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욕망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나의 선택 -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

글 입력 2023.09.28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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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명작을 쓰고 싶다. 자신의 작품에 달린 부정적인 리뷰에 의기소침해진 그는 ‘작법서’를 충실히 따르며 <햄릿>과 <로미오와 줄리엣>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돌풍으로 두 작품의 원고가 뒤섞이게 되고, 작품 속 주인공인 햄릿, 로미오, 줄리엣은 뒤섞인 스토리 안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생소한 자신의 모습에 당황한다. 복수만을 위해 달려온 햄릿은 문학적인 시구가 떠오르면서 낭만을 찾고, 사랑만을 외치던 요조숙녀 줄리엣은 갑갑한 집에서 벗어나 칼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자아’를 갖게 된 주인공들은 이제 자신들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 자유를 갈망하는데…

 

 

아래 글은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연극열전 2023]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 작품 포스터.jpg

 

 

인간의 자유의지는 수많은 작품에서 다뤄져 온 단골 소재다.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나 <더블유>처럼 픽션 작품 속 인물이 자아를 갖게 되면서 자유를 갈망하는 설정은 이런 소재를 다루기에 특히 적합한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도 비슷한 설정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대표 비극 <햄릿>과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틀어 본다.

 

장르가 전혀 다른 두 작품의 이야기가 뒤섞이면서 작품 속 인물들은 그제야 다른 형태의 삶도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복수극 속의 햄릿은 로맨스와 낭만의 세계를 알게 되고, 로맨스극 속의 줄리엣은 사랑 외의 세계를 알게 된다.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경험한 이들은 드디어 스스로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물어보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극 중 자유의지를 갖게 된 인물들이 같은 상황을 겪어도 선택하는 것이 다르다는 지점이다. 햄릿과 줄리엣이 자신에게 주어진 주인공의 운명을 거부하고 작은 선택이라도 스스로의 의지로 결정할 수 있는 소박한 인생을 선택하는 반면, 로미오는 자유롭지 못하더라도 주목받는 주인공의 삶을 선택한다. 로미오는 얼핏 자유의지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그의 삶 역시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덜 자유롭기로 선택할 자유도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작가 윌리엄의 이야기도 있다. 본인이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음에도 세상의 부정적인 평가가 두려워 작법서를 따라 글을 썼던 윌리엄 역시 자아가 없던 햄릿, 줄리엣, 로미오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던 셈이다. 그는 작법서대로 햄릿이 복수에 성공하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결혼하여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다는 작품을 쓰려고 했지만, 햄릿과 줄리엣이 자유를 선택한 것을 지켜보며 자신의 신조대로 비극을 완성한다. 남들이 옳다고 말하는 것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윌리엄은 햄릿과 줄리엣을 통해 깨달은 것이다. 

 

주인공의 삶을 포기하고 엑스트라가 되면 자유로워지는 대신 삶이 한층 무료해진다는 설정도 흥미로웠다. 햄릿과 줄리엣이 잠시 원하는 대로 살아보는 동안 쓰여진 이야기는 너무 평범하다 못해 본인들조차 무슨 이야기였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단조롭다. 하지만 그 삶 속에서 반짝이는 순간들은 나의 선택과 자유로 만들어낸 것들이라 적어도 나에겐 소중하고 값지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별 볼 일 없는 삶일지라도 내가 긍정할 수 있는 삶이라면 행복할 수 있다.

  

작가 윌리엄이 맨 처음 써 내려간 이야기는 작법서를 충실히 따른 이야기였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보편의 가치관을 충실히 따르는 삶에 대한 은유라고 볼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번듯한 직장에 취직해서 괜찮은 사람과 결혼하여 아이 낳고 사는 삶. 하지만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묻게 된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지.

 

<인사이드 윌리엄>을 보고 난 후 관객들도 다시금 한 번씩 생각해 보게 되지 않을까. 햄릿과 줄리엣처럼 남들이 옳다고 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소박한 삶을 살고 싶은지. 혹은 로미오처럼 모두가 선망하고 긍정하는 삶을 사는 것이 곧 나의 행복일지. 정답은 없다. 욕망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오직 나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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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로서도 <인사이드 윌리엄>은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우선 좋은 넘버들이 귀를 사로잡는다. 특히 첫 넘버인 ‘그런 작품, 명작’은 마지막에 다시 반복되면서 윌리엄이 정의하는 ‘명작’의 정의가 사뭇 달라졌음을 적절히 보여주면서도 음악적으로도 수미상관을 이룬다. 9월 24일 오후 2시 캐스팅이었던 김아영, 임준혁, 김수연, 유태율 배우의 호연도 돋보인다. 능수능란한 애드리브와 천연덕스러운 연기, 탄탄한 발성까지 갖춘 배우들이 굉장한 시너지와 에너지를 발산하며 신나게 무대를 누빈다. 극에 활력을 더하는 스칼렛, 요한, 순(!)의 피아노와 현악기 라이브 연주도 빼놓을 수 없는 묘미다.

 

흥미로운 소재와 명랑한 이야기, 타율이 좋은 유머와 시너지 넘치는 캐스트의 호연이 버무러진 좋은 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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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연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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