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7개 키워드로 찾아가는 혼종, Hybrid Korea - 도서 '혼종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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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종hybrid’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앞선 질문에 대한 답에서 시작한다.
책의 서두에서는 탈식민주의 학자 호미 바바로부터 개념을 가져오는데, 그 개념에 따르면 혼종은 '유동적이고 역동적이며 적응력 강하며, 혁신적인 무언가가 탄생할 수 있는 것'으로 정의된다. 뒤섞이고 분열하기도 하면서 상상치도 못한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주체라고 할 수 있다.
문화 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 개념의 연장선에서 Hybrid Korea, 즉 21세기 아이콘이자 한국의 문화 트렌드를 꿰뚫는 단어로 혼종의 의미를 확대하여 바라본다. 그 기점은 저자가 삶의 과정에서 목격한 한국 사회와 문화의 변화, 그 결과 혼종적 정체성을 형성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책에는 7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이상하고 아름다운 한국 문화가 서술되어 있는데, 이는 저자가 〈중앙일보〉 칼럼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에 연재해온 내용을 보완한 것이다. 돈, 손절과 리셋, 반지성주의, 하이브리드 한류, 신개념 전통, 일상의 마이크로 정치, 포스트 코로나와 인공지능을 7개 키워드로 다루고 있다.
‘끔찍한 혼종’이란 말이 있듯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혼종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가 많다. 그러나 페르시아와 로마 같은 모든 제국의 문화는 혼종이었다. 제국의 영향을 받은 문화식민지는 혼종성을 키움으로써 제국과 식민지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문화권력을 전복할 수 있다.
탈식민주의 학자 호미 바바Homi Bhabha, 1949~가 말했듯이 순수성은 신화에 불과하고 ‘제3의 공간’인 혼종성에서 새로운 형태의 정체성이 출현할 수 있으며, 이러한 혼종적 정체성은 본질적으로 유동적이고 역동적이고 적응력이 강하며, 새롭고 혁신적인 무언가를 탄생시키기 때문이다.
_pp.6~7 들어가며 - 혼종세대의 눈으로 바라본 이상하고 아름다운 혼종의 나라
읽기만 해도 흥미로운 키워드들은 저자가 궁금증을 가졌던 여러 질문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기생충〉, 〈오징어 게임〉, 〈피지컬: 100〉과 같은 콘텐츠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이유는 한국적이어서일까?’, ‘〈재벌집 막내아들〉, 〈내 남편과 결혼해줘〉와 같이 이른바 ‘회빙환’이라 불리는 회귀, 빙의, 환생물이 지속적인 인기를 얻는 이유는 뭘까?’, ‘BTS, 블랙핑크, LOONA 등 K팝 아이돌 그룹은 어떻게 세계적인 팬덤을 얻었을까?’, ‘달항아리가 한국미를 대표하는 작품이 된 이유는 뭘까?’, ‘미술관은 어떻게 영화관을 제치고 데이트 ‘핫플’이 되었을까?’와 같은 질문들이다.
저자가 예시로 든 작품 중,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다수의 평을 들은 〈오징어 게임〉에 대한 설명은 '하이브리드 코리아'를 잘 이해하게 해주어 인상 깊은 대목이었다. 이 대목의 첫 문장은 외국인이 가장 많이 먹고 선호하는 한식이 한국식 치킨이라는 조사 결과를 짚으면서, 딥 프라이드 치킨이 미국 남부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가져와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오징어 게임〉은 세계보편적 요소(사회문제, 데스게임)와 한국적인 요소(가족애, 놀이), 진부한 요소와 독창적인 요소를 정교하게 잘 버무렸는데, 이러한 배합의 기술 자체는 할리우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결과라는 것이다. 기술뿐만 아니라 스토리와 정서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일부 교집합 포인트가 생기기도 하는데 세계보편적 요소는 곧 한국적인 요소가 되기도 하고,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놀이와 줄다리기는 비슷한 게임이 외국에도 존재해 친숙한 재미를 안겨주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조합을 두고 저자는 '가장 한국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한국적이지 않은 동시에 한국적인 것'이라 말한다. 즉, 외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들여 일종의 혼종이 된 한국의 대중문화 풍토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독특한 우리나라의 문화임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오로지 옛 전통에 입각해 한국적인 게 무엇인지 정의고 외국 문화의 영향을 배제하려는 태도를 제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문화에서 한국적이지 않은 것들을 함부로 규정하고 뽑아내다가는 도리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기에 이 또한 주의해야 함을 덧붙인다.
혼종성의 공간, 청와대
전 국민이 부지런히 찾고 있는 청와대 또한 하이브리드 코리아로 대표되는 혼종성의 공간으로 책에 등장한다. 드높은 천장과 카펫, 샹들리에 조명, 크리스탈 장식과 같은 유럽 양식이 곳곳에 있다면, 한옥 문살로 된 창문과 전통 휘장인 방장房帳, 한국 작가의 그림은 우리의 전통 그 자체다. 서구와 한국적인 것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본관 인테리어의 혼종성은 권위적이면서도 민주주의 정신을 담고 있다. 화려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고가의 미술작품 외에도 저가 및 옛 그림의 모사본도 다수라고 한다. 청와대 컬렉션이 일정 수준을 유지하게 된 이유에는 국민 세금 낭비에 대한 구설과 우려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청와대의 혼종성에는 재미있고도 나름의 사연이 담겨있다.
본 글에서 언급한 내용 외에도, 책 속에는 혼종과 한국 문화의 연결 지점을 찾은 다양한 내용이 녹아들어 있다. '혼종'을 주제로 저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관점도 흥미로웠지만,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고찰하며 우리의 소중한 문화를 지키는 동시에 발전시켜 나가려면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스스로 생각하는 기회를 건네받을 수 있었다.
혼종이라는 단어가 주었던 부정적인 의미를 멀리하고 좋은 방향성으로 사고를 확장하여 의미를 재정립해 본 시간이기도 했다. 책에서 끊임없이 말하고 있듯, '혼종'은 한국문화의 어제와 오늘, 앞으로 나아갈 내일을 모두 담고 있는 복잡하면서도 특별한 단어다.
[최세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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