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타인'이라는 세계와의 조우 [도서/문학]

글 입력 2023.11.1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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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로 '경험하다'를 뜻하는 ‘erfahren’은 ‘er(획득하다, 성과물을 얻어내다)’와 ‘fahren(멀리 가는 것)’으로 이뤄진 합성어다. 즉 경험은 이동과 성과를 전제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대표적인 예가 ‘여행’이다.

 

국내인지 해외인지, 관광인지 휴양인지, 단체인지 개인인지에 따라 스펙트럼은 방대하지만 무엇이 되었든 여행은 이동과 성과를 담보한다. 심지어 때로는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의 한 에피소드에서 제시하는 것처럼 동네 마실도 여행으로 명명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한 번 더 통념을 비틀고 싶다. 물리적 차원을 초월한 ‘이동’의 의미에 대한 고찰해 봄으로써. ‘이동’은 육체의 움직임을 동반한 유형의 행위로 읽힐 수도 있지만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옮겨가는 무형의 전환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영화나 소설 등에서 인물과 서사에 이입해 어떠한 깨달음을 얻는 일련의 과정이 ‘경험’이라 일컬어질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실제 일상에서 타인을 관찰하는 것에도 동일한 원리로 적용된다. 단편소설집 <나주에 대하여>는 ‘타인’이라는 세계에 진입한 인물들의 변화와 성장으로 그에 대해 예증한다.


집, 일상 등 돌아올 곳이 상정되어야 여행이라는 개념이 성립할 수 있듯, 소설 속 관찰자이자 여행자인 인물들은 타인과의 조우를 거쳐 다시 ‘나’의 영역으로 복귀한다. 그리고 각자의 깨달음을 갈무리하는데, 이때 흥미로운 점은 그러한 산물조차도 여행의 성질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이다. 모든 여행이 목표를 충족하거나 배반하는 방식으로 깨달음을 산출하듯 소설 속 타인을 탐구하려는 ‘나’의 시도들은 어떤 모양으로든 ‘나’의 심연에 파동을 일게 한다.

 

이를테면 책의 표제와 동명인 단편 <나주에 대하여>는 사별한 연인 ‘규희’의 구 애인이자 직장 동료인‘나주’를 관찰하는 ‘김단’의 내면 서술이 주를 이룬다. 사실 불의의 사고로 규희를 잃기 전부터 나주의 존재를 익히 알고 있던 김단은 오래도록 그녀의 sns를 염탐해 왔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촉발된 관음이었지만, 김단은 나주의 취미를 동경하다 점차 나주라는 사람 자체에 호의적인 태도를 갖게 되고, 규희가 죽은 후부터는 더한 애착을 느끼게 된다.

 

그 외에도 같은 꿈을 꿔왔기에 동질감과 질시를 동시에 느껴 온 두 친구가 회피, 은폐해왔던 애증의 감정을 폭로하고 그럼에도 다시 손을 맞잡고 벌어진 틈을 봉합하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꿈과 요리>, 더 이상 사람에게 상처받기가 두려워 필라테스 강사로 전업한 ‘은영’ 그리고 관계맺기에 회의적인 회원 '재인'이 근육이 생기는 원리처럼 사람에게 받은 상처도 원하는 대로 가꿀 수 있을 거라 엷은 희망을 가지게 되는 <근육의 모양>도 타인에 대한 곡진한 마음으로 충일하다.


<나주에 대하여>는 공백이 있는 소설집이다. ‘나’와 ‘너’ 사이의 공백. ‘너’를 바라보고, 헤아리지만 끝내 온전히 아는 것은 불가하다. 여행자는 곧 이방인이고, 여행지에서의 짧은 순간이 온전한 앎이 되지는 못하듯이.

 

그러나 동시에 소설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그 공백을 인정하면서도 타인이라는 세계로의 여행을 포기해서도, 주저해서도 안 된다고. 타인을 궁금해하고 그의 표정을 읽고 그의 심정을 이해하려 부단히 애쓰는 일련의 과정 그리고 그로부터 체득한 경험은 곧 ‘나’라는 세계를 보다 깊고 넓게 확장시키는 주요한 자극이기도 한 법이니.

 

이런 점에서 ‘나주에 대하여’ 속 여덟 단편은 궁극적으로 '나에 대하여'로 향하는 여덟 갈래의 길이기도 하다.


 

[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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