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재즈가 주인공이 될 때 - 김영후 빅밴드 단독공연 [공연]

무한한 가능성과 방향성을 가진 재즈 빅밴드
글 입력 2023.12.1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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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빅밴드 스윙.jpg

 

 

혹시 재즈.. 좋아하시나요? 전 참 좋아하는데요.

 

출퇴근길 지친 얼굴의 사람들 틈에 껴서 머리만 쳐들고 간신히 숨을 쉬고 있을 때도, 여유로운 아침과 저녁을 맞이할 때도,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도 자꾸만 손이 가는 건 재즈입니다.

 

왜 재즈를 밤낮으로 즐겨듣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멀티태스킹이 잘 안되는 제 특성과 재즈가 꼭 알맞은 것 같습니다. 우선 재즈는 (보컬 재즈를 제외하고는) 가사가 없고, 몇 번을 반복해서 들어도 전체 멜로디 라인을 외우기 힘든 즉흥성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흥얼거릴 수 없으니 일상 속 집중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감칠맛이 나게 맛깔납니다. 같은 곡도 연주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이 난다는 것도 재즈의 매력입니다.

 

또, 재즈는 상황별로 들을 수 있는 세부 장르가 참 많습니다. 쳇 베이커나 마일스 데이비스 등으로 대표되는 정적이고 어딘가 슬픈 쿨 재즈, 바닷가가 생각나는 보사노바, 노이즈가 잔뜩 낀 흑백 영화 속 인물이 되고 싶을 때 듣는 빌리 홀리데이나 사라 본, 프랭크 시내트라 등의 보컬 재즈...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무척 현란해서 자꾸 다리를 떨게 만드는 하드밥(Hard Bob)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놨습니다. 아트 블레이키(Art Blakey)의 밴드인 재즈 메신저스의 'UGETSU'가 나오고 있네요. 리듬을 타기 힘들 정도로 신나는 전개입니다.

 

이런 다채로운 마력이 있는 재즈는 그래서 삶의 배경음악으로 틀어두기 딱 좋습니다. 재즈 특유의 스윙은 팍팍한 삶도 조금 낭만적이고 말랑하게 느껴지도록 해주고, 음반 중간중간 함께 녹음되어 있는 관객의 환호와 박수소리는 왜인지 힘을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김영후 빅밴드의 단독 공연 “범인류적 유산, 그리고 우리가 맞이할 미래”를 향유하면서는, 반대로 제 자신이 재즈의 배경음악으로 존재하게 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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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후 빅밴드 공연 장면

 

 

빅밴드는 10명 이상으로 구성된 대규모 앙상블 재즈 밴드를 일컫습니다. 김영후 빅밴드는 베이시스트이자 작/편곡가인 김영후가 이끄는 17인조 재즈 밴드입니다. 거대한 규모 덕에 재즈 오케스트라라고도 불리는 빅밴드는 베이스, 드럼, 피아노로 구성된 리듬 섹션이 무대 왼편에, 금관 악기(트럼펫, 트럼본)와 목관 악기(색소폰, 플롯)가 무대 오른편에 자리하며 무대 전체를 꽉 채웁니다.

 

 

<프로그램 순서>

 

1. Dancing on the Floor

2. Cognitive Revolution (인지 혁명)

3. Network Song

4. Artificial Intelligence and Hyperconnectivity (AI와 초연결)

5. Florescence (개화기)

6. New Discoveries

7.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소중한 것

 

 

공연은 빅밴드 리더인 김영후 베이시스트가 중간중간 음악과 공연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조금씩 나누어 주시며 진행되었습니다. 음반 “범인류적 유산, 그리고 우리가 맞이할 미래”의 구성을 짜고 작곡하게 된 영감이 책이었다는 것이 설명의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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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후 베이시스트는 책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 그리고 <총 균 쇠>를 읽으며 인류가 위기 상황을 극복해 내는 원동력이 선한 의지의 순환이라는 영감을 얻었고, 문제가 생겨도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쌓여온 인류의 자산에 감사함을 표현하는 앨범을 만들고자 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을 요리해서 ‘재즈’라는 듣는 예술로 표현할 수 있다니!

 

역시 예술의 멋진 점 중 가장은 예술가의 상념과 감정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감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어떤 작품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너무도 좋아하는 관객으로서 창작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연주를 듣는 시간만큼 흥미진진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눠주신 덕에 음악 창작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관객도 곡의 흐름과 짜임새를 감각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곡 ‘Florescence (개화기)’에서 처음엔 진보적인 음계를 사용해서 낯선 느낌을 주다가 점점 음계가 안정화되면서 분위기도 안착하는 흐름을 그대로 느꼈던 감각입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아직 발매되지 않은 곡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곡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소중한 것’은 인간이 사피엔스에서 호모데우스(신이 된 사나이)가 되어도 변하지 않는 것을 표현한 곡이었습니다.

 

이 곡은 예술이 인간에게 주는 영감이나 느낌, 경험은 대체할 수 없고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그래서 민속음악적으로 시작하는데요. 드럼을 손으로 연주하고 베이스를 거문고 뜯듯이 연주하며 과거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예술을 표현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곡은 피아노 변주를 거치며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또다른 것인 노스텔지어를 그려냅니다.

 

빅밴드 재즈의 넘치는 다이내믹함, 그리고 개별 악기의 솔로 연주 때에도 이어지는 건축 설계도 같은 치밀함이 신기하도록 조화로웠습니다. 재즈는 연주자뿐만 아니라 감상자 역시 초몰입 상태로 무아지경에 빠뜨리는 매력이 있습니다. 악기는 조명을 금빛으로 반사해내고 양쪽 귀로는 재즈가 쏟아지는 감각이 정신을 홀렸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영화 <매트릭스>를 상상하기도 하고, 공기에 맴도는 음계들에 홀린 듯 박수를 치기도 했습니다.

 

 

김영후 빅밴드 (2).JPG

 

 

공연이 이어지는 내내 김영후 빅밴드의 재즈 아티스트들은 잠시 연주를 쉬어가고 다른 연주자의 연주를 들을 타이밍이 올 때마다,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흔들고 다리로 발 박자를 맞추면서 서로의 연주를 경청하고 몰두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합을 맞춰 호흡을 이어가는 걸 보는 건 언제나 감탄스럽습니다. 개인마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지닌 많은 사람이 마음을 모아 어떤 작품을 완성한다는 것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연습을 통한 맞춤이 필요했을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결과물을 보고 있자면 아무리 서로 엇나가고 갈등하는 사회일지라도 예술의 형태로는 언제든 마음을 모을 수 있을 것 같아 인류애와 같은 희망이 몽글몽글 솟아납니다.

 

재즈 공연은 음반이 아니라 라이브로 들어야 한다는 말을 이번 공연을 통해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음악이 배경이 아니라 예술작품으로서 앞에 놓여있을 때 얼마나 깊은 몰입을 선사하는지 한 번 경험하고 나니 왜인지 음반이 시시해지는 부작용도 있지만요. 이런 재즈 빅밴드 라이브 공연을 더 많이 보기 위해서는 재즈를 더 사랑하고 더 영업해야겠습니다.

 

 

김영후 빅밴드 포스터.jpg

 

 

 

아트인사이트 명함.jpg

 

 

[권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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