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용으로 인간에게 손을 건네다 - 제26회 서울세계무용축제

예술과 기술의 합작이 불러온 '공감'
글 입력 2023.09.10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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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한국무용을 했었다.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 '한국무용', 그 이름에서 진하게 풍겨져 나오는 옛 것의 느낌 때문인지 내키지 않아 했다. 하지만 무용을 시작하고 전통의 미(美)를 하나둘 체화하면서, 우리나라 무용이 가진 곡선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었다.

 

무용은 여러 형태로 발전되었다. 전 세계의 각기 다른 문화는 다양한 종류와 형태의 무용을 만들어냈다. 인간의 감정을 얼굴과 몸으로 표현하는 무용 예술은 이렇게 발아한 것이다.

 

올해 열린 제26회 서울세계무용축제는 무용이 지닌 의미를 현대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보게 한다. 구어로 감정을 나누는 일이 없고, 작품의 주제나 창작자의 의도를 직접적으로 전달하지 않기에 무용을 읽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현대무용은 현대미술과 많은 점에서 닮았다. 가장 크게 공유하는 축은 아마도 감상자가 그 의미를 해석하는데 상당한 피로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형체는 모호하고 그 속에 담긴 의미란 더욱 난해하게 느껴진다.

 

이런 피로감에 휩싸인 나머지 감상자는 현대예술에는 애초에 담긴 의미가 없다고 받아들이는 게 더 편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Andy Warhol)은 자신의 작품 이면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어떤 것을 보면 무조건 의미를 만들어낸다. 의미에 집착하는 본능이 있다. 코리아타임즈의 한 기자는 인간을 '의미를 만들어내는 존재(Meaning-making being)'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그토록 의미에 집착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9일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열린 최수진의 Alone에서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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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진의 Alone은 음악과 그래픽 영상의 콜라보다. 하얀 조명이 비고 무대에 굵게 드리워진 'My Room', 어두운 음악과 함께 반복되는 물음 속에서 최수진 무용수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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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몸을 웅크렸다 폈다를 반복한다. 소제목 'My Room'에서 암시하듯 편안하면서도 가장 고독한 심연의 끝, 인간 내면을 드러낸다.

 

그녀의 가벼운 옷차림은 방 안에서의 '나'를, 옷이라는 관습에서 벗어나 인간 본연의 모습을 내포한다. My Room에서 Other Room으로 진행되면서 옷은 화려해지는데, 내면에서 외면으로 갈수록 관습은 더욱 무겁게 짓누른다.

 

방 안에서 홀로 고독의 시간을 걷고 있는 우리들. 팬데믹 속에서 방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길어졌던 때를 생각나게 한다. 과학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두터운 페르소나를 갖게 된, 그러면서 더욱 외로워진 현대인을 그린다.

 

거울을 들여다보듯 공연을 통해 관객은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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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서 홀로 느끼는 외로움, 인간의 고독은 두꺼운 막으로 표현된다. 최수진, 신영준 두 무용수가 무언가를 향해 달리고 있다. 그러나 자신들이 쫓고 있는 실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맹목적으로 달린 끝에 결국 무거운 막에 갇히고 만다.

 

긴긴 암울의 시간이 지났다. 이제 무용수의 머리에 달린 화관과 함께 하얀 옷을 입고 있다. 바깥세상으로 나온 것이다. 외면은 내면과 달리 화려하다. 외부 세계는 알을 깨고 나온 사람에게 무거우면서도 그를 단단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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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과 함께 쓰인 음악과 영상은 챗 GPT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인간과 기술이 합작해 또 다른 형태의 예술을 창조해낸 것이다. 인간의 고독함을 기술이 무용으로 감상자에게 닿아 '위로''공감'을 건넨다.

 

때때로 인간이 만들어내는 의미는 자신을 발견하고, 이에 공감하며, 부분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확장된 시야를 갖게 한다. Alone을 통해 스스로 가둔 막에 고립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막에서 벗어나 사회적 관습에 의해 변화하는 또 다른 자아를 3자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러면서 방 안에서의 고독함을 암울함으로 바꾼 것 또한 자기 자신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과학 기술이 인간 소외가 아닌 위로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기술이 인간을 위로하는, 그 역설적인 풍경은 어린 인간을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든다.

 

 

[박진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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