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자유를 향한 갈망과 의심 - 밀정리스트 [공연]

글 입력 2023.09.25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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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항일운동을 다룬 다양한 영화가 있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최동훈 감독의 <암살>이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입체적인 캐릭터로 써 내려간 흥미진진한 스토리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영화에서는 돈독한 전우애가 있는 한편, 같은 편을 배반하는 캐릭터도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를 필사적으로 지킨 영웅들이 흘린 피, 그 쓰라림만큼 보기 고통스러운 사람들의 민낯이 독립운동 이면에 있다. 그들은 '밀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연극 <밀정리스트>는 ‘밀정’을 소재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절묘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충옥, 경식, 명순, 화진, 태규, 설진이라는 인물이 함께 의열단을 조직해 항일운동을 전개하는데, 그중 거사가 예상했던 방향과는 다르게 이루어지자, 서로를 의심하며 조직 내 밀정을 색출해 내려 한다.

 

 

밀정리스트8.jpg

 

 

과거 고증이 잘 되어 몰입하기에 충분했던 배우들의 연기, 소품, 의상, 무대 연출. 그리고 조명의 움직임과 공연장을 가득 메우던 효과음까지. 무대를 위해 준비된 모든 것들이 연극 <밀정리스트>의 편이었다.

 

 

 

“의심이 분열을 만든다. 심증만으로 의심하는 것, 그게 분열이야.”


 

극 중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서로를 끝없이 의심하고 믿지 못하자, 자유라는 하나의 목적으로 모인 이 단체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 연극은 고도의 심리극이자 의심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최근 화제를 모은 TV 프로그램이 있다. 싱글 남녀를 모아 4박 5일간의 합숙을 통해 커플이 되도록 돕는 <나는 솔로>다. 16기에는 돌싱 특집으로, 아픈 과거를 겪은 사람들이 새로운 사랑을 그려나가려 한곳에 모였다.

 

하지만 의심으로부터 시작되어 다른 출연자들의 마음을 멋대로 정의하고 와전시킨 말이 오해로 끝없이 번지는 안타까운 상황이 내내 이어진다.

 

<밀정리스트>에서는 비밀이 많은 이유, 그리고 숨은 의도를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이유가 상황이 중대해 신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극 내의 캐릭터들, 그리고 그 시절 독립운동을 진행했던 사람들은 생사가 걸린 문제, 그리고 조국의 미래가 걸린 상황에 놓였기에 누구보다 ‘자유’가 간절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 프로그램의 출연자들도 아픈 과거를 딛고 용기 내 나선 자리일 테니 그만큼 간절한 마음에 불안함과 의심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 아닐까.

 

이런 맥락에서 ‘자유’에 대한 갈망, 그리고 ‘의심’하는 양상이 일제 강점기 때와 현대사회에 긴밀한 공통점으로 이어진다.

 

 

 

다른 방식으로 이루고자 했던 자유


 

모든 주인공이 자유를 바랐지만, 같은 방식으로 자유를 바란 것은 아니다.

 

연극을 보는 내내 명순과 충옥의 서사가 유독 가슴에 와닿았다. 두사람은 혈연이다. 충옥이 명순에게 어머니가 꾼 꿈 이야기를 들려주며 명순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고 얘기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다.

 

결론적으로, 충옥이 알아 온 거사와 밀회 장소에 대한 정보를, 명순이 일본 측에 전달하고 있었던 것이 암묵적으로 드러난다. 극이 절정으로 치달을 수록, 의열단원들이 서로에게 겨누던 불신의 총구가 명순에게로 향하고, 명순은 위기의식을 느껴 다른 의열단원들을 모두 사살한다.

 

그렇게 남은 충옥과 명순. 긴장감이 넘치는 상황 속 나눈 대화들은, 분명히 다르지만 같은 결을 보였다. 충옥은 조선이 독립하는 방식으로 조국과 명순을 구원하려 했으나 명순은 그 반대의 길을 걸음으로써 충옥을 이 혼란 속에서 안전하게 구원하려 했다.

 

극이 끝난 후에는 엔딩크레딧처럼 수많은 이의 이름이 무대 벽면에 비춰져 올라갔다.

 

‘밀정’이라는 그늘 뒤에 숨은 그들의 의도가 몹시 궁금해진다. 과연 진정으로 누군가를 구원하려는 노력에서 기원한 행동이었을까? 그렇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했던 무수한 이름들의 이기적인 선택을 규탄한다.

 

 

밀정리스트7 단체.jpg

 

 

결국 무대엔 의기투합했던 의열단 모두가 쓰러져 있고 오롯이 충옥만이 남는다. 부디 그에게 필연으로 찾아올 대한 독립이라는 자유가, 명순과 의열단원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만들어 주길 바란다.

 

 

[박정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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