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세상 모든 것의 기원 [도서]

글 입력 2023.10.26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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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릇처럼 말하고 있지만, 다시 한번 말한다. 거창하고 웅장한 역사는 더부룩하다. 한 나라의 멸망이라거나 역사적인 인물의 장엄한 서사 뭐 그런 것들. 그들 만의 리그라서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다.

 

현재의 사건도 별다를 건 없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1,000억 달러 법안을 제출한다더라. 그런가 보다 하고 만다. 그래서 미시사를 더 파고든다. 사소한 것들의 역사. 옆집 사는 김씨가 외도를 했다니. 벌써 흥미진진해서 참을 수가 없다.


모든 것의 모든 것, 돌팔이 의학의 역사 등 비슷한 책을 꽤 읽었다. 주변에 널린 것의 사소하고도 사사로운 행적을 훔쳐본다.

 

그렇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이제는 더는 사사롭지 못하다. 살짝 고개를 돌려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비범하기 이를 데 없다. 커다란 빵을 한 조각씩 뜯어 먹듯 그 한번 말한다 훔쳐먹는 기분이다. 물론, 늘 그렇듯이 이것도 금방 질렸다.


토마토 파스타. 아라비아따. 볼로네제 파스타. 결국, 토마토 파스타면서 이름만 다르다. 따지고 보면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런 느낌이었다. 이 책도 저 책도, 다루는 주제만 다를 뿐 내용 전개가 너무 비슷하다.

 

이 물건이 왜 만들어졌고, 어떻게 변했으며, 이렇게 지금의 모습이 됐습니다, 짜잔. 뭐라고 해야 할까. 문법에 맞춰 정갈하게 쓴 나무위키 모음집 같았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했다. 똑같이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는 책이라도 색다른 말투였다면 좋았을 테다.


 
인간은 역사의 동물입니다. 과거를 통해서 미래를 내다보기 때문이죠.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과거 주가의 등락을 근거로 앞날을 예측합니다. 판사는 판결을 내릴 때 반드시 이전 판례를 참고하고 현재 상황을 고려합니다. 의사도 진찰과 치료를 할 때 이전의 임상을 토대로 삼습니다. 이처럼 인간이 미래를 판단하고 예측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근거는 바로 우리가 지나온 과거입니다. 우리는 흔히 과거와 미래를 단절된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시간은 그렇게 흐르지 않습니다. 과거는 현재와 이어지고, 현재는 다시 미래로 이어집니다. 또한 미래는 다시 과거의 반복일 때도 있습니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말이죠. 이 책에서 풀어낸 서른두 개의 유물 이야기는 옛이야기인 동시에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제 이야기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일상과 옛사람들의 일상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기를 바라봅니다.”


<프롤로그> 중에서

 


이번에도 사실 큰 기대는 안 했다. 몰랐던 거나 새로 배워가자는 가벼운 자세였다. 글러 먹은 초심은 버리라더니. 처음의 마음가짐 따위는 내다 버렸다.

 

챕터를 넘길수록 그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유물이라는 관점에서 대상에 접근하니 신선했다. 어떤 물건 하나의 서사가 아니었다. 역사라는 큰 흐름 안에서 이 작은 강줄기가 어떻게 갈라져 나왔는가. 그것이 이 책 전반의 흐름이었다.

 

그렇다고 또 거창하고 장황하지는 않았다. 소소하지만 사사롭지는 않은 것. 아주 마음에 든다.

 

 
최근 ‘플렉스(flex)’라는 말이 유행 중이다. 본래 ‘구부리다’, ‘준비운동 등을 하며 몸을 풀다’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인데 1990년대 미국 힙합 문화에서 래퍼들이 자신의 부를 뽐내던 모습을 가리키는 것으로 전용된 의미가 한국으로도 건너와 일상적인 용어로 널리 퍼졌다. 고고학 공부를 하다 보면 옛사람들의 ‘플렉스’ 흔적들을 만나곤 한다. 찬란한 보석과 황금으로 치장된 무덤이 대표적이다. 두터운 시간의 벽을 뚫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화려함을 뽐내는 이 유물들은 부와 명예를 드러내고 과시하고자 했던 인류의 본능적인 욕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황금: 6,500년 전, 인류 최초의 플렉스>중에서

 


전체적인 흐름에 연결점이 딱히 없다. 그런 면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총 4개의 대주제로 분류하고, 그 안에 작은 주제로 각각의 대상이 들어간다. 머리말 첫 문장에도 자유롭게 썼다고 밝힌다. 읽다 보면 정말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인다.

 

다음 주제로 넘어갈 때마다 ‘엥?’하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는다. 뜬금없는 무언가가 튀어나온다. 모퉁이를 돌았더니 갑자기 사거리가 나오고, 사거리를 벗어나니 대뜸 주택가에 들어서는 그런 느낌. 좋게 보면 유연한 흐름이고, 나쁘게 말하면 매끄럽지 못하다고 해야 할까.


각 장이 독립적인 성격이 강한 구성은 장점이라고 본다. 소설은 한 챕터를 다 읽어도 시간이 꽤 지나면 내용을 잊어버린다. 다음 챕터를 읽다가도 다시 앞부분으로 돌아간다. 기억이 안 나니까.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내용에 집중도 못 하고 피로만 쌓인다. 그래서 소설을 읽을 때는 다 읽기 전까지 다른 책을 못 읽는다. 이 책은 각 챕터 사이의 연결점이 없으니 구태여 앞부분을 되돌아볼 필요도 없다.


즉, 꾸준하게 책 읽을 시간이 마땅치 않은 사람이 읽기 좋다. 한 주제를 다루는 분량이 많지 않다. 내용 자체도 술술 읽기 좋은 가벼운 것들이다. 출퇴근 시간, 등하교 시간, 또는 어디로 이동할 때, 아니면 잠깐 짬이 날 때. 하나 읽고 끝낼 수 있다.

 

그러면서 내용은 또 알차다. 유튜브 20분짜리 동영상 하나를 볼 때보다 쇼츠 여러 개 볼 때가 더 재밌고 시간이 잘 가는 느낌이라고 설명하면 감이 잡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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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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