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소외와 단절의 세계를 사랑으로 살아내기 – 사랑은 낙엽을 타고

끊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도 계속되는 삶의 속성
글 입력 2023.12.21 11:3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메인 포스터 (1).jpg

 

 

*

본 글은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의

내용 및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헬싱키의 한 마트에서 일하는 여성 ‘안사’의 일상은 건조하기 그지없다.

 

안사는 항상 비슷한 옷을 입고 마트에 출근해 하루 종일 끝없이 진열된 상품을 분류한다. 근무가 끝나면 유일한 동료와 가벼운 눈인사를 나눈 뒤, 텅 빈 집에 돌아와서 지친 얼굴로 식탁 앞에 앉아 라디오를 듣는다.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남성 ‘홀라파’의 매일도 별다를 바 없다. 변변찮은 급여를 받으며 무거운 시멘트를 나르고 철근을 옮기는 등 종일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옷 내피에 보드카를 몰래 숨겨놓고 틈틈이 마시면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그는 집을 구하지 못해 노동자들에게 제공되는 컨테이너에서 겨우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두 사람이 사는 곳의 환경은 노동자들에게 불친절하고 열악하다. 안사는 유통기한이 지나 판매하지 못하는 샌드위치를 챙겼다는 이유로 즉시 해고당하고, 홀라파가 일하는 건설 현장은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낡은 기계들로 가득하다. 삭막한 사회는 두 노동자의 의지할 곳 없는 생활을 더욱 막막하고 외롭게 만든다.

 

노동 현장을 벗어나 봐도, 안사와 홀라파를 둘러싼 세계는 마찬가지로 냉담하고 무심하기만 하다. 가게의 직원은 미동도 않은 채 서 있다가 계산하려고 말을 걸면 그제서야 자동 응답기만큼이나 무뚝뚝한 대답을 내놓고, 술집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고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는 유희적 모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5.jpg

 

 

영화 속 세계는 소통이 단절된 사회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안사와 홀라파로 대변되는 노동자들은 실업에 대한 불안감과 고독감에 휩싸여 있고, 노동이 끝난 후의 일과 시간 역시 타인에 대한 관심과 교류로 채워 나가기보다는 무료하고 지루한 시간을 매일 같이 반복하며 흘려보낼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이 사는 세계 주변에는 죽음까지 만연하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옆 나라에서는 전쟁 소식이 끊이지 않고, 가족을 잃은 난민들의 곡소리는 커져만 간다. 안사는 라디오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죽음을 애써 못 들은 체 해보지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전쟁의 그림자는 피하려야 피할 수 없다.

 

안사와 홀라파가 실직을 거듭하게 되며 그녀의 외로움과 그의 알코올 의존증은 점점 심해지고, 더불어 이웃나라의 전장에서는 끝없는 죽음으로 인해 병원뿐 아니라 극장마저 대피소로 전락하게 된다.

 

이렇게 단절과 소외 그리고 죽음은 우리의 일상을 계속해서 에워싼다.

 

 

1.jpg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어둠이 멈추지 않는 것처럼 삶 역시 멈추지 않는다. 영화는 끊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도 계속되는 삶의 속성을 비추며 실낱같은 희망을 말한다.

 

그 희망은 전부 사람과 사랑으로부터 비롯된다. 안사와 홀라파가 수많은 장애물을 이겨내고 결국에는 나란히 걸어가기를 택한 것처럼, 고독 속에서도 만남과 사랑은 피어오른다. 또한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안사와 함께 부당함에 맞서 준 동료의 모습처럼 우리는 타인의 존재로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차가운 세상과 무심한 인물들의 모습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리는 동시에, 그 어두운 현실을 계속해서 살아내는 우리들에게 안온한 위로를 건네는 영화다.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삶으로 돌아온 홀라파가 자신을 기다리던 안사와 함께 낙엽이 무수히 떨어져 있는 길 위를 함께 나아가는 마지막 장면은 그 위로를 함축하고 있다.

 

 

 

박지연_컬쳐리스트 태그.jpg

 

 

[박지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