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Dare, Folks - 윌리엄 클라인 사진전 [미술/전시]

글 입력 2023.09.2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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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한 대도 없다. 사진은 좋아한다. 카페 가는 것도 좋아한다. 이곳저곳 가다 보니 예쁜 곳은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이왕 하는 거 잘하면 더 좋겠다 싶어 사진을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장비 욕심도 생기더라. 카메라를 한 대 살까 싶었지만, 무거워서 잘 안 챙겨다닐 것 같아 포기했다. 대신 아이폰을 샀다. 원하는 화각을 구현하려고 아이폰 카메라용 렌즈까지 사버렸다.

 

그렇게 사진을 찍고 다닌 지도 2년이 넘었다. 문득 사진을 업으로 하는 사람은 어떤 사진을 찍나 궁금해졌다. 책이나 인스타그램으로 보는 것과 실물을 보는 건 다르기에 사진전을 가보기로 했다. 한눈에 봤을 때 이게 뭔지도 모르겠는 심오한 사진은 안된다. 봐도 모르니까. 내가 원하는, 내가 찍고자 하는 사진도 아니니까.

 

인터넷에서 열심히 찾아보다 발견한 게 윌리엄 클라인 사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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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음식이라도 만들 수 있게 여러 가지 재료를 아무렇게 늘어놓은 상태. 첫 구역의 작품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붓을 아무렇게나 휘두른 것 같은 그림이 사각형 틀 안에 갇혀 정갈하게 놓여있다. 전체적인 조화가 참 예뻤다. 그럼에도 뭘 그린 것인지, 뭘 말하고 싶은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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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체가 전부 흔들린 사진도 마찬가지다. 마치 실수로 팔에 쓸려 번진 물감 같은 사진이다. 어렴풋이 짐작만 가능하지 대상을 정확하게 알아볼 수가 없다. 그런 점이 더 좋았다. 명확하지 않고 두루뭉술한 것. 세상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것이 아닌, 뷰파인더로 본 윌리엄 클라인만의 세상이다. 현실은 내가 직접 보면 된다.

 

말 그대로 추상이었다. 구체적이고 명확하며, 명료한 것이 없다. 무엇을 담았는지. 무엇을 보여주려는 건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어느 하나 알 수가 없다. 처음 겪어보는 모호함과 불명이다. 어지럽고 혼란하다. 그만큼 다양하고 다채롭다. 혼돈을 거름 삼아 나의 것을 만들어 낼 때 추상에서 구체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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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하려는 세상과 세상이 부정하고 있는 것을 담은 사진이었다. 물감을 쭉 짜며 휘둘러 그어 놓은 듯한 엑스자는 ‘이게 아니야’라는 중의적인 대사를 읊조린다. 사진을 훑으며 지나가는 동안 나는 그것이 어디에서 어디로 향하는 부정인지를 생각한다.

 

시작과 끝이 맞물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림으로 시작해서 사진으로 끝난 그의 작품 세계의 교집합이다. 한 프레임에 인간군상을 담는다는 그의 사진에 그 계기가 됐던 그림이 더해진다. 자신만의 세계와 그 시대를 살던 모두의 세상이 겹쳐지는 순간을 바라본다.

 

인위적으로 만든 작위적인 풍경이 아닌 실제의 모습이기에 더욱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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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와 ‘저항’이라는 두 가지의 키워드가 윌리엄 클라인의 세계를 관통한다.

 

명확하지 않고 흔들린 피사체. 알아보기 힘든 형체. 원근법을 무시한 구도. 모든 것이 입을 모아 세상을 거부하겠다고 말한다. 정작 그렇게 담는 모든 것이 실제의 세상이라니. 그 사이의 모순 덕분에 거부라는 추상적인 것이 더 선명하게 와닿는다.


도발적인 순간을 포착하는 것에서 저항정신을 느낀다. 총을 겨누며 매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이. 익살스러운 표정과 각도로 찍힌 흑인. 악마와 수녀의 모습으로 키스하는 남녀. 이 발칙하고 앙큼한 순간의 집합이 말했다. 세상이 부정하는 것에 저항하겠다고. 휘갈긴 엑스가 어디 한 번 부정해보라고 일갈한다.

 

그 앞에 선 나는 어안이 벙벙해 침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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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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