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로 쓰여진 삶,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

글 입력 2023.09.28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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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다.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은 이 문장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다.

 

뮤지컬은 명작을 써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셰익스피어로부터 비롯된다. 쓰는 희곡마다 비슷비슷하고 깊이가 없다는 조롱에 셰익스피어는 몇백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명작을 써서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렇게 써 내려 간 글이 아버지의 복수를 꿈꾸는 햄릿과 이어질 수 없는 가문의 로맨스,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자꾸만 막히는 글을 억지로 써 내려 가던 중 고장 나 환히 열린 창문에서 엄청난 바람이 분다. 종이가 날아가 희곡과 습작, 소네트가 섞인다. 희곡이 뒤섞이면서 극의 캐릭터인 줄리엣, 로미오, 햄릿의 캐릭터성과 서사도 섞여버린다. 캐릭터들은 혼란을 겪는다.

 

희곡이 섞이기 전 햄릿은 아버지 유령을 만난다. 아버지는 숙부가 그를 죽였으며 아내를 왕비로 맞이하였으니 복수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젠 오로지 복수뿐이라고 다짐하던 햄릿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희곡 속에서 복수보다 사랑하는 것을 찾게 된다. 로미오가 줄리엣에게 바치는 문장의 아름다워 그의 차가운 마음을 녹인다. 오직 복수만을 위해 달려가던 햄릿은 멈춰서 고민한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느냐이다. 복수에 눈이 멀었던 햄릿은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지 고찰하며 작가가 원하는 글의 흐름을 벗어난다.

 

로미오와 사랑에 빠졌던 줄리엣은 희곡이 섞인 후 자신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알게 된다. ‘결혼하여 행복하게 산다.’라는 결말이 줄리엣에게는 허무하고 충격적이다. 로미오가 싫은 게 아니다. 아버지가 원하는 상대인 파리스나 줄리엣과 진심으로 우정을 나눈 햄릿이어도 똑같다. 줄리엣은 자신의 이름 앞에 누군가의 이름이 붙어있는 게 아니라, 그냥 줄리엣으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로미오와 줄리엣, 파리스와 줄리엣, 햄릿과 줄리엣이 아니라 그냥, 나, 그냥 줄리엣.

 

줄리엣은 햄릿의 제안으로 정말 좋아하는 것, 좋아할 수도 있는 것을 찾아 나선다. 독서, 일기, 요리, 수놓기는 늘 하던 것이지만 좋아하던 건 아니다. 줄리엣은 햄릿의 검을 휘두르다가 어릴 적 사촌 티볼트 옆에서 검술을 배웠던 기억을 떠올린다. 아버지의 반대로 관두었던 검술이 그의 심장을 뛰게 한다.

 

한편 이야기 밖의 셰익스피어는 주인공의 변화가 달갑지 않다. 그를 조롱하는 사람들은 ‘검을 든 여자는 매력이 없다’, ‘우울한 복수자는 인기가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글을 명작의 반열에 올려두기 위해 캐릭터들을 직접 만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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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윌리엄”을 보면 부모와 자식 간의 이야기가 자꾸 눈에 보인다.


줄리엣이 검술을 관둔 이유는 아버지의 반대 때문이었다. 여자가 무슨 검을 배우냐는 편협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다. 햄릿이 복수를 꿈꾸던 이유는 아버지의 부탁 때문이다. 복수 외엔 생각할 수 없던 그는 자신이 정말 원하던 게 무엇인지 찾지 못한다. 그런 줄리엣과 햄릿이 작가 셰익스피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찾아 나가는 모습은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자식을 떠올리게 한다. 

 

셰익스피어도 마찬가지다. 줄리엣과 햄릿에게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이름도 없는 하인2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고 협박하지만 둘은 듣지 않는다. 잘못 쓰인 이야기, 아무도 읽지 않는 이야기여도 내가 걸어간 이야기라면 그것으로 괜찮다고. 그러니 사람들에게 잊히는 쪽을 택하겠다고.

 

캐릭터의 말은 작가도 감동하게 한다. 그동안 셰익스피어가 정말로 쓰고 싶었던 글은 조금 우울하고 비극적이고 여자가 칼을 들고 복수자가 복수를 망설이는 이야기였다. 남이 쓰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셰익스피어는 처음으로 독립한다.

 

“사실 좀 두려워. 앞으로는 내 이야기를 써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이 말은 작가를 벗어난 캐릭터가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이면서 처음으로 자립한 20대 관객들에게 건네는 이야기 같다. 내내 부모와 선생님, 사회가 시키는 대로 따라가던 아이들은 반드시 방황하는 시기가 있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사는 게 좋을지 고민하는 순간들. 그때 다른 누군가가 이런 삶을 살라고 권유하거나 명령할 수 있지만 선택자는 나뿐이다. 내가 되기 위해선 기존의 세계를 깨뜨리고 나아가야 한다.

 

난 부모가, 사회가 정해준 삶이 좋은데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로미오를 보면 된다. 나로 있고 싶어 잊히길 선택한 줄리엣과 햄릿과 달리 로미오는 모든 사람에게 기억되길 바란다. 끝까지 작가의 손에 쓰여서 찬가를 받고 싶다. 작가는 로미오가 바라는 것을 들어준다. 그렇게 “인사이드 윌리엄”은 누구의 꿈도 소외되지 않고 이루어진다.

 

아무도 정해주지 않는 삶을 사는 건 두려운 일이고 엉망으로 뒤섞인 것 같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나아간 모든 이야기가 소중하다. 명작을 써야겠다는 강박 없이 내가 진정으로 쓰고 싶은 걸 썼을 때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는 그의 생각과 달리 수백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변형되며 기억된다.

 

 

[연극열전 2023]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 캐스트 모음집.jpg

 

 

“인사이드 윌리엄”이 즐거운 이유는 어쩌면 진부할 수도 있는 이런 주제를 설명조로 늘어놓지 않기 때문이다. 장난스럽고 유쾌하다. 그러면서도 불편한 웃음이 없다. 가볍게 웃으며 지나가다 보면 가슴을 뭉근하게 만든다. 

 

가슴이 벅차오르도록 행복하다가도 뻔뻔하게 웃긴 로미오의 연기와 악단들까지 소재로 쓰는 셰익스피어의 우스갯소리에 그저 즐거움만 남는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 난다더니 과연 일어나서 보니 의자에 구멍이 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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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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