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을거야

피곤하다.
글 입력 2023.09.2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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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일은 글 쓰기, 회의하기, 계획 세우기이다. 통 틀어서 '기획'이라고 할 수 있겠다.

 

좋은 말이어서 기획이지, 내 일의 수준은 '뜬 구름 잡기' 정도다. 어디 가서 나의 결과물이 '기획'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 말한다면, 이 세상 모든 기획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야, 이게 기획이냐? 너무 직접적인 비난은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주의해주시길.


갑자기 왜 자학을 하는가 하면, 이제껏 써 왔던 글들과 제안서들, 그리고 분야에 관계 없이 다양하게 만들어 온 '기획안'들을 훑어봤기 때문이다. 이쪽으로 진로를 정하고 나서 그간 얼마나 많은 일을 했고, 어떠한 성과를 얻었는지를 돌아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근데 괜히 본 것 같다. 실패가 가득한 초토화의 현장이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한다. 그런데 나의 실패는 과연 성공을 낳는 거위가 되었는가?


기획 일이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좋아만 하던 것을 만들어 보고도 싶었고, 책임감 있게 일을 이끌어 나가는 능력을 갖고 싶기도 했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이 재미 있기도 했다.


그런데,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그리도 어려울 줄은 몰랐다. 실천까지는 어찌 저찌 하더라도 결과물이 마음에 쏙 든 적은 얼마 없었다. 하면서 '와, 이건 됐다.'싶었던 것들도 끝에 가면 그다지 멋있지 않았다. 그렇게 꾸역 꾸역 대학 4년을 버텼다. 일이 좋았다기보단, 그 주변 언저리에서 얻는 노하우나 지식들이 좋아서. 일이 좋았다기 보단, 사람들이 좋았어서.


그래도 요즘엔 칭찬도 꽤나 받았었다. 실력이 늘었나보다. 어떤 실력이냐, 업무 실행 능력 또는 대인 관계 능력 정도가 되지 않을까. 아직 기획력이 늘었다고 말하기엔 내 줏대가 갈대와 다를 바가 없다. 줏대 없이 수정하기. 이건 진짜 자신있다. 피드백 받고 컨셉 수정하기, 옆 사람 의견이 좋아 보이면 적극적으로 동조하기, 나오는 의견마다 끄덕이기 등등도 자신있는 업무 영역에 포함하고 싶다. 아마 나와 일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아주 편할 것이다. 본인이 원하는 대로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으니.


아무튼. 앞으로는 그저 그런 칭찬만이 아니라, 인정도 받고 싶다. 응원은 지긋지긋하리만치 숱하게 받았다. 응원에 보답이랄 것은 없지만, 그래도 방구석에 갇혀있는 모양새는 피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한심하단 눈초리는 받고 싶지 않다. 누가 봐도 멋있다고 말하는, 자랑할 만한 성과랄 것을 보여주고 싶다.

 

*



지금까지 했던 여러 분야에의 탐구, 그리고 성공할 것이라고 했지만 실패로 이어졌던 '안'들을 돌아 보면서 한 생각들이다. 성과를 얻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고 나니 조금 불편해졌다. 세상 그 어디보다도 편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우리 방이 왜인지 조금 낯설다.


얻은 것들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념하거나 추억할 만한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좀 얻었다. 그치만 그 외엔 뭐 없다. 졸업을 앞두고 있다 보니 별 생각이 다 든다.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해도 잠이 솔솔 오던 내 침대가 이젠 날 재워주지 않는다. 되려 복잡한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베개에 머리를 파 묻어도 시야는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하다.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을거야.

 

자이언티의 '꺼내 먹어요'라는 노래의 가사 중 일부다. 따라부르면서도 이해하지 못했던 가사였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공감이 된다. 이런 기분이었을까. 잠들고 싶은데 잠들지 못하는 기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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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불면증 발병엔 성과주의 사회로부터 오는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이 글을 보는 여러분 요즘 잠은 제대로 주무시는가요, 잘 주무셨으면 좋겠습니다. 응원에 대한 보답, 계획의 성공, 문제의 해결, 누군가와의 화해 등등 '성과'로부터 벗어나서 단 잠 주무세요. 좋은 꿈 꾸시고요.


하고 싶은 말과 듣고 싶은 말이었다.




[유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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