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 안에서 우리가 된다

더 셜리 클럽
글 입력 2023.10.15 02:5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IMG_0512.jpg



셜리는 한국 이름으로 치자면 영자, 미숙과 같은 오래된 이름이다. 하지만 이 이름도 언젠가 크게 유행했던 적이 있었으리라. 시대에 맞는 이름이라는 것은 뭘까. 흘러가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우리의 이름마저 변해야 하는 걸까. 작고도 사색적인 생각들이 들게끔 하는 이름이다. 제목인 '더 셜리 클럽'은 셜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다. 같은 이름이라는 이유만으로 묶인 그들의 연합은, 그 단합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셜리에게
에밀리가 이미 멋진 편지를 써서 나는 그리 할 말이 없다.
네가 찾고 있는 사람도 혼혈이라고 했지. 여러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은 그 문화적 배경에서보다 그들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 안에서 정체성을 찾게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 안에서 우리가 된다.
네가 찾고 있는 사람에게 네가 주는 사랑이 그 사람을 완성해 줄 거다.
건강해야 한다.

 

너의 충실한(Your Sincere) 

셜리 넬슨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나를 위해 힘써주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아주 값진 일이다. 셜리가 셜리 클럽 할머니들, S, 룸메이트 언니의 도움을 받는 것이 참 부러웠다. 물론 소설이기 때문에 도움을 받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전개였지만 실제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남들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조차 힘들지만, 타지에서 대학 생활을 하고 있는 나를 생각해 보니 나도 주변 사람들에게 참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에게 선뜻 도움을 주고 선의를 베푸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 고마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사람보다 사랑을 믿는 나에게는 큰 감동이었다.
 
  
그렇지만 거기 담긴 곡들을 녹음할 때, 엄마에게 3분 14초 짜리 곡을 들려주려고 아빠도 3분 14초를 똑같이 썼을 거예요. 원하는 지점에 제대로 녹음이 되지 않았거나, 소음이 섞여 들어간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여러 번의 3분 14초를 다시 견뎠겠죠. 들려주고 싶은 곡을 고르는 데 드는 시간, 말하고 싶은 것을 고민하는 시간 같은 걸 빼도 상당한 시간이 들었을 거예요. 나에게 카세트테이프는 그런 의미가 있어요.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간을 선물하려 할 때에는 먼저 똑같은, 때로는 더 많은 시간을 써야만 한다는 걸 알려 주는 도구.

내게 그게 필요하다는 걸 당신은 알았던 거예요. 그것도 어쩌면 나보다도 더 정확하게.
 
 
S는 내가 누워 있는 침대의 발치에 한 팔을 기대고 거기에 머리를 댄 채 잠들어 있었다. 이불 너머 내 무릎에 S의 팔꿈치가 닿아 있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깨달음이 피할 길 없는 파도처럼 나를 뒤덮었다.
이 사실에 순응해야 했다. 내게 이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토록 큰 위안과 감사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에. 이 사람을 알게 된 이후 나는 내내 이 사람을 필요로 해 왔는데, 그 사실을 애써 모른척 해 온 것 같았다.
 
 
S는 셜리의 어떤 점을 통해 사랑에 빠졌을까. 무작정 셜리 클럽을 따라간 펍에서 두리번거리는 셜리의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친구들에게 놀림당하는 셜리를 챙겨주고 싶어서?
 
나는 가끔 영화나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의 사랑의 구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곤 한다. 어쩌다 사랑에 빠지게 된 건지, 왜 나 몰래(?) 사랑에 빠진 건지. 여전히 이 책에서도 S가 어째서 셜리에게 사랑에 빠진 건지 알 길은 없다. 하지만 둘이 사랑하는 과정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마지막에 S는 자신이 먼저 셜리를 좋아했다고 주장하는데, 나로서는... 그건 모르겠다만 어째서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가 궁금한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상대의 어떤 점을 콕콕 찍어가며 사랑에 빠지지는 않는 것 같다. 셜리와 S처럼 정신을 차려보면 이 사람이 내 곁에 '있다'라는 것만으로 위로를 받는다. 어쩌다 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깨달음이 들 때면 내 감정의 소용돌이에 나조차 놀라기도 한다. 사랑에 이유를 찾다니.
 
또, 우리는 책이 다 끝날 때까지 S의 이름도, 나이도, 성별도 알지 못한다. 사실 그래서 사랑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그 어떤 것도 아무런 소용도 쓸모도 없다는 것을 느꼈다.
 
셜리와 S 둘 다 가족의 부고 또는 암 소식에 절망과 동시에 서로를 떠올렸다는 게 사랑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가족의 부고나 암 소식을 듣는다면 모든 것을 접고 돌아갈 것 같다. (셜리나 S의 불효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에게 '사랑'이라는 요소는 '가족'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항상 사랑이 가득 찬 세상을 꿈꾸는데 나의 1순위는 사랑이 아니었다는 게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어쩌면 다른 형태의 사랑일 수도 있지만! 사랑을 1순위에 두는 사람의 사랑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보라색 목소리를 듣게 되길 바라며...
 
술술 읽혀서 한 시간 반 만에 다 읽은 책이다. 요즘 워킹홀리데이와 어학연수에 관심이 많았는데 호주의 워킹홀리데이를 배경으로 한 딱 맞는 책을 우연히 접하게 되어 운명이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랑과 정의로움까지 듬뿍 담고 있는 책이라 전혀 지루할 틈이 없었다. 특히 사랑 앞에서는 결국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 가장 크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재밌고 많은 생각을 들게 한 책이었다.
 
 
[김민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5.01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