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왜 공연을 갈까? 노엘 갤러거 내한 공연 [공연]

같은 것을 향유하는 이들이 모여서 만드는 힘
글 입력 2023.11.3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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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음악, 더 좁혀서 해외 록 음악의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그' 밴드. 축구 경기 등 배경음악으로 많이 삽입되며 대중성으로 따지면 어쩌면 그들이 그토록 우상으로 바라보는 비틀즈만큼이나 (과장 더해) 유명한, 전 오아시스 멤버 노엘 갤러거가 4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이번 내한은 참 각별했다. 위 삽입된 인터파크 티켓 페이지 내 포스터에서 알 수 있듯, 예매 시작과 함께 28일 공연이 바로 매진 된 후 27일 추가공연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명화라이브홀이라는, 이제 막 새 단장을 해 아무도 모르던 수용인원 2천 명의 아주 작은 공연장에서, 이 머나먼 영국 땅의 록스타가 한국 팬들을 위한 25일 공연을 추가로 열었다. 4일간 총 3번의 공연인 것이다.

 

그래, 그 25일 공연. 한국 팬들을 아끼는 노엘 갤러거가 친히 열어준 소수를 위한 그 공연. 티켓값이 상당했음에도 나는 아주 간절히 바랐다. 세상 어느 인지도 있는 외국 가수가 투어 중에 피곤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런 작은 공연을 열어준단 말인가? 친분이 있는 친구들에게 티켓팅을 도와달라 부탁까지 하며 예매 일만 기다렸다. 그리고 당일. 아주 처참히 말아먹었다. 나에게 있는 표라곤 둘째 날 공연의 앞번호도 뒷번호도 아닌 어정쩡한 숫자가 쓰인 스탠딩 자리였다. 속상했지만 그럭저럭 넘어가기로 했다. 2,000명의 공연은 나보다 '찐사랑'인 팬들이 들어갔겠다고 생각하니 괜찮았다. 

 

둘째 날은 비가 내렸다. 맑지 않은 날씨에 혹여나 분위기가 처지지 않을까 걱정한 게 무색할 만큼 가는 길부터 설렘으로 가득 찼다. 누가 봐도 팬임을 보여주는 차림새의 사람들을 따라가니 곧장 공연장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추정된, 그러나 확실한 발자취와 동질감이 나를 반겼다.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실감이 나지 않아 가사를 외는 둥 마는 둥 했던 나 자신이 그제야 개탄스러웠다. 

 

별다른 멘트 없이 공연은 금방 시작됐다. 애초에 멘트가 많지 않은 노엘 갤러거지만, 거의 기계처럼 노래를 부르는 전광판의 그를 보고 있자니 감탄이 나왔다. 그는 이제 내가 알던 모습에서 많이 달라져 있었다. 주름도 더 많이 늘고 머리도 희끗희끗했다. 그러나 에너지만큼은 전혀 죽지가 않았다. 시작과 함께 바뀌는 공연장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한껏 흥분한 얼굴들에 비로소 실감이 났다. 나는 공연장에 있었다. 내 청소년 시절을 함께한 밴드를 보러, 나와 똑같이 이 밴드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3층까지 꽉 찬 곳에.

 

잠실실내체육관은 애초에 공연장으로 설계되지 않은 만큼 음향시설이 좋지 않다. 노엘의 목소리는 종종 묻혔고, 이날을 위해 준비했을 사람들의 떼창은 내가 관중의 한가운데 있어선지 몰라도 커다랗게 들리진 않았다. 그러나 괜찮았다. 내 양옆과 앞뒤로, 신이 나 몸을 흔들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한껏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공연의 의미가 바로 거기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나는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온 것이다. 똑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 긍정적인 에너지와 경험을 나누기 위해 말이다.

 

영화관을 좋아한다.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어릴 적부터 그랬다. OTT의 등장과 부쩍 오른 물가로 이제는 특출난 몇 영화를 제외하곤 거의 볼 수 없는 풍경이 됐지만, 사람들로 가득 찬 영화관의 분위기를 사랑했다. 은은히 풍겨 아, 그냥 사 올 걸 후회하게 만드는 팝콘 냄새, 오프닝 후 10분까지 계속되는 소곤거림과 먹는 소리, 깜짝 놀랄 만큼 큰 음향, 반팔 차림으로 2시간을 앉아있기엔 조금 서늘한 상영관. 웃긴 장면이 나오면 관은 한 가족처럼 화기애애하게 웃었고,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누군가의 비명과 함께 연쇄 비명이 시작되는 게 당황스러워 웃으면서 분위기가 풀렸다. 내가 영화관을 좋아하는 이유는 결국은 공동의 경험 때문이다. 서로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것을 향유하며 만들어 내는 공감이 삶의 외로움을 덜어낸다.

 

세상은 변했다. 이제는 꼭 같은 공간에 있지 않더라도 같은 것을 향유할 수 있다. 인터넷 라이브 방송부터 OTT 실시간 파티 기능 등, 마주 보지 않아도 쉽게 서로의 의견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하지만 그것들에는 하나 빠진 점이 있다. 실제 오프라인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유대와 달리 내 오감이 모두 쓰이지 않는다.

 

공연, 전시, 영화 등등. 우리가 컴퓨터 앞에 앉아 관람할 수 있는 세상이 왔어도 사람들은 실물을 원한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실물을 원한다.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고, 말하고, 냄새를 맡고, 귀로 들리는 그 모든 과정이 내 삶이 정말 내 두 발과 내 두 손에 달려있음을 느끼게 만든다. 인터넷이 가짜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거기엔 현실감이 빠져있다. 나의 육체와 정신이 온전히 화합하면서, 또 다른 사람과 직접 부딪히면서 만들어 내는 감각을 사이버 세상은 아직 구현하지 못했다.

  

 초중반 부는 오아시스 활동 이후 노엘 갤러거가 꾸린 본인의 밴드의 곡을 연주했다. 모두가 오아시스 활동 이후까지도 아주 깊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라, 고백하자면 나도 3, 4집은 노래를 많이 듣지 못했다. 너무 오랫동안 사랑하다 보면 일종의 권태기가 오듯이, 너무 익숙한 스타일이 오히려 손이 덜 갔다.

 

그러나 나는 공연장에 있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화학작용은 그깟 권태기가 뭐라도 되냐며 주먹질을 해 아주 내쫓아버렸다. 나는 충격에 빠졌다. 집에서 가만 들었을 땐 별 감흥이 없던 노래들이 너무나도 좋았다. 박자에 맞춰 쿵쿵 뛰고 따라 부르는 사람들, 연주하면서 흐뭇하게 관객을 바라보는 밴드 멤버들을 보면서 심장이 쿵쿵댔다. 이 노래들에 이런 매력이 있었구나. 

 

나의 충격은 오래 지속되다가 예전 오아시스 노래가 연주되는 순간엔 배가 됐다. 따로 가사를 외지 않아도 질리도록 들어 가사가 입에 붙었던 그 노래들이, 이젠 관성이었던 그 노래들이 예전 같은 설렘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The Importance of Being Idle, Little by Little, Live forever, Don't look back in anger... 그때의 분위기를 잊을 수가 없다. 졸업앨범이라도 꺼내보듯 모두가 추억과 행복, 혹은 감동에 젖은듯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짧은 영상을 몇 개 찍었다. 관람에 방해될까 봐 30초 이내로 끊어지는 그것들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계속해서 돌려봤다. 집으로 오면서 생각했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한 여행만큼이나 이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한 2시간을 아끼게 되겠구나. 이 공연은 우리 인생의 컴필레이션 음반 속 한 줄이 됐구나.

 

문화생활은 지적이고 예술적인 부분에만 영향력을 선사하지 않는다. 전혀 모르는 타인과 함께하는 낯선 즐거움, 그리고 강력한 활기가 우리 인생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 내게 이 콘서트는 노엘 갤러거를 보는 것보다도 이 의미가 더 컸다. 더욱 고립되고 더욱 차가워지는 세상 속에서 '함께'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것만큼 값진 건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공감으로 성장한다.


 

[유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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