 일하는 홀라파는 노동의 고됨을 술과 담배로 잊는다. 공장 기계의 고장으로 홀라파가 다치자 공장에서는 그가 술을 많이 마시는 탓이라며 그를 내쫓는다. 라디오에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관한 소식이 여전히 흘러 나온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삶은 이게 로맨스 영화가 맞았던가 싶을 정도로 침울하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은 전쟁, 비정규직 노동자의 팍팍한 현실 등의 주제를 담담한 시선으로 전달한다. 어딘가 바퀴 하나 빠진 듯 이상하지만 그럼에도 어찌어찌 위태롭게 굴러가는 세상,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두 주인공을 무심하지만 냉소적이지 않게 그려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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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침울하고 팍팍한 현실에 대한 내용임에도 좌절하거나 체념하는 기조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우정의 모습을 전하며 희망을 이야기한다.

 

안사가 유통기한이 임박한 음식을 가지고 갔던 게 걸려 회사가 해고 통보를 하자 함께 일하던 동료 두 명은 안사뿐만 아니라 자신 또한 해고되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세 여성이 나란히 걸어 나올 때 퍽퍽한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 환기된다.

 

삶에 지친 안사와 홀라파는 우연히 바에서 서로를 만난다. 이들은 서로의 이름도 모르지만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무슨 운명의 장난처럼 이들은 계속해서 엇갈린다. 홀라파는 유일하게 알고 있던 안사의 번호를 잃어버린다. 안사의 집에서 식사를 할 때 참지 못하고 겉옷에서 몰래 술을 꺼내 마시다 안사의 가족들이 술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홀라파가 금주에 성공하고 안사를 다시 보러 가기로 했을 땐 기차에 치여 혼수상태에 빠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수많은 엇갈림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안사와 홀라파는 서로를 사랑한다. 홀라파는 안사를 생각하며 의존하던 술을 멀리하고 안사는 홀라파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병실을 찾아가 뉴스를 읽어준다. 강아지 채플린과 안사, 홀라파가 함께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이들에게 또다시 처참한 일상이 찾아오더라도 서로에게 발맞춰 걸으며 헤쳐나갈 모습 같아 가슴이 찡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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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멸망해 가더라도 우리는 결국 사랑해야 한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이 은퇴를 번복하고 새로운 작품으로 찾아온 건 결국 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달콤한 로맨스 영화는 이제 지겹다면 81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무덤덤하게 그러나 유쾌하게 현실과 닮은 사랑을 그린 이 영화를 적극 추천한다.

 

 

[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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