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 [드라마/예능]

우리 모두는 거짓말을 합니다. <안나>
글 입력 2023.11.07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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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 및

주관적 견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리플리 증후군을 다룬 흥미로운 전개, 부족함 없는 연기로 큰 화제가 되었던 쿠팡플레이의 <안나>. 최근 리플리 증후군에 관심이 생겨 배급사와 감독의 협상 끝 공개된 원작 감독판을 감상했다. 이전에 감상했던 편집본과는 달리 감독판을 감상 후에 감독이 하고자 했던 말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거짓말을 한다."

 

 

유미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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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시장에서 오래된 양복집을 하는 나이 많은 아빠와 농인 엄마를 둔 유미. 유미는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모든 잘 해냈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 젊은 교사와 연애를 한 것이 적발되는 일이 벌어진다.  한 어른의 '거짓말'로 인해 성인을 앞둔 유미는 학교에서 쫓겨나 서울로 도망가게 된다. 희망하던 대학에도 떨어진 유미는 부모님의 실망이 두려워 대학생인 척 연극을 시작한다. 부자 남자친구와 미국 유학을 앞둔 공항에서 가짜인 것을 들키며 꿈꿔온 2막의 삶은 처참히 실패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의 상까지 치르며 유미는 외면했던 아버지의 착한 거짓말과 직면하게 된다.

생존을 위해 마레 갤러리에서 일하게 된 유미는 자신과 정반대의 삶을 사는 현주와 마주한다.  4대 보험을 빌미로 온갖 모욕을 주는 현주의 가족 앞에 고개를 조아리며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의 상황, 욕하면서도 그들이 남긴 와인과 음식을 먹으며 좋아하는 직원들. 유미는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현주의 모든 스펙이 담긴 서류를 챙겨 도망간다. '안나'로 개명해 현주의 삶을 훔치며 살아가는 유미. 서류들이 힘을 발휘해 하룻 밤사이 안나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국가의 학위를 가진 고스펙에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재산을 가진 부잣집 딸이 된다.  가짜 스펙을 가지고 대학교수까지 하게 된 안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사업가이자 정치인의 야망을 품은 최지훈과 결혼하며 정치인의 아내라는 삶까지 살게 된다.

 

그렇게 힘없이 반짝이는 안나의 삶은 그녀가 거주하는 고급 주상복합에서 현주를 마주하며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현주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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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를 피하고자 하이힐을 맨발로 23층까지 올라가는 안나를 담은 장면은 필자가 가장 인상 깊게 봤던 장면이다.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해 숨을 차며 땀을 흘리며 아등바등 살아가는 안나와  엘리베이터로 빠르고 편하게 고층에 올라가는 현주의 대비적인 삶을 잘 담은 장면이기 때문이다. 두 여자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아가지만, 이 삶을 유지하는 방식엔 차이가 있다.

 

안나가 훔치려 했던 현주의 삶은 어떨까? 현주는 돈 많은 집 외동딸로 태어나 인내도 배려도 없이 살아온 인물이다. 악기 연습을 전혀 하지 않아 선생님에게 바로 탄로 날 거짓말을 하고도 떳떳하고, 자신의 기분이 어긋나자 값비싼 악기를 던져 부숴버린다. 그럼에도 그녀는 부자 부모덕에 기부입학으로 남들이 쉽게 가지지 못하는 외국 명문대 학위를 수업 한 번 제대로 듣지 않고 손쉽게 얻는다. 이 학위를 활용해 부모님이 차려준 갤러리에선 저렴한 동대문산 오브제를 4~5배 비싸게 팔며 이윤을 취하기도 한다.

 

현주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지훈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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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안나의 남편 지훈은? 지훈은 어려운 형편에서 사업에 성공해 자수성가하고, 차기 서울시장 후보로 주목받는 인물이다. 약자를 배려하고 바른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미디어가 만들어 낸 열린 청년 최지훈. 그러나 현실에서 그는 약자를 혐오하고 권력을 추앙한다. 운전기사나 비서들에게 폭언과 협박, 폭력은 물론이고, 불법 판매부터 음주운전, 살인까지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불법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다. 안나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거짓된 삶을 살지만, 그에겐 '권력'이 있다. 그는 자신의 거짓말을 사실로 만들거나 숨겨버릴 힘이 있는 인물이다.

 

지훈에게 유미의 거짓말은 안나를 굴복시킬 무기이다. 그러나, 지훈에게 자신의 거짓은 진실일 뿐이다.

 


지원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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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은 유미가 하숙집에서 만나게 된 인물이다. 정치부 기자로 진실을 드러내길 꿈꾼다. 그러나 현실을 녹록지 않다. 좋은 대학을 나왔지만, 더 좋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뒷배 없인 큰 신문사엔 들어가기 어렵다. 물가 상승과 같이 지원이 하고자 하는 바와는 떨어진 기사만 쓰던 중 큰 신문사에서 이직 제안이 들어온다. 후에 안나의 남편 지훈에 의해 자신이 이직할 수 있던 것을 알게 됨에도 지원은 이 사실을 외면한다. 안나가 가짜라는 사실을 제일 먼저 알아챘음에도 이 사실을 기사로 쓰지 않는다. 자신이 가짜 안나의 힘으로 메이저 신문사의 기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치관과는 멀어지고 있음에도 정치부 기자를 계속하고, 한편으로 괴로워하며 갈등한다. 후에 안나와 함께 지훈을 고발하지만 남의 거짓을 들통 내는 직업을 가진 지원 또한 자신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인물이다.

 

 

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


 

극 중 "사람은 혼자 보는 거짓말에도 거짓말을 씁니다"라는 안나의 독백에 찔릴 수밖에 없었다. 모두 그런 경험 한 번쯤은 있지 않은가? 우린 거짓말을 하고, 이를 사실로 믿고 싶어 한다. 드라마 속 인물들 또한 저마다 다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감상하다 보면 유미와 지원이 현주와 지훈과는 자신의 거짓을 대하는 태도가 다름을 느낄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주체와 거짓으로 만든 삶에 사이의 간극에서 괴로워할 줄 안다. 아무리 거짓으로 덮으려고 해도 '나'는 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다.

 

유미의 거짓말을 이해하고 인정해 줄 사람은 없다. 그녀 자신도 이 사실을 알기에 안나가 된 유미는 점점 시름시름 앓고, 눈빛 등의 자신만의 '색'을 잃어간다. 그럼에도 그녀가 멈추기 힘들었던 이유는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기 때문이다. 양심을 외면하고 뱉어버린 거짓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거짓을 뱉게 된다. 되돌리기엔 이미 뱉었던 거짓말들이 산처럼 불어버렸다. 거짓에 대한 스스로의 정당화가 요구되고, 거짓말은 멈출 수 없다. 현주가 자신의 거짓된 학위에도 당당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돈'으로 정당한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를 보며 유미의 거짓이 들킬까 조마조마하고, 한 편으로는 유미가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이유 또한 여기서 나오지 않았을까?

 

유미는 자신 인생을 걸고 안나의 삶을 살았고, 계속해서 나아갔다. 결국 돈, 명예, 권력까지 전부 얻은 뒤에 그녀는 말한다. "내가 그것을 정말 원했는지는 가져보면 알게 된다." 아름답고 부러운 삶에 눈이 멀어 놓치고 외면했던 것을 완전히 깨달은 것이다. 극 중 유미는 반복적으로 말한다. "난 마음먹은 것은 다 해요." 유미는 마음을 먹었고, 안나가 되었다. 그러나 마음을 잘못 먹었다. 거짓이라는 도구로 행복을 만들려고 했다.

 

극 중 현주는 이런 말을 한다. "행복은 애매하지만, 불행은 확실해." 진실이 행복을 보장하진 않지만, 거짓이 불행을 낳는다는 것은 확실하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손바닥으로 가리기엔 세상이 너무 넓다.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리면 잠시는 내가 원하는 데로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비나 햇빛같은 것들을 막아주고 있다는 착각을 들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잠시뿐이다. 손바닥에 가려지지 않은 부분들을 없앨 수 있는가? 계속해서 외면할 수 있는가? 심지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한들, 하늘을 가리면 우린 살 수 없다. 영원한 거짓말이 존재할 수 없는 이유이다.

<안나>를 감상하며 거짓을 가리는 손바닥이 너무 넓어진 사회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애매한 행복이 가져올 확실한 불행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더 큰 세상이 우릴 기다리고 있기에, 진실이 힘을 잃지 않아야 한다. 가리고 숨기는데 급급하기보단, 직접 마주할 힘을 기르는 '우리'가 되길 희망한다.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우리에게 더 넓은 진짜 세상이 있다.

 

 

[김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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