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왔다갔다' 넓혀가는 동양화의 지평 - 김나현 작가

글 입력 2023.10.2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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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시민청에서 What-多 got-多라는 독특한 제목의 전시가 있었다. 동양화를 전공한 다섯 명의 여성 신인작가(김나현, 류은선, 이호경, 정수연, 청이인)가 함께한 이번 전시에는 한지라는 공통재에 각기 다른 재료와 기법을 사용한 작품들이 모였다. 전시는 작품과 함께 각 작품에 사용된 재료와 기법도 같이 보여주며 동양화의 접근성을 높이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동양화에 고정관념을 긴지고 있던 관람객이라면 전시 제목처럼 작품의 안과 밖, 이쪽과 저쪽을 아우르는 전시를 보며 동양화의 정의가 바뀌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지난 16일, 전시의 총 기획을 맡은 김나현 작가를 만났다. 동양화의 정의를 묻는 나의 '우문'에, 그는 '현답'을 들려주었다. 정의보다는 전통을 어떻게 계승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석할 것인가 고민하는 일이 작가로서 더 중요하다 생각한다고 말이다. 그 대답처럼, 신인 작가인 그는 동양화라는 단어의 틀에 갇히지 않으려 한다. 더 나아가 동양화를 구분하는 이분법을 넘어 다른 길을 상상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왔다갔다'라는 전시 제목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신인 작가들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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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반갑습니다. 최근에 전시 What-多 got-多를 마치셨습니다. 어떻게 준비하게 된 전시인지 들려주세요.


지난 학기에 전통 재료기법 수업을 함께 들으며 가까워진 작가님들과 함께 전시를 준비했습니다. 수업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재료를 더 깊게 이해하는 시간을 보내며, 관련된 전시를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지난 5월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한 끝에 9월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시민청에서 전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시 제목이 독특했어요. 어떻게 정해진 제목인가요?


제목은 도로 위 감속유도선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지그재그 모양이 이리저리 안과 밖을 ‘왔다갔다’하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그 형태가 작품만이 아니라 작품 이면에 있는 재료와 기법도 같이 다루는 이번 전시와 어울리겠다 싶었죠. 그 이후 좀 더 재밌는 표현을 고민하다가, 오셔서 많은 걸(多) 얻어가시면(Got)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금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전시에서 작품의 재료와 기법까지 볼 수 있었다는 게 새로웠어요. 이런 기획의 이유가 있을까요?


이번 전시 장소가 시민청이니까 평소 전시를 잘 보지 않거나 그림에 관심이 없는 분들도 쉽게 즐기는 친절한 전시가 되기를 바랐어요. 평소 저에게 전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물어보곤 하는 비전공자 친구들을 떠올렸죠. 수채물감이나 크레파스 같은 서양화 재료에 비해 석채, 분채 같은 동양화 재료는 낯설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쓰는 재료 설명과 그걸로 작업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담았고, 실제로 작업에 사용했던 도구를 작품과 함께 배치하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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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동양화 재료는 좀 낯선데, 설명을 간단하게 해주실 수 있나요?


안료에 어떤 접착제를 첨가하느냐에 따라 서양화 재료가 되기도 하고 동양화 재료가 되기도 해요. 서양은 주로 기름을 첨가하고, 동양은 동물 뼈나 가죽을 고아 만든 아교를 첨가하죠. 물감의 종류도 다양해요. 동양에서 사용하는 재료들은 자연에서 온 재료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먹도 나무의 그을음으로 만들고, 석채, 분채, 토채라고 불리는 재료들도 돌이나 흙으로 만들어졌어요.

 

 

이번 전시는 다섯 명의 작가가 한지라는 공통 재료로 작업을 했다는 점도 눈에 띄었어요. 각각 어떤 작품이 탄생했는지도 간략하게 들려주세요.


한지도 어떤 나무로 만들었느냐, 종이를 몇 번 겹쳤느냐에 따라 종류가 다양해요. 예를 들어 가장 얇은 한지는 ‘순지’라 하고, 순지를 두세 번 겹치면 ‘장지’가 됩니다. 

 

저는 여러 차례 붓질을 반복해 색을 쌓아가는 작품이 많아서 장지를 주로 썼어요. 반면 류은선 작가는 일상에서 직접 경험하고 느낀 아이의 여러 면모를 순지에 수묵 담채로 담아내 담한 느낌을 살렸죠. 한국에서 희귀해지고 있는 아이 표현을 통해 도시의 메마른 견고함과 소통의 벽을 무너뜨리는 힘을 발견하고자 한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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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한지로 작업해도 채색 방식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느낌이 납니다. 앞서 언급한 류은선 작가는 먹과 물감을 담하게 썼다면, 이호경 작가는 모래 위 파도의 소리를 시각화하려 했어요. 그러기 위해 모래와 석회가루로 한지 위에서 입체적인 느낌을 내고, 거기에 먹을 사용해 그렸죠. 

 

그 밖에도 정수연 작가는 자신만의 이상적인 식물을 장지 위에 과슈와 아크릴 스프레이, 분채를 함께 사용해 색을 쌓는 방식으로 표현했어요. 청이인 작가는 동양 전통 회화의 대표적 소재인 산수와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건축 내부 공간을 수묵과 채색의 조화로 구현했습니다. 내부 공간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안정적인 위치를 설정하고, 산수를 바라보는 시각적인 표현을 통해 작가와 자연의 관계를 제시하는 동시에 거울처럼 작가와 타인의 관계도 투영하고자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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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을 들어보니 동양화도 스펙트럼이 다양한 것 같아요.


동양화를 전공한 저도 동양화가 정확히 무엇이라고 정의하는 건 어렵습니다. 보통은 ‘동양화’ 하면 산수화나 화투 그림을 많이 떠올리는 것 같아요. 내용과 상관없이 동양화 재료로 그린 그림이라면 동양화로 보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게 명확한 기준이 될 순 없어요. 


요즘은 동양화가 중에서도 재료나 매체에 한계를 두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어요. 설치작업, 영상작업도 하고 한지에 아크릴이나 과슈 같은 서양재료를 쓰기도 합니다. 저는 작가로서 ‘동양화란 무엇이다’라는 식의 엄격한 정의를 내리기보다 전통을 어떻게 계승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석할 것인가 고민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작가님이 어떤 작업을 하시는지도 좀 더 들어보고 싶어요.


저는 분채와 석채를 주로 사용해 넓고 납작한 붓으로 안료를 널찍하게 올리는 방식으로 작업해요. 붓질을 여러 번 반복하며 색을 겹쳐 쌓습니다. 지금 다루고 있는 주제는 사랑이에요. 연인만이 아니라 친구와 가족, 더 나아가 이 세상 전체를 포함하는 큰 범위의 사랑이요. 그래서 소중한 사람들과 보냈던 좋은 시간을 그림으로 그립니다.


사랑은 이성이나 논리가 아닌 감정과 감각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제 작품도 구체적인 형상이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아요. 특정한 기억의 한 장면이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를 표현하는 거죠. 그래도 관객이 봤을 때 자신의 기억이나 경험을 연상할 정도의 형상은 남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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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이 생각하는 사랑이란 어떤 건가요?


제게 사랑은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에요. 미안함이나 낭패감, 애틋함이 뒤섞인 상태가 사랑에 더 가깝죠. 함께한 시간이 오랫동안 쌓이면서 그 많은 감정과 기억에도 불구하고 용서 또는 지지가 계속될 거라 믿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랑을 그리려고 해요.

 

 

사랑에 관한 작가님의 정의가 정말 좋은데요.


설명하지 않아도 그림에서 이런 생각이 느껴졌으면 좋겠는데… (웃음) 어떻게 표현해야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늘 고민입니다. 가족과 제주도에 갔던 기억을 바탕으로 작업한 ‘사랑하는 여름날’은 제가 무척 좋아하는 작품인데요, 관련해 블로그에 썼던 일기를 작품 옆에 같이 두니까 확실히 관객 반응이 좀 더 즉각적이더라고요. 하지만 그림 그리는 사람에게는 그림이 또 하나의 언어니까요. 그런 장치 없이도 복잡한 내용과 마음을 그림으로 전달할 방법을 찾는 게 늘 과제입니다.

 

 

작가님이 동양화 재료와 기법으로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떤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거창한 이유 없이 동양화 전공이다 보니 제게 익숙한 재료를 사용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재료를 쓰는 데 더 분명한 이유가 필요해졌어요. 주제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재료를 써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한동안 다른 재료도 사용해 봤어요.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이나 과슈를 써보기도 했죠. 시도는 좋았지만 제가 원하는 느낌이 나진 않더라고요.


예를 들어 한지는 섬유질이다 보니 그림을 그리면 안료가 종이 밑까지 들어가 쌓이면서 좀 더 깊이감 있는 화면을 연출할 수 있어요. 하지만 캔버스는 빛을 반사하는 성질이 있어서 그런 깊이가 좀처럼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재료를 찾다 보니 자연스레 동양화 재료로 돌아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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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과 글쓰기에도 관심을 갖고 계시다고 봤어요. 앞으로 기획하고 싶은 전시나 프로젝트가 있다면 살짝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론을 전공하시고 큐레이터와 기획을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기획 얘기를 하기엔 좀 민망하기도 해요. 그래도 한편으로는 제가 작가로 활동을 하고 있기에 가능한 기획이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최근 관심사는 한국 미술의 역사성, 한국미술과 동양화의 방향성이에요. 저 스스로도 공부를 많이 해야 하겠지만, 다른 작가분들과 함께 고민하고 탐구해가는 과정을 전시로 기획해보고 싶습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해보니 한 명보다 여러 명의 생각이 합쳐졌을 때 좋은 시너지를 내더라고요.

 

 

그렇다면 지금 작가님은 한국미술과 동양화의 방향성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제가 보기에 동양화는 전통 재료로 현대적인 이미지를 그리는 경우, 아니면 현대적인 재료로 동양적인 철학을 그리는 경우. 이렇게 이분화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아니면 병풍이나 족자처럼 전통의 ‘형식’을 차용하는 작업이 있고요. 이 모두를 동양화라고 부르는데, 저는 이분법을 넘어서 다른 길은 없을까 고민하게 돼요. 다른 선배님들도 함께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이 고민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앞으로의 방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작가님은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나요?


간단하게, ‘좋은 작업을 하는 작가’요. 작업이 좋은 게 가장 먼저이면 좋겠어요. 정말 좋은 것은 모두가 비슷하게 좋다고 느낀다고 생각해요. 제 작업도 그렇게 느껴지길 바라요. 그러기 위해서 작업을 꾸준히 계속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그 시간이 쌓여 언젠가는 스스로 바라는 모습이 되어 있을 거라고 믿어요.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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