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빛나던 이들이 다시 돌아온다 ② - '시스터즈'

글 입력 2023.09.14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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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빛나던 이들이 다시 돌아온다 ①'에서 이어집니다.

 

앞서 저고리시스터, 김시스터즈, 이시스터즈가 낯설었다면, 이제부터는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팀을 소개한다. 1970년대, 1980년대를 지나 오늘날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가 있던 팀들이다. 

 

 

 

세계를 홀린 카리스마, 코리안키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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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선보인 코리안키튼즈의 ‘What I’d Say‘ 무대 (1967)

 

 

김시스터즈가 미국에 진출해 한류 바람을 일으키고, 이시스터즈가 국내를 평정하던 1960년대, 개성 있는 수많은 걸그룹이 각자의 자리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코리안키튼즈도 이 시기에 활동하던 팀이다. 팀 이름은 생소할지라도 멤버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여러분’으로 유명한 윤복희가 있었던 그룹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그룹이 유명해진 다음 소속 멤버가 솔로로 독립하는 경우가 많은데, 코리안키튼즈의 경우는 반대였다. 5살 때부터 무대에 올랐던 그는 팀을 결성하기 전부터 미8군의 유명인사였다.


윤복희는 어릴 때 당대 미국 최고의 재즈 가수 루이 암스트롱과 합동 무대를 하고, 15살에는 ‘투스쿼럴스’라는 듀엣을 결성하기도 한다. 물론 오래 지나지 않아 팀은 해체되지만, 그는 쇼단에 남아 공연을 계속한다. 그러다 필리핀에서 장기 공연을 하며 서민선, 김미자, 이정자와 함께 결성한 팀이 코리안키튼즈다. 매니저도, 스타일리스트도 없던 시기 팀의 무대 콘셉트와 의상, 메이크업을 책임지는 것은 공연 경험이 풍부한 윤복희의 몫이었다. 청중을 열광시키는 법을 알았던 그는 필리핀, 홍콩, 영국, 미국 등에서의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아쉽게도 당시의 무대를 볼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다. 하지만 몇몇 영상은 살아남아 2010년대에 재발견되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대표적인 게 바로 베트남에서의 ‘What I’d Say‘ 무대다. 옆트임이 있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열정적인 춤사위로 공연에 임하는 모습은 윤복희를 솔로 가수로만 알고 있던 젊은 세대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 무대를 보고 나면 윤복희가 해외 공연을 마치고 4년 만에 귀국했을 때 어떻게 한국에 미니스커트 열풍을 일으켰는지 이해하게 된다.

 

 

 

깜찍하고 발랄한 쌍둥이 자매, 바니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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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니걸스의 앨범 <보고싶지도 않은가봐 / 말해 버렸네>(1973)

 

 

1960년대에서 70년대로 넘어가며 가요계는 다시 한번 큰 변화를 맞는다. 그동안 가수들의 등용문이나 다름없던 미8군 무대가 베트남 전쟁으로 축소되기 때문이다. 대신 일반 가정에 텔레비전이 보급되어 영상 매체의 영향력이 커진다. 가수들의 목소리는 이제 공연장과 라디오만이 아니라 다양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도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실력만큼 이미지도 중요해진 시대에 쌍둥이 자매로 구성된 팀이 인기를 끌었다. 1970년대를 주름잡은 바니걸스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탄생했다. 


10분 차이로 태어난 고재숙, 고정숙 쌍둥이 자매로 이루어진 바니걸스의 이야기는 <신중현SOUND> 1집부터 시작된다. 당시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였던 신중현은 1960년대 후반부터 음악프로듀서로도 활동하며 여러 히트곡을 내기 시작했는데, <신중현 SOUND>는 이른바 ‘신중현 사단’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시작한 컴필레이션 음반이었다. 이 음반에서 ‘우주여행’, ‘하필이면 그 사람’으로 참가한 바니걸스는 정식으로 데뷔한 후 TBC 7대가수상, 74년 MBC 10대가수상, KBS 가요대상 중창단 부문을 수상하며 1970년대 초중반 가요계를 휩쓴다. 


노래 실력을 갖추되, 음반마다 달라지는 의상과 콘셉트는 사람들이 바니걸스의 다음 음반을 궁금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이들은 1990년까지 무려 20년간 활동한 장수 걸그룹이기도 하다. 1960년대 미8군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가수들과 1990년대 곧 물밀 듯이 등장할 아이돌 가수들 사이에 바니걸스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유신정권 시대에 외래어 사용 금지 명령으로 팀명이 ‘토끼소녀’로 바뀌는 등 전해지는 일화도 많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의 추억 속에는 바니걸스라는 이름이 남아 있다.

 

 

 

성숙한 매력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은 희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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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자매의 첫 앨범 <실버들 / 우리는 사랑해요 / 아리랑 내님아 / 이제는 모두잊어요>(1978)

 

 

바니걸스가 10년 차 걸그룹에 접어들었을 1970년대 말, 또 새로운 걸그룹이 데뷔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니걸스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이들은 늘씬하고 큰 키에 빼어난 가창력을 가진 3인조 그룹, 희자매였다. 90년대 김완선을 키운 걸로 알려진 한백희가 섭외 단계부터 관여한 팀으로, 이영숙, 김재희, 김인순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 김인순은 훗날 ‘인순이’라 불리는 디바가 된다.


한백희 밑에서 철저한 트레이닝을 거친 희자매는 1978년 ‘실버들’로 데뷔해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이들의 성숙한 분위기가 다른 걸그룹과 차별화된다고 믿었던 한백희의 감이 적중한 것이다. 당시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를 의식해 혼혈이었던 인순이는 곱슬머리를 가리는 모자를 쓰고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특유의 시원한 가창력은 모자를 써도 숨겨지지 않았다. 이국적인 분위기와 허스키한 목소리로 인순이는 금세 희자매를 대표하는 멤버가 된다.


하지만 인순이가 희자매였던 기간은 1년 반 남짓이다. 이후 독립해 ‘인순이’라는 이름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고, 희자매는 새 멤버를 영입해 1986년까지 활동을 이어나간다. 인순이는 솔로 활동 당시 ‘인순이와 리듬터치’라는 이름으로 백댄서들과 팀을 이뤄 다녔는데, 이는 당시만 해도 흔치 않았던 행보다. 뿐만 아니라 원래 익숙하던 장르 외에도 재즈, 민요, 트로트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화했다. 2000년대를 지나면서는 조pd의 ‘친구여’에 피처링으로 참여하고, 카니발의 ‘거위의 꿈’을 리메이크하며 전 세대가 아는 디바로 입지를 굳힌다.

 

*

 

소개한 건 여섯 팀뿐이지만,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걸그룹을 찾아보면 이렇게나 뚜렷한 개성을 가진 많은 팀이 가요계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에 놀란다. 오늘날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걸그룹은 이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던 열정과 에너지를 이어받은 게 아닐까.


뮤지컬 <시스터즈>는 그 시대 열정 가득했던 이들의 무대를 다시 한번 현재로 불러오는 작품이다. 공연에서 저고리시스터의 이난영, 김시스터즈의 김숙자, 이시스터즈의 김명자(김희선), 코리안키튼즈의 윤복희, 바니걸스의 고재숙, 희자매의 인순이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시스터즈>는 11월 12일까지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계속된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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