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모든 프란시스에게 응원을 보내며 [영화]

성공한 우리 언니, 그레타 거윅
글 입력 2023.10.12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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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나는 혼자 뉴욕 여행 중이었다.

 

미국에서 8개월 동안의 교환학생 기간이 끝나 귀국하기 전. 친구들은 방학을 맞아 각자의 도시로 돌아갔고, 나는 체류 비자 기간이 남아 동부 도시를 여행했다. 할 것도 볼 것도 많은 뉴욕이지만 딱히 가고 싶은 곳도 먹고 싶은 음식도 없었다. 맨해튼을 아무 계획 없이 돌아다니며 동네 작은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갤러리를 구경하고, 공원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여행 내내 한국에 돌아가면 마주할 현실적인 고민이 불쑥불쑥 솟아났다. 졸업 전 마지막 학기가 남아있었다. 사서가 꿈이었고 문헌정보학을 공부했지만 더 이상 사서가 되고 싶지 않은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다들 치열한 일상을 살아가는 뉴욕에서 목적 없이 돌아다니는 여행자, 이 도시에서뿐만이 아닌 인생에서도 방향과 목적지를 모르는 여행자였다.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도시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지금처럼. 다들 20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기라고 말하지만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했다.

 

날씨가 흐려서 기분까지 우중충했던 날. 거리를 걷다 보니 사람들이 영화관 앞에서 줄을 서있었다. 비도 올 것 같고 우산도 없는데 영화나 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표를 끊었다. 제목과 포스터만 봐서는 무슨 영화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상영 시간이 되어 사람들과 함께 차례로 영화관으로 입장했다.

 

영화 <프란시스 하>와 사랑에 빠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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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하>는 감독 노아 바움백(Noah Baumbach)과 주인공 프란시스를 연기한 그레타 거윅(Greta Gerwig)이 함께 각본을 썼다. 2012년 9월 미국 텔루라이드 영화제에 공개되어 2013년 5월 17일 IFC 영화관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 위치. 주로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아트하우스 영화관. 2005 개관)에서 정식 상영되었다. 내가 영화를 본 날은 뉴욕 개봉 바로 다음날이었다. 한국에는 2014년 7월에 개봉되었다.

 

그레타 거윅은 주로 멈블코어(Mumblecore) 영화에 출현하여 미국 인디 영화신에서는 이미 유명한 배우였다. 멈블코어는 줄거리보다는 인물들의 일상적인 대화에 집중하는 미국 인디 영화 서브 장르이다. <프란시스 하>도 멈블코어 영화 장르처럼 드라마틱한 줄거리가 없다. 

 

27살. 뉴욕에 사는 댄서. 언더스터디. 무대에 오를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뉴욕의 비싼 렌트비를 겨우 내며 산다. 연인과는 헤어지고, 소울메이트인 친구 소피는 이사를 가버린다. 어느 식사 자리에서 만난 커플이 파리에 아파트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동적으로 파리로 떠난다. 파리에서 만나줄 사람도 없고 시차 적응도 되지 않아 낮에는 내내 잠만 자다가 밤이 돼서야 슬그머니 나가보지만 상점들은 죄다 문을 닫았다.

 

혼자 무기력하게 뉴욕을 여행하고 있는 내 모습과 파리의 거리를 쓸쓸히 걷고 있는 프란시스와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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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 자리에서 누군가 프란시스에게 직업을 묻는다.

 

앤디: 그래서, 어떤 일을 하세요?

프란시스: 설명하기 좀 어려운데요.

앤디: 하는 일이 설명하기 좀 복잡해서요?

프란시스: 그 일을 실제로 하고 있지는 않거든요.

 

<프란시스 하> 영화는 모든 "지망생"에게 바치는 이야기이다. 

 

하고 싶은 예술이 있지만 재능도 없고 기회도 쉽게 주어지지 않는 상황. 가진 것 없는 청춘. 누구나 느낄 불안감과 외로움이 영화에 녹아난다. 영화를 만든 노아 바움백과 그레타 거윅 또한 뉴욕에서 예술을 하는 젊은 지망생이었다. 프란시스 캐릭터에는 그레타의 자전적 요소가 녹아있어 프란시스의 고향인 세크라멘토도 실제 그레타 거윅의 고향이고, 심지어 프란시스의 부모님까지 실제 그레타 거윅의 부모님이 연기했다.

 

국내 개봉 당시 영화 홍보 문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주변에서 영화를 본 친구들 모두 "저거 정말 나잖아!"라고 간증이 쏟아졌다.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화려하게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20대는 누구나 불안하고 막막하다.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 프란시스는 쓸데없이 자존심을 부리거나 못 말리게 엉성하지만 대책 없이 씩씩하고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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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 거윅은 <프란시스 하> 이 후 <미스트리스 아메리카>(2015), <매기스 플랜>(2015), <우리들의 20세기> (2016)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고 본격적으로 연출을 시작한 <레이디 버드>(2018)가 평단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시작해 <작은 아씨들>(2020)로 할리우드에서 감독으로 입지를 단단히 매겼다. 올해 개봉한 <바비>(2023) 흥행 수익 또한 어마하다. 배우에서 감독으로, 그녀는 계속해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프란시스 하> 개봉 후 10년이 지난 지금. 좌충우돌 가난한 예술가였던 프란시스는 성공한 배우이자 감독이 되었다. 연인 노아 바움백과 여전히 함께 작업하며 사랑스러운 아들까지 둘 생겼으니 일과 사랑 모두 쟁취한 성공한 인생이다.

 

최근 인터뷰에서 그녀는 40살이 된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이제 정말 중년이 되었어요! 인생의 모든 부분들이 아주 활동적인 기분이에요."

 

그녀가 자신만의 세계를 단단히 만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팬으로서 큰 기쁨이다. 아직 중년이라기에는 이른 30대 나는 <프란시스 하>를 처음 본 날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영화 속 프란시스같이 엉성하게 뚝딱거리면서 살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멋진 언니 그레타 거윅을 응원하면서, 나 또한 나만의 세계를 발견해가고 있다고 믿으며, 불안하고 흔들리지만 분주히 살아가는 프란시스인 우리 모두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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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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