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소리쳐, 너는 나의 노랑이야

글 입력 2023.10.2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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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비명 그리기


 

어느덧 2023년 10월, 한 해가 거의 다 갔다. 지난 열 달 간 예술과 함께 한 시간을 생각한다. 많은 창작을 접했지만, 그 중 올해 가장 좋았던 전시는 리움미술관에서 보았다. 내 세계를 넓히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생각을 전복시키고 확장해 주는 전시를 좋아하는데, 이것이 그러했다.

 

김범 작가의 개인전 <바위가 되는 법>은 작가 특유의 물활론적 사고, 세상의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전개를 통해 세상에 다른 획을 긋는다. “당신이 보는 것은 보는 것의 전부가 아니라"는 다소 도발적인 가정은 관념적 사고에서 탈피해 자신을 성찰하고 새롭게 다시 '보는 법'을 가르친다.


그는 철학 없는 철학자다운 면모로 다양한 그림을 그려나갔고, 덕분에 전시장 안을 걸어 다니며 즐거운 경험을 쌓았다. 내 식대로 전시를 해석하고 소화하는, 일련의 과정을 즐기기에 오디오 가이드를 빌리지 않았다. 베일에 싸인 채 음미한 많은 작품 중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은 ‘노란 비명 그리기’였다.

 

커튼 안의 독립적인 공간으로 꽁꽁 싸매져 있던 이 작품은 들어가기 전부터 누군가의 괴성으로 나를 놀라게 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어리둥절해하며 커튼을 젖혔고, 가장 먼저 이 작품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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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bum / 노란 비명 그리기, 2012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 비디오 아트를 관람했을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노랑은 곧 비명이었다. 작가는 한 획 한 획 쌓아갈 때마다 비명을 질렀고, 전시 공간 외부에서 들렸던 그 괴성 또한 작가의 것이었다. 우스운 모습에 깔깔대며 관람하던 중, 김범 작가가 말했다.


“비명이 꼭 슬프거나 화났을 때만 지르는 것이 아닙니다. 기쁠 때도 지를 수 있어요. 노란색은 위험을 뜻하기도 하지만 명랑함을 뜻하기도 합니다. 당신도 노란색의 비명을 질러가며 살길 바랍니다.”


와닿았다. 작가의 말과 그림, 사진과 비디오 작품들은 항상 나에게 와닿는다. 언제 내가 행복한 비명을 내지르나 톺아보면 항상 예술과 가깝다.

 

 


노랑을 손에 쥐고


 

초등학생 때, 나는 항상 노란색 가방을 들고 다녔다. 참 희한하다고, 주변인들이 말했다. 다른 아이들은 핑크색 아니면 파란색 가방을 고르는데 넌 왜 하필 노란색이었냐고. 그때의 너 하면 그 가방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고 한다.

 

과거의 기억은 거의 잃은 나도 기억한다. 입학하기 전 가방을 골라야 했는데, 단박에 눈에 띈 그 가방을 처음 집에 가져온 순간부터, 졸업과 함께 가방과 인사한 순간까지. 그 가방과 함께했던 6년의 순간 동안 참 많이 울고 많이 배우고 많이 혼났지만, 동시에 사랑받았고 사랑했고 성장하고 고마워했다. 그리고 이 감정들을 느꼈던 매 순간 나는 자지러지며 웃었고, 통곡했으며, 때로 소리가 텅 비어버린 채 나타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가방은 일종의 나의 최초 방점이었다. 내 자아를 표출하기 위한 수단. 자의로 노랑을 쥐었고, 내가 쥔 노랑만큼 나는 소리치며 살았다. 기뻤고 슬펐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은, 그저 나답게 살고 싶은 욕구였을 뿐이다. 참 신기하다, 이제 나는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나 들여다본다.

 

 

 

이제 내 노랑은 너


 

나는 너무나도 많은 의문을 품고서 살았다. 왜 글 같은 걸 쓰는지? 쉽게 대체될 글을 고집하는지? 왜 예술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지? 앞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건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은 내 마음속을 어지럽히게 괴롭혔다. 그럼에도 더 괴로웠던 건 시작하지 않은 내 자신이었다. 결국 여러 종류의 창작을 시작하고, 추후 아트인사이트에 들어와 에디터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나는 느꼈던 것 같다. 이번엔 이게 나의 '노랑'이라고.


김범 작가의 말마따나, 우리가 노란색의 비명을 지르며 살아간다면 이건 내 자의로 손에 쥔 비명이다.


실제로 ‘아트인사이트’에서 에디터로, 이후 컬쳐리스트까지 활동하면서 글이 잘 써질 때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글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땐 머리가 지끈거려 신음하면서 꾸준히 글을 쓴 지 8개월이 지났다. 불안함을 줄이는 수단과 작은 창작의 돋움으로의 목적이 되었다.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시작했고, 꾸준히 해야 해서 꾸준했더니 덕분에 많은 관심과 재능을 발견하기도 했다. 팩트가 뚜렷하기보다 평론, 사설같이 내 생각을 많이 집어넣은 글이 더 매력적이라는 점, 많이 쓰다 보면 어느샌가 늘고 있으니 일단 시작하고 봐야 한다는 점, 많은 이들과 내 관점을 공유하는 것이 꽤 즐겁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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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나, 예술과 함께 안정된 나는 미래에 어떤 방점을 찍어갈까 궁금하다.


내가 나로 된, 아무것도 아닌 날들을 축복하며 그저 방점을 찍어내듯 살아가는 사람은 노란색 비명을 질러가며 살아낼 수 있다. 앞으로도 어디에서나 나는 내가 쥔 그들을 옹호하는 글을 써 내려가고 싶다.

 

 

 

컬쳐리스트 김하영 태그.jpg

 

 

[김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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