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소중한, 존재 : 강아지똥 [영화]

존재에 대하여 그리고 삶에 대하여
글 입력 2023.10.15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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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밝은 빛의 환호를 온몸으로 받으며 세상에 태어난 우리. 대부분의 우리는 그때의 환호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유년기를 지나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탄생의 순간을 들으며 그 환호를 추측하곤 한다. '나'라는 존재를 기다리고, 기억하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 그것만큼 나를 나로서 인지하고, 인정하고, 존재하게 하는 것은 없다.

 

재빠른 물고기 한 마리가 강바닥에 잠재워져있던 흙먼지들을 모두 일으켜세우듯,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은 이 물고기처럼 우리의 삶을, 우리의 존재를 종종 혼탁하게 만든다. 삶과 존재라는 강에, 그 시절의 환호와 곁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의 바위가 되었다. 그러나 혼탁한 물에서는 그 바위마저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보이질 않는다. 흐린 물 속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힘이 없을 때도, 나아가기 두려울 때도 있다.

 

기존의 것은 어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재촉할 뿐, 일렁이는 강물을 잠재우지 못한다. 고요했던 예전처럼 강물을 잠재울 수 있는 건, 우리의 삶과 존재를 다시금 인식시켜주는 새로운 빛이다.

 

그 새로운 빛이 당신에게는 무엇이었는가? 

 

아직 새로운 빛을 찾지 못해 점점 더 빨라지는 유속을 느끼며 힘들어하고 있는 당신에게 소개한다. 영화 <강아지똥>, 당신의 강이 다시 맑아지도록 도와주는 새로운 빛이 되길 바라며.

 

 


1. 존재(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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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강아지똥>

 

 

있을 재, 있을 존. 현실에 실제로 있는 대상. 즉, 실제 대상이 객관적으로 인식되어지는 것이 존재의 개념이다. 강아지똥은 세상에 태어나 본인이 무슨 존재인지 알지 못하다가, 지나가는 사람들, 옆에 떨어진 흙덩이로부터 '똥이다.', '더러워.'라는 말을 통해 본인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똥이면 어때?' 라고 말하는 강아지똥에게 '너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개똥이야.' 라는 말로 응수하는 흙덩이. 이 둘의 대화 속에서 우리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세상에는 우리의 존재를 판단하는 수많은 기준이 있다. 그 기준이 한 사회에 오래전부터 뿌리깊게 박혀있는 통념일 수도 있고, 전세계적으로 만연한 편견일 수도 있다. '초등학생은 이래야 해.', '여자는, 남자는 이래야 해.', '장남은, 장녀는 이래야 해.', '20대는, 30대는 이래야 해.' 이런 말들을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듣고 자라왔다. 그 기준들이 당연한 것처럼. 당연히 우리가 들어야 하는 말들처럼.

 

우리는 그 기준에 따라 우리의 존재를 만들어왔고, 그것이 '나'라는 강을 만들었다. 그 기준에 맞지 않는 방향으로 존재를 형성할 때면, '쓸모없다.', '필요없다.', '쓸데없다.'는 말들로 우리의 강을 흐리게 만들었고, 어둠을 드리워 혼탁해진 강을 직면하지 못하게 막았다.

 

강아지똥이 사는 세상도 그 세상이 규정하는 쓸모있는 존재가 똥의 외형을 지니고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저 똥은 외형적으로 냄새나고 더러운 존재라고 치부되는 세상이었다. 개개인의 개성보다도 평균적인 특성을 더 중시하는 세상, 내면보다도 외적인 것을 더 중요시하는 세상. 강아지똥의 세상과 우리의 세상은 다를 바 없었다.

 

 

 

2. 유한한 존재 : 삶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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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강아지똥>

 


흙덩이를 떠나보내고 밤이 무서워 울고 있는 강아지똥에게 온 감나무잎. 감나무잎은 본인의 일생을 말하며, 강아지똥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메세지를 전한다. 봄에 엄마로부터 태어나 여름을 즐기다가 가을, 겨울이 되면 엄마 곁을 떠나는 잎사귀는 어떤 존재든 한 번 태어나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때가 온다는 것을 조심스레 알려준다.

 

감나무잎처럼 인간도 유한한 존재이다. 그 길이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인생의 끝이 존재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전제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는 것. 모든 일에 부합하는 문장이지만, 인생도 피해갈 수 없는 명제이다.

 

유한성은 슬픔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존재 자체를 더 소중하게 만들어준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모든 존재는, 그 관계가 가깝든 멀든 언젠가는 '잘 가.' 라는 인사를 건네야 할 때가 온다. 그 존재가 살아있음을 아는 순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고, 그 존재와 내가 시간과 장소를 매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에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어디든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를 꿋꿋이 지켜야 하는 강아지똥이든, 바람이 인도하는 방향대로 어디든 움직이며 정처없이 떠돌아다녀야 하는 감나무잎이든, 세상에 나왔으니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치이고, 본인의 존재에 불만을 가질지언정 유한한 존재로서 진귀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외형과 특성이 어떻든, 우리가 걸어온 길이 사회의 기준에 부합하든, 부합하지 않든, 우리는 우리의 존재만으로 소중하다. 시작과 끝 사이, 그 어딘가에서 우리가 만들어내고 있는 모든 빛들은 귀하게 여겨질 가치가 있다. 삶을 걸어오며 남긴 빛들은 우리가 세상의 끝에 비로소 도달하였을 때, 우리의 존재를 세상에 각인시킨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존재이든 진귀하다.

 

 

 

3. 겉이 아닌 속을 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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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강아지똥>

 

 

'나 같은 더러운 똥이 어떻게 살 수 있겠어...'

 

'하나님은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 너도 꼭 무엇인가 귀하게 쓰일거야.'

 

 

강아지똥이 본인의 존재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을 때, 흙덩이가 해준 말이다. 쓸데있는지, 없는지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쓸데없는 존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겉에 드러나는 특성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닌, 속에 있는 특성을 보면, '쓸데없다'라는 단어와 '존재'라는 단어는 함께 쓰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았는데...'

 

'예쁜 꽃을 피게 하는 것은 바로 네가 하는 거란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고, 나를 판단하는 모든 기준에 내가 부합하지 않고 이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런 상황에 있다보면, 나라는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존재였는지 분명하게 떠올리기 힘들기도 하다. 나의 삶이, 나의 존재가 흐릿해지면, 앞으로 나아갈 추진력조차 잃게 된다.

 

우리의 겉을 보고 판단하는 세상의 기준을 아예 무시하고 살아가기는 힘들겠지만, 그 세상의 기준이 우리의 속에 있는 특성까지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양지해야 한다. 내가 어떤 존재로 이 세상에 보이든,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는 사실까지.

 

강아지똥이 민들레를 만나 민들레꽃을 피우고, 민들레홀씨를 흩뿌려 세상에 본인의 자취를 남겼듯, 우리도 하루하루 숨을 쉬고 활동을 하며 남긴 자취들이 우리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되새김질하게 한다.

 

영화 <강아지똥>이 우리 그리고 당신에게 새로운 빛이 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소중한, 존재 라는 것을 거듭 인식시켜주기 때문이다.

 

어둠 속 새로운 빛, 그 빛이 내미는 손을 잡아보는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

 

 

[이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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