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분홍빛 슬픔 [도서/문학]

글 입력 2023.11.27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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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게 행복했던 17살의 세실의 삶은 뜨거운 여름, 해변으로 떠나는 것으로부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해변에서 세실은 아버지의 연인인 ‘호색한, 반쯤 유흥업계에 속한’(p.35) 엘자와 세상을 먼저 떠난 엄마의 친구이자 ‘이지적인’ (p.35)안을 만난다.


세실은 바닷속에서 분홍색과 푸른색이 섞인 조가비를 발견하고, 물속으로 잠수하여 직접 그것을 주워 온다. 그리고 그것을 여름내 지니고 다니기로 다짐한다. 세실은 많은 물건을 잃어버렸지만, 그 조가비만큼은 잃어버리지 않았고, 푸른색과 분홍색이 섞여 보이던 조가비는 분홍색이 되었다. 그리고 구태여 주워 온 그 조가비는 세실을 울고 싶게 만든다.


소설의 도입 부분, 즉 세실의 휴가 초입에 제시되는 사건에서 분홍색과 푸른색이 섞인 조가비는 앞으로 엘자와 안 사이에서 고만하게 되는 세실의 내밀한 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요소이다.


‘다른 것은 모두 잃어버’(p.35)렸지만 조가비는 잃어버리지 않았던 것에서 세계에서 타자 존재의 필연성을, 분홍색과 푸른색으로 두 가지 색이 섞인 조가비가 분홍색 빛만 남게 되었다. 분홍색 조가비는 안과 세실 중 누구를 의미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잃어버려지지도 않는 조가비가 세실을 슬프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삶 속 슬픔의 필연성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세실이 타자를 거부와 동시하는 동시에 받아들이고, 슬픔을 맞이하기까지의 성장을 논의할 수 있다.


세실은 물속으로 잠수까지 하면서 그 조가비를 주워 온다. 이는 세실이 아버지를 사랑함에 아버지의 곁에 있을 여성을 적극적으로 희망하고 있으며 타자의 필연성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세실은 ‘이 세상 그 누구도 아버지만큼 사랑해 본 적이 없다.’(p.129)고 이야기 한다. 세실은 부모의 보살핌만을 원하지 않으며, 그 또한 부모를 보살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세실에게 아버지는 양육자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존재이다.

 

아버지는 선하고 너그럽고 유쾌하고 나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했으니까. 아버지 보다 더 좋은 친구, 더 유쾌한 친구는 상상할 수 없었다. (p.12)


레몽에 대한 묘사를 통해 레몽 또한 세실과 같이 자유로운 성격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세실의 행동은 레몽이 자신과 같음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삶은 조화를 이루길 바라는 세실의 마음을 방증한다. 이후 세실이 안에게 느끼는 불편한 감정은 단순히 레몽의 곁에 있는 여성에 대한 질투 또는 불편함이 아닌 안과 자신의 부조화에서 비롯된 감정이다.


서사에서 색채는 감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특히 분홍빛과 푸른색이 섞인 조가비는 세실과 레몽의 삶에 편입될 여성의 성격을 상징적이고,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분홍색은 대개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 부드러움을 묘사하는 색이다. 반면에 푸른색은 이성적이고, 현실적이고, 강단 있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색이다. 두 색깔의 직관적인 이미지를 미루어 보았을 때 분홍색은 엘자를, 푸른색은 안을 상징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세실이 주워 온 조가비가 분홍빛과 푸른색이 섞여 있는 것은 레몽이 이 두 여성을 두고 고민하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엘자는 아버지보다 어린 여성으로 누가 봐도 톡 튀는 매력을 가진 여성이다. 레몽이 자신이 아닌 안을 사랑하는 것을 보고 충격받는 듯하지만 이내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선다. 세실이 연극을 제안할 때는 기꺼이 이를 수용하고, 세실의 남자친구 시릴과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은 연극을 제안한 세실의 질투를 자극하기까지 할 정도로 매력적이고, 입체적인 인물이다.


세실은 안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마흔두 살의 그녀는 아름다운 얼굴에 아주 매력적이고 세련되었고, 도도하고 지친 듯하며 주변에 무관심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안은 사랑스러운 동시에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녀에게서는 의연한 의지력과 상대를 주눅 들게 만드는 진정한 차분함이 풍겨 나왔다. 우리와 안은 어울리는 사람들이 달랐다. 안은 세련되고 지적이고 신중한 사람들과 사귀었고, (…) (p.16)


레몽도 세실과 같이 그들과 정반대인 안의 모습에 매력을 느꼈던 것일까. 레몽은 엘자가 아닌 안을 선택하고, 자신의 연인일뿐만 아니라 세실의 공동 양육자의 역할 또한 수행하게 한다. 세실 역시 처음에는 안의 세련함과 차분함을 동경했지만, 자신의 삶에 안이 개입하게 되자 그녀의 존재를 커다란 이물감으로 느낀다.


두 사람의 지속적인 마찰은 세실이 서서히 레몽이 다시 엘자를 사랑하게 만드는, 치밀하고도 발칙한 연극을 꾸미게 하는 것에 일조한다.


조가비가 분홍빛이 되었다는 것은 세실과 레몽의 삶에서 안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안과 정반대되는 사람이 들어오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세실이 안에게 바랐던 것은 ‘그녀를 모욕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인정하게 하고 싶’(p.133)은 것이었으나 모순되게도 세실은 조화와 질서로 가득 찬 안의 삶을 철저하게 짓밟는다. 레몽이 엘자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본 안은 충격을 받고 곧장 집을 떠난다. 그제야 세실은 우리의 삶에는 안이 필요하다고 소리치지만, 안은 결국 파리를 떠나버린다. 자신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었지만 세실은 오랜 시간 껄끄러운 감정을 느끼며 슬픔을 맞이한다.


나를 줄곧 떠나지 않는 갑갑함과 아릿함, 이 낯선 감정에 나는 망설이다가 슬픔이라는 아름답고도 묵직한 이름을 붙인다. 이 감정이 어찌나 압도적이고 자기중심적인지 내가 줄곧 슬픔을 괜찮은 것으로 여겨왔다는 사실이 부끄럽게까지 느껴진다. 슬픔, 그것은 전에는 모르는 감정이다. 권태와 후회, 그보다 더 드물게 가책을 경험한 적은 있다. 하지만, 오늘 무엇인가가 비단 망처럼 보드랍고 미묘하게 나를 덮어 다른 사람들과 분리시킨다.(p.11)


출간 당시 평론가 에밀 앙리오는 “괴물 같은 주인공을 무척 예술적으로 그려낸 이 부도덕한 책을 일반 대중에게 추천하는 것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고 평했다. 세실의 행동을 윤리적인 측면에서 옹호할 수는 없지만 사강이 직조한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 질서와 권태가 두려운 마음은 독자가 세실을 이해하게 만든다.


청소년 세실의 혼란스럽고, 또 내밀한 마음을 사강은 활자에 거침없이 담았다. 혹자는 비극적인 결말과 세실의 이중성에 성장소설로 볼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는 분명, 격동의 시기를 지나 기피했던 마음과 감정을 인정하는 세실이 있다.

 

 

[오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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