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 의사의 이야기 - 3분 진료 공장의 세계

글 입력 2023.09.27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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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 그런 의사가 다 있어? 사람 살리는 직업 아냐? 근데 그렇게 대해도 돼?"


친구가 암에 걸려 대형 병원에서 진료받은 뒤, 불친절한 의료진을 만났다는 이야기에 나는 벌컥 화를 냈다. 물론, 우리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친절하고 상냥한, 인류애가 넘치다 못해 환자 개개인에게 깊은 관심을 쏟는 의사를 기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긴 대기 시간을 지나고 만나는 의사인데 그는 모니터 속에 있는 차트, 기록, 사진 한 번씩 넘겨보다가 뻔한 말을 건네고 진료를 끝낸다. 차가운 말투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이것저것 궁금한 환자가 작은 질문조차 건네기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알고 있다. 그게 현실인걸. 넘쳐나는 환자들의 수를 감당하지 못하고, 의사도 사람인지라 시간은 한정적이고, 그도 바쁘다는 것을 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아마, 나 같은 불평을 가진 사람들도 대부분 알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그런데, 왜인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왜 때문인지,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 나는 의사의 이야기를 들을 통로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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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진료 공장의 세계>는 저자가 의사로 살아가며 느낀 점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풀어놓은 이야기이다.


'왜' 그 의사가 그랬는지 조금 더 넓은 시야에서 이해를 시도해 볼 수 있다. 내가 만난 의사가 아니더라도, 그 의사도 이 의사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던 것은 아닐지 하고 조금 더 이해해 볼 수 있다. <3분 진료 공장의 세계>는 한 명의 의사의 이야기이지만, 병원이라는 공간과 체계 안에서 만나는 의사와 환자 사이, 작은 다리가 되어주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런지 제1장은 굉장히 솔직하다. '3분 진료를 위한 변명'에는 정말 변명밖에 없다. 그럴 수밖에 없던 의사의 사정을 설명하고, 작가가 의사로서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말한다. 독자가 그 변명을 무리하게 이해해 주고 포용해 줄 필요는 없고, 저작 역시 그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저 김선영 의사가 놓였던 상황들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책 속에 따뜻한 의사의 마음이 숨어있다. 대형 병원에 쏠림 현상이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과 환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동시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조치가 필요한지 깊이 고민한 의사의 고뇌가 담겨있다.

 

불안한 환자들의 마음은 이해하되, 거주지와 가까운 병원에 내원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이를 현명하게 활용하는 방법들이 적혀있다. 수많은 암 환자들을 면담하였던 의사가 환자들의 건강과 더 나은 투병 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을 제안한다.

 

이 따뜻한 솔직함 속에서 우리는 의사와의 관계에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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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컷(!)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병원이라는 진료 공장이 때로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임상 시험에 참여할 수 있는 환자를 빠르게 찾아낼 수 있다는 점, 고도화된 분업화로 의학 분야 내 전문성 증진 등이 그렇다.

 

저자는 이렇게 뜻밖의 장점을 찾아내면서 그렇기 때문에 환자들이 대형 병원을 어떻게 '잘' 활용해야 하는지도 제안한다. 제2장 '3분을 위한 팁'은 불편함과 불친절함 속에서도 다양한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대형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는 암 환자들을 위한 팁을 공개한다.


제3장에서는 짧은 3분 사이에 환자들과 소통하였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이다. 그중에서도 '나쁜 소식 전하기'에서는 학생들이 환자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는 연습 내용이 나온다. 환자와 면담할 때 '어떻게' 암 판정 소식을 전하는지 연습하는 것이다.

 

암 환자를 연기하는 연기자에게 면담 실습을 하는 연습이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아픈 학생들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가 실제로 나쁜 소식을 전할 때에도 같은 마음이 들 때가 있는 듯하다. 의사가 될 학생도, 그리고 의사인 저자도 사람이니까 말이다. 그 속사정은 아무도 모르는데, 3분이라는 짧은 시간으로 환자를 마주하고 다음 환자를 또 마주해야 한다.


속사정은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우리가 만났던 의사, 언젠가 만날지도 모르는 의사가 어떤 마음인지 아마 정확히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할 것이다. 의사도 환자의 마음이 정확히 어떤지는 절대 모를 것이다. 3분 사이에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다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3분의 만남을 위해 준비를 갖추고 기다린다.


어쩔 수 없다는 상황 속에서 조금이라도 서로 이해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이 책에 담겨있다. <3분 진료 공장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한다면, 의사의 상황과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된다면 조금 더 효율적으로 의사를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된다.

 

 

[이홍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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