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빨갛고 작은 열매가 맺혔다. [도서/문학]

[소설] 이유리, 『빨간열매』
글 입력 2023.10.13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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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의 「빨간 열매」는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자기를 화장하고 나면 유골을 화분으로 만들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떠난 아버지. 두 번의 계절이 흐르고 ‘나’는 아버지의 부탁대로 빼빼 마른 나무 한 그루를 흙과 아버지의 뼈를 섞어 하나의 화분을 만든다. 그랬더니 그 화분이 아버지가 되는 기이한 일이 생긴다. 여기서 이 소설의 환상성이 생긴다. 사람이 화분이 되고 ‘나’가 화분과 함께 대화하며 살아가는 판타지적인 요소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재밌는 것은 아버지가 나무로 변했어도 ‘나’에게 이전과 다를 것이 없다는 점이다. ‘나’에게 물을 찾기도 하고 텔레비전 앞에 데려가라고도 한다. 그는 사람이었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이러한 아버지의 대화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닌 나무로써 ‘나’의 곁에서 존재한다.

 

그러나 나무가 된 아버지에 대해 이상함을 느끼지 않는다. ‘나’가 나무와 사람으로 아버지의 존재를 구별하기보다는 그저 ‘아버지’라는 존재로 화분을 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나’가 번역하는 <사과>라는 소설을 보여주며 더 강조된다.

 

  
여자의 마지막 대사는 아무렇게나 나열된 알파벳으로 처리되어 있는데 의사는 아마도 그건 사과의 언어였던 것 같다고 생각하며 슬퍼한다. 나는 여기까지 번역해 놓고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서 피식 웃었는데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이 사과의 언어라니, 아버지는 나무가 되었어도 창문 열어라, 콜라 사 와라 말만 잘하는데.(p.17)
 


‘나’는 자신이 번역하는 <사과>라는 작품에서 나오는 사과의 언어는 받아들이지 않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아버지의 언어는 여전히 사람의 언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나무의 언어를 알게 된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은 전혀 없기에 나무라는 존재로 인식하기보다는 그저 아버지라는 존재로 바라보며 ‘나’는 외적인 존재에 집중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두 명의 인물로만 계속 전개된다면 이야기가 조금 늘어졌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나’와 아버지에게 비슷한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또 다른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나’와 아버지가 산책하던 중에 공원에서 만나게 된 P 그리고 아버지와 비슷한 크기의 화분 하나. 화분 하나는 P의 어머니였고, 그들은 자주 만나게 되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며 서로를 닮아간다. ‘나’와 P, 아버지와 P의 어머니. 사람과 사람 혹은 식물과 식물. 이들에게 사랑의 감정이 등장하는 것이다.


‘나’가 번역하는 <사과>라는 작품은 글을 읽으면서 꾸준히 독자가 떠올리게 한다. 그저 ‘나’가 번역가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에만 활용되지 않는다. 사과의 언어를 등장시켰던 것처럼 여자가 사과가 되어 반으로 갈라지는 상상을 하는 것을 마지막에 비슷한 이야기로 결말을 지으며 또다시 <사과>라는 작품을 회상하게 만든다.

 

 

씨방과 씨앗을 훤히 드러낸 자기 모습에 수치스러운 것도 잠시, 곧 여자는 극도의 정신적 혼란에 빠지고 만다. 몸이 갈라진 순간에 마치 정신도 반으로 나누어져 버린 것 같아서 그녀의 의도와 의식과 의지가 대체 이쪽 조각에 있는 것인지, 저쪽 조각에 있는 것인지 스스로도 구분할 길이 없어지고 만 것이었다.(p.17)

 

 

나는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고 생각했고 P가 열매의 껍데기에 과도를 살짝 갖다 대자마자 잘 익은 그놈은 반으로 쩍 갈라졌는데 새빨간 속살이 꽤나 맛있어 보였다. 나와 P는 각자 한 조각씩을 들고 하나, 둘, 셋에 입에 쏙 집어넣었다.(p.31)

 

 

소설에서 재밌는 것은 ‘나’와 계속해서 겹치는 <사과>라는 작품처럼 대칭적인 관계가 여러 방면에서 등장한다는 것이다. 사과의 언어와 식물의 언어, 나와 P의 관계와 아버지와 P의 어머니와의 관계, 사과와 빨간 열매 이러한 부분이 소설에서 구조적으로 나타난다. 이런 부분은 스토리가 연결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집중하여 이를 더 특별하게 만들기보다는 어떻게 존재해도 상관없다는 듯이 이야기를 이끌고 나서 익숙함으로 풀어내는 이야기가 빨간 열매이다.

 

이야기에서 인물 간의 갈등 혹은 대립이 일어나지 않지만, 죽은 사람이 나무가 되었고 이들의 일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환상성이 작용하고, 이는 이야기의 전체적인 부분을 담당한다.

 

 

[김지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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