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를 고민할 때 - 인사이드 윌리엄

‘내가 선택한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한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박수
글 입력 2023.09.28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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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연극 <햄릿>의 주인공 햄릿은 얽히고 설킨 원한과 정의에 대한 고민 속에서 ‘사느냐, 죽느냐’라는 물음을 되뇌인다. 하지만 햄릿이 이 두 가지 선택지가 아닌 ‘어떻게 사느냐’를 고민했다면 그의 비참한 최후는 달라질 수 있었을까?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은 어쩌면 <햄릿>의 장르를 뒤흔들 이러한 질문을 실제로 작품 안에서 녹여낸다. 이 작품을 통해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등 비참한 최후를 맞은 비극의 주인공들은 다시 무대로 소환되어 운명에 휩쓸린 삶이 아닌, ‘자신이 선택한 삶’을 고민할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조금씩 나아가는 이들을 더 이상 통제할 수 없어진 ‘셰익스피어’ 역시 작법서에 따른 ‘명작’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주변의 비난에 괴로워하는 조금은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정답’이라 인정되는 것들에 스스로를 맞추기 위해 계속해서 자신을 깎아내고 그 앞에 위축되는 나와 우리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우연히 찾아온 돌풍이 셰익스피어의 책상을 휩쓸고 간 그날, 뒤섞여버린 이야기 속에서 햄릿과 줄리엣은 주어진 운명이 아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자신들의 이름을 직접 정하기로 결심한다. 이처럼 우리 역시 주어진 배역과 장르가 내놓은 선택지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어떤 삶을 원하고 있는지 고민할 때, 우리만의 이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고민 끝에 어떤 이름을 선택하든, 혹은 어떤 이름도 선택하지 않든, 자신이 선택한 무대와 이야기 속에 선 모든 이들에게 이 작품처럼 따뜻한 박수 소리가 닿기를 바라본다.

 

 

[연극열전 2023]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 작품 포스터.jpg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를 고민할 때


 

우리에게 주어진 배역과 장르가 달라지는 지점, 즉 인생의 ‘변곡점’이라고 부를만한 지점에서 우리가 떠올릴 질문은 무엇일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햄릿은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서 고뇌했고,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 속 햄릿은 스스로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를 물었다. 


그러한 햄릿의 모습을 보면서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 속 구절이 생각났다.


"미성숙한 인간은 어떠한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지만 성숙한 인간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

 

물론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각기 다른 다양한 상황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인간의 성숙함 혹은 성장 뒤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포착하는 넓은 시야가 포함됨을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삶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때로 너무 적은 선택지 앞에 좌절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장르와 배역이 변할 수 있다는 것, 심지어 그것을 우리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한 삶의 ‘정답’ 혹은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인생 주기를 따라야만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우리 사회 속 여러 장치들은 삶의 다양한 선택과 가능성을 더욱 가리기도 한다.


이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비극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오직 죽고 죽이는 복수의 길만을 걸어야 했던 햄릿이나, 가문을 빛낼 ‘베로나 최고의 신붓감’이 되어야 했던 줄리엣처럼 말이다. 만약 그들에게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생각할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주어졌다면, 그들은 어떤 삶을 선택했을까?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은 ‘파라다이스’라는 공간을 통해 이들에게 그러한 기회를 제공한다. 작품 속에서 ‘파라다이스’는 <햄릿>의 배경이 되는 덴마크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되는 베로나도 아닌, 모든 인물들이 주어진 배역이나 장르의 제한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가상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햄릿은 과거를 곱씹기보다 현재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다른 삶의 방식을 떠올렸고, 줄리엣은 자신이 ‘좋아할 지도 모르는 것’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자신의 미래를 고민했다. 로미오도 자신이 진정으로 되고 싶은 ‘주인공’에 대한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이들은 불확실한 미래에도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그렇게 그들은 파라다이스를 벗어나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이야기를 써나가기 위해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주어진 장르와 배역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스스로 선택한 자리로 돌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굳이 결말을 생각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즐거워 보였다.


현실 세계에서는 이러한 파라다이스에 닿는 것조차 어려울뿐더러 이러한 기회를 얻었다 해도 영원히 파라다이스에만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너무 불안하고 힘들더라도 자신이 좋아할지도 모를 일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자신이 어떤 이름 안에서 살아가고 싶은지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때, 삶의 더 많은 가능성과 선택지를 볼 수 있는 시야를 넓힐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작품 속 ‘파라다이스’와 같은 기회를 자신에게 조금은 더 허락할 수 있기를, 또 그러한 시간들에 조금 더 응원과 지지를 보낼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본다. 그래서 삶에서 마주하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그럼에도 자신이 지닌, 자신의 삶이 지닌 다양한 가능성에 귀 기울이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이 발휘한 상상력은 이처럼 우리 모두의 인생에 어쩌면 수많은 가능성을 품은 여러 갈래의 선택이 가능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따뜻하고 사랑스럽다. 작품 속에서처럼 우리가 쓰기로 결심한 자신만의 이야기가 비록 스포트라이트 밖으로 벗어나는 것일지라도, 자신의 무대 위에서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걷는 모두는 따뜻한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

 

이들의 결말을 섣불리 상상하고 판단하기보다는 바로 지금 이들이 서 있는 무대에 웅원과 박수를 보낼 수 있기를 바라며, 작품의 프로그램북 속 연출의 말 일부를 놓아둔다.

 

 

"위대한 셰익스피어도 관객 앞에선 자신의 연극을 완벽하다 자신할 수 없었다.

그토록 반복하고 연습하고 또 고쳐서 올린 연극도 완벽하다 자신할 수 없는데

연습 없는 우리의 삶이란 무대는 얼마나 불완전한 순간들의 연속인가?

우리가 알 수 있는 결말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

작가의 비어있는 페이지처럼 모든 순간은 미정이고 알 수 없다.

그 다음 이야기가 비극일지 희극일지 우린 연습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린 용기를 내야 한다. 뻔뻔하게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끼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라고 다음은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작품이 그런 평범한 주인공들을 위한 응원이고 박수가 되었으면 좋겠다.

모든 주인공들에겐 위로와 박수가 필요하니까.

그렇다면 좀 더 나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갈 수 있을 테니까.“

 

 

 

 

김효중 컬쳐리스트 태그.jpg

 

 

[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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