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표면 뒤에서 살아 움직이는 작품 이야기 - 처음 만나는 7일의 미술 수업 [도서]

글 입력 2023.10.11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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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그 작품이 걸려 있는 주변 환경에 몹시 큰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좋은 기회를 통해 역사적으로 칭송받는 걸출한 작품을 실제로 보아도 그가 원래 있던 자리에서 혼자 똑 떨어져 나온 듯한 느낌을 받아서인지 생각보다 깊은 감명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작품에 담긴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 당시의 시대 상황, 작품이 만들어진 문화적 배경 등 표면만 슬쩍 읽어서야 알기 어려운 정보를 알려주는 이런 종류의 책을 흥미롭게 읽곤 했다. 작품의 물성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고작 자그마한 책에 갇혀 있을 뿐이지만, 이 작품들이 나에게 주는 감명은 보다 크기 때문이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일을 시간순으로 서술해 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진부한 말이겠지만 우리 이전의 사람들이 어떤 사고를 기반으로 어떻게 생활했는지, 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것은 현재를 이해하는 시작점이다.

 

그러나 그림에는 특정한 순간만을 담을 수밖에 없다. 대신 그 표면 너머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은 후 다시 그림을 보면 그저 평면적이었던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처음 만나는 7일의 미술 수업』은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이탈리아의 유수한 작품을 여럿 소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17세기의 바로크 화가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책에서는 젠틸레스키와 카라바조의 ‘유디트’ 그림을 비교해 살펴보고 있다. 유디트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로 만취한 아시리아의 장수 홀로페르네스가 방심한 틈을 타 그의 목을 벤 인물이다. 유디트의 이야기는 예술가들에게 다양한 영감을 주어 젠틸레스키와 카라바조 외에도 구스타프 클림트 또한 유디트 이야기를 그린 인물 중 하나로 잘 알려져 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1593-1653)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활동한 작가로, 당시 활발한 작업 활동으로 명성을 떨쳤던 인물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여성 화가들의 이름이 빠져 있었던 미술사의 흐름 아래 한참을 묻혀 있던 젠틸레스키는 1971년 린다 노클린이 발표한 「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는 없었는가?」에 의해 다시 그의 이름을 빛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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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캔버스에 유화, 195x145cm, 로마 국립고전회화관

 

 

완전히 속아버린 홀로페르네스의 목에서는 피가 솟구쳐 나온다. 그러나 유디트는 이 자의 피가 자신에게 한 방울이라도 튀는 걸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몸을 멀리 빼고 있어서인지 신기하게도 그에게는 붉은 자국이 전혀 없다. 거기에 한껏 찌푸린 미간에서는 이 상황에 대한 역겨움과 동시에 망설임 또한 느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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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캔버스에 유화, 199x162.5cm, 1620,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이에 반해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의 머리채를 꾹 부여잡고 자신에게 튀는 피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그의 옆에 있는 하녀 또한 카라바조의 인물 표현과는 상반된다. 카라바조가 그린 하녀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담아갈 보자기를 든 채 유딧을 지켜보기만 할 뿐 별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젠틸레스키는 하녀 또한 홀로페르네스를 처단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모습으로 그려낸다.

 

이러한 젠틸레스키의 작품은 어릴 적 스승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그의 개인사에 따라 해석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남성 화가들이 표현한 여성 이미지에 반해 잔뜩 힘이 들어간 팔뚝, 잔혹한 행위를 하고 있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 굳건한 표정 등 강렬한 이미지가 돋보인다는 것이다. 즉 이를 어릴 적 사건이 남긴 트라우마의 표현으로 본다.

 

이러한 해석은 그의 이름을 미술사로 편입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카라바조와 유사한 화풍으로 그린 몇 작품만을 두고 ‘개인적 트라우마에 기인한 강인한 여성 이미지’로 해석하는 것은 그가 표현한 수많은 여성 이미지를 단일한 해석에 가두는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때문에 최근에는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은 여성 화가로서 그를 바라보기보다는, 당시 시대적 영향 아래 읽어내거나 동시대 화가들의 작품과 연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젠틸레스키는 유디트를 할 일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해 내는 인물로 인식하는, 남성의 판타지에서 벗어난 현실적 시선을 지닌 뛰어난 화가였을 뿐일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젠틸레스키가 살았던 때는 여성 화가가 드물었던 시기였던 데다, 그가 그리는 장르 또한 주로 남성 화가의 영역으로 여겨진 역사화나 종교화였다. 그러니 그가 보편화된 여성 이미지에서 벗어나 이를 타파하는 여성상을 그린 데에 자신의 상황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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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은 언제나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요구한다. 당연히 사람들 사이에서 다수의 공감을 얻는 보편적 해석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게 새로운 사고를 촉발하는 데 방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마치 수업을 듣고 복습하듯, 책이 들려준 작품에 관한 역사, 문화, 철학, 신화,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아무것도 모른 채 슬쩍 보았던 그림이 지금은 어떻게 다르게 보이는지, 또 나라면 이를 어떻게 해석했을지 한번 고민해 보길 바란다.

 

 

참고자료

이수진.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의 작품에 나타난 여성 이미지의 특성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2020. 서

 

 

[유소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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