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과 시선으로 비교하는, 같지만 다른 두 할리 퀸

<버즈 오브 프레이>와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비교하며
글 입력 2023.10.15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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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에서는 현재 할리우드와 블록버스터 시리즈물에서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중 가장 인기 있는 등장인물 중 한 명인, 마고 로비의 할리 퀸의 모습을 통해 할리우드가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할리 퀸이 등장하는 두 작품인 2016년작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2020년의 <버즈 오브 프레이>를 살펴보면서, 두 작품에서 굉장히 상이하게 묘사되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여성 캐릭터들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나아갈 방향을 살펴보자.

 

일단 작품을 살펴보기 전에 '메일 게이즈' 라는 단어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영국의 예술 평론가인 '존 버거'가 1972년 자신의 저서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단어이다. 평소에 영화를 시청하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끊는 뜬금없는 노출 장면이나, 여성 캐릭터의 몸을 위아래 훑는 카메라에 불편함을 느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메일 게이즈'란 이처럼 영화를 포함한 시각 예술 및 미디어 매체에서, 남성 시청자의 만족감과 즐거움을 위해 여성 등장인물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상품화하는 시선을 일컫는다. 여성은 남성 관객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눈요깃거리로 전락하는 것이다. 메일 게이즈는 단지 영화 뿐 아니라 만화, 그림, 드라마, 게임, 사진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나타난다. 소설이나 음악에서도 그러한 표현이나 가사를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다양한 분야들 가운데에, 이 글에서 우리는 할리우드에서 제작하는 대규모 블록버스터 시리즈물에 집중해 보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블랙 위도우나 스칼렛 위치는 가슴골이 드러나고 몸에 달라붙는 복장, 스타워즈 시리즈의 레아 공주나 파드메는 비키니 복장이나 찢겨진 배꼽티를 입고 전투에 참가하면서 액션씬 사이사이에도 남성 관객들을 위한 눈요깃거리를 제공한다. 그 마이클 베이가 연출한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여성 주인공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와 같이 여성 캐릭터의 성상품화가 밥먹듯이 이루어지는 할리우드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지독하고 노골적으로 대상화가 이루어진 캐릭터를 고르자면 아마도 할리 퀸일 것이다. 그렇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등의 영화가 처참한 혹평을 받으면서도 ‘DC의 소녀 가장’이라 찬송받던 캐릭터. 인지도나 수입 면에서가 가장 유명한 여성 코믹스 캐릭터 중 한명으로 발돋움한 할리 퀸 말이다. 하지만 인기가 많다고 해서 그녀를 묘사하는 방식이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아닐 터이다.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에서 할리 퀸

 

미국 코믹스 대다수의 여성 캐릭터들과 마찬가지로, 할리 퀸은 자주 성상품화가 되는 캐릭터이다. 이런 성적 대상화의 트렌드는 영화에서도 적용되는데, 할리 퀸의 첫 실사화가 이루어진 2016년 작품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그녀는 노골적인 메일 게이즈를 통해 그려진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 촬영장의 파파라치 숏과 예고편의 모습에서부터 화려한 외모와 노출이 심한 복장으로 화제가 되었던 그녀. 순식간에 그 인기는 엄청나게 올라갔다. 개봉 전에는 제작사에서 영화의 흥행과 관심을 위해 그녀의 옷을 노출도가 높게 합성했다는 논란이 있었던 것도 모자라, 영화 본편에서 그녀는 더욱 심하게 성적으로 대상화가 되어서 등장한다.

 

그녀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부터 영화 끝까지, 카메라는 할리 퀸의 몸을 노골적으로 훑는다. 전투씬에 돌입하기 위해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멤버들이 복장을 갖춰 입는 장면에서도, 단순히 옷입는 모습을 보여주던 다른 캐릭터들과는 달리, 할리 퀸의 경우는 다리부터 가슴의 몸을 카메라가 천천히 훑으면서, 붉은색의 브래지어를 노출하는 등의 모습까지 보여준다. 그 이후에도 엉덩이를 과도하게 클로즈업하거나, 후반부 전투씬에서는 비에 흠뻑 젖어서 속옷이 비치는 등 철저히 메일 게이즈적인 모습으로 보여준다. 단순히 복장적인 측면 뿐 아니라, 영화에서 그녀가 묘사되는 모습을 살펴보자. 영화 전반적으로 할리 퀸은 남자친구인 조커의 소유물, 도구로 취급된다. '조커의 소유물' 이라는 문신을 등에 대문짝만하게 그려놓을 뿐 아니라, 조커에게 의지하는 등 수동적인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영화 속 캐릭터의 모습이 단지 영화 안에만 머물지 않고 팬 아트나 코스프레, 다양한 상품의 모습으로 재생산되는 것처럼, 메일 게이즈와 성적 대상화 역시 옮겨지고 재현된다. 할리 퀸의 피규어 모습을 보자. 민망한 부위에 새겨진 타투 뿐만이 아니라, 얇디 얇은 옷 사이로 비치던 빨간색 브래지어마저 재현해 놨다. 장난감 인형이나 피규어가 브래지어를 차고 있는 건 또 처음 본다.

 

 

버즈 오브 프레이(2020) 에서 할리 퀸

 

하여간 이런저런 이유로 흥행했지만 혹평을 받을 뿐 아니라 할리 퀸의 묘사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겼던 작품이 <수어사이드 스쿼드>이다. 하지만 할리 퀸 캐릭터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았으니, 제작자에서는 할리 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영화를 더 제작하게 되는데, 바로 <버즈 오브 프레이>다. 할리 퀸을 제외하고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등장인물은 복귀하지 않고, 감독과 작가진도 새롭게 교체되었다.

 

<버즈 오브 프레이>에서 눈여겨볼 첫번째 점은 할리 퀸이 조커와 헤어진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남자친구인 조커와 헤어져 마음이 아픈 할리 퀸. 조커가 없어졌으니 그녀를 노리는 범죄자 악당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결국 할리 퀸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여성 히어로들과 힘을 합쳐서 악당을 무찌르고, 진정한 '해방'에 이르는 것이 본작의 줄거리이다. 줄거리에서부터 수동적이고 종속적이었던 전작과는 달리, 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방향으로 할리 퀸을 그려낸 점이 눈에 띈다. 두 영화가 할리 퀸을 다루는 방식은 여기에서만 차이나지 않는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버즈 오브 프레이>에서 할리 퀸이 입는 복장은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인다. 속옷이 비치는 얇은 상의, 그리고 짧은 하의 까지 말이다. 하지만 <버즈 오브 프레이>에서의 복장은 결코 성적 매력을 노골적으로 어필하겠다는 의도로 비쳐지지 않으며, 카메라가 할리 퀸의 몸을 훑거나 탈의씬을 보여주는 장면도 없다. 초반부 할리는 시스루 바디수트와 네온 분홍빛의 브라렛을 입는다. 할리 퀸의 의상과 관련해서 이 속옷은 중요한 요소인데, 할리 퀸이 처음으로 분홍색(본작에서 그녀와 연관되는 색깔) 의복을 착용하는 경우일 뿐 아니라, 전작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의 속옷과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버즈 오브 프레이>의 브라렛(그리고 이후 극중 대부분 할리가 입는 스포츠브라)은 편안한 착용감과 패션을 위함이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착용했던 빨간색의 푸쉬업 브래지어는 할리 퀸의 가슴을 강조하고 성적으로 대상화하기 위함이었던 것과는 대조된다.

 

두 영화 모두 할리가 흰색 티셔츠를 입은 채 빗속에서 싸우는 모습을 담는다. 그러나 두 장면을 연출하는 시선은 현저히 다르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셔츠는 할리의 몸에 딱 달라붙는 의상인데, 이런 의상이 물에 젖자 자연스레 그녀의 몸 자체는 하나의 볼거리, 눈요깃거리로 전락시킨다. 반대로 <버즈 오브 프레이>의 널널한 셔츠 그리고 스포츠브라는 성적 대상화를 전혀 이루어내지 않는다. 물에 젖어 몸에 달라붙지 않을 뿐 아니라, <수어사이드 스쿼드>와는 달리 할리의 몸이 아니라, 그녀가 펼치는 화려한 액션 동작과 싸움 씬 자체가 볼거리가 된다. 그 외에도 클럽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 등장하는 등, 두 작품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은데, 역시 1) 할리 퀸의 복장과 2) 그 모습을 담는 카메라의 측면, 두 가지 면에서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할리 퀸 뿐 아니라 다른 여성 캐릭터인 블랙 카나리도 검은색 브래지어에 복부가 노출되는 나시티를 입는 등 성적 대상화로 여겨질 수 있는 복장을 하지만, <버즈 오브 프레이>에서는 결코 대상화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런 <버즈 오브 프레이>는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 뿐 아니라 스토리텔링, 연출 등의 면에서 훨씬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어 <수어사이드 스쿼드> 보다는 훨씬 나은 평가를 받았으나, 2020년 2월 코로나바이러스 발생시기와 개봉일이 겹쳐 아쉽게도 비슷한 수준의 흥행은 거두지 못했다.

 

 

결론,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성

 

할리 퀸은 여전히 가장 인기가 많은 만화 캐릭터 중 한 명이고, (같은 DC코믹스 내에서는 원더 우먼 다음으로 인기많은 여성 캐릭터이다.) 그런 만큼 당연히 앞으로도 영화를 통해서 볼 일이 많을 것이다. 2021년 개봉한, 할리 퀸의 세 번째 영화인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할리 퀸은 상품화나 대상화가 되지 않고, <버즈 오브 프레이>보다도 더 발전된 화려한 액션씬과 서사를 돋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그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연출한 제임스 건 감독이 향후 DC 코믹스 원작 영화화를 이끄는 수장이 되었으니, <버즈 오브 프레이>와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만난 멋진 할리 퀸의 모습을 더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특히나 할리 퀸을 연기하는 마고 로비는 올해 <바비>를 통해 대흥행을 이룬 스타 자리에 올랐으니, 다음 번에 할리 퀸을 만날 때는 어떤 모습일지가 궁금해진다. 무엇보다 할리 퀸이 거친 이런 변화를 통해, 더 많은 여성 캐릭터들이 주체적이고 강인한 모습으로 영화 스크린에 등장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하지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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