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피아니스트가 본 건반의 색 – G는 파랑 [도서]

흑백에 색채 입히기
글 입력 2023.11.1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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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혼자 하던 놀이가 있다. 순식간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이 그곳을 침범하지 못한다는 확신을 얻는 손 놀이.

 

별거 없이, 그냥 벽에다 피아노를 치는 장난이다. 이미 음을 알고 있는 나에게는 선율이지만 다른 이들에겐 불규칙한 타자에 불과하다. “뭐 치는 거게?” 매번 물어봤지만, 한 번도 맞춘 사람은 없었다. 그게 나의 소소한 놀이였다. ‘음’은 없어도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에 손가락 끝으로 내는 타닥거림만으로도 연주할 수 있다.

 

G는 파랑은 피아니스트 김지희의 음악 에세이다. 저자는 미국에서 클래식 피아노를, 프랑스에서 실내악을, 영국에서 오페라 코칭을 배운 음악가다. 그는 본 저서에서 클래식 음악에 입문할 때 작곡가, 교향곡 몇 번, 장단조 등의 정보를 알아야 하는 것과는 다른 접근법을 취한다.

 

“건반마다 음의 색깔”을 느끼는 방식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떠오르는 일상의 경험으로 장면을 만들어 낸다. 오랜만에 옛 친구와 만났을 때의 햇빛과 분위기가 떠오르기도 하고, 미안함이 드는 일화가 불쑥 솟기도 한다.

 

1장 ‘몸으로 기억하기’에서는 온몸으로 음악을 듣고 내 것으로 만드는 감상법이 소개된다. 곡에 대한 정보도 중요하지만, 감상하는 이들이 그것을 자신만의 상상력을 통해 자세히 파고드는 태도를 강조한다. 곡을 들었을 때 누가 떠오르는지, 그의 모습은 어떤지, 표정은 어떤지, 분위기와 색감은 어떤지 등 세세한 장면을 연출하는 방법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옛날에 피아노 건반에서 느껴지던 감각을 색으로 표현해 썼던 글이 떠올랐다. ‘건반으로 이은 수채화’라고 이름 붙였던, 서랍에 고이 넣어 놓았던 글이다.

 

*

 

흰색 검은색 흰색 검은색 흰색 흰색 검은색...

 

극단의 명도 대비를 가진 징검다리를 점선으로 얽어놓은 채 음계를 따라 걸어간다. 동- 당- 둥- 당- 건반을 누르면 달각달각 튀어나오는 너덜너덜한 양장본 책들. 달각- 꺼냈다가 달칵- 집어넣고 동- 당- 꺼내고 꺼냈다가 둥- 집어넣고 당- 또 꺼내고.

 

'파'는 '알라딘' 하면 떠오르는 심해의 푸른빛, 높은 '레'는 '빨간 머리 앤'의 표지인 체리 빛.

 

손가락 끝으로 전해지는 색채의 리듬감에 묻혀 달각 동- 당- 거리다 보면, 어느새 징검다리들의 대비는 약해진다. 그리고 어느새, 흩뿌려진 물감들로 이어진 수채화

 

*


2장 ‘마음으로 발견하기’에서는 저자가 피아니스트로서 음악에 대해 하던 고민이 곧 삶과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는 걸 발견하는 일화들이 모여있다. 사랑, 하고 싶었던 일, 행복의 이야기를 음악과 결부해 묘사한다.

 

‘일상의 힘’이라는 글에서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바이올린 파르티타 3번 E장조’를 소개한다. 저자는 일상의 힘을 들려주는 ‘달력’ 같은 곡으로 이 곡을 꼽았다. 일정함이 주는 안정감과 따뜻한 분위기, 그리고 춤추듯 움직이는 연주자의 손가락은 음표로 만든 달력과 똑 닮았다고 한다.

 

달력을 넘겨보며 지나온 시간을 감상하고 남은 날들을 기대하게 되듯, 음악 또한 지금까지 들은 소리보다 들을 소리가 더 많은 달력이다. 마지막으로 3장 ‘음악으로 살아가기’에서는 저자가 음악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다.

 

클래식을 삶에 들이고 싶은, 듣고 싶은 곡의 내밀한 해석을 듣고 싶은, 그리고 음악으로 장면을 그려내고 싶은 이들에게 도움될 통찰력 있는 음악 에세이다.

 

 

[정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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