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스고파라갈', 과연 무엇이 똑바르고 무엇이 뒤집혔는가

영리한 시선으로 논하는 예술의 역할
글 입력 2023.09.07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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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몫, 예술의 의무



[국립극단] 스고파라갈_공연사진 01.jpg

 

 

맥락 없이도 존재하는 그 자체만의 자율성. 이것을 예술의 정체성으로 정의 내리기엔 이미 너무 긴 시간이 흘렀다. 이미 상처들로 얼룩진 세상 앞에서 꿈 같은 이상은 퇴색된 지 오래다. 사회의 논리에서 튕겨나와 신음하는 존재들을 보듬는 것도, 현실의 병폐를 지적하는 것도 이젠 예술이 짊어진 의무가 됐다. 가장 대중적인 취향을 겨냥하는 것도 여전히 예술의 몫이지만, 비주류 집단의 전위에서 칼날을 세우는 것 역시도 예술의 몫이다.


지난달 24일 첫 무대를 올린 ‘스고파라갈’ 역시 ‘기후 위기와 예술’이라는 주제에서 출발한 창작극이다. 지난 7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 시대가 끝나고, 지구열대화(global boiling) 시대가 시작됐다”고 언급했듯, 지구의 이상기후 현상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심화되고 있다. 이제는 피부로 체감되는 비정상적인 기류 앞에서 과연 예술은, 또 국립극단은 어떤 화두를 꺼내놓을 수 있을까.


이번 공연은 국립극단의 ‘창작공감: 연출’ 프로젝트로 탄생했다. 2022년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을 수상한 임성현이 연출을 맡았으며 강민지, 김예은, 백소정, 백혜경, 양대은, 이우람, 한혜진 등 7인의 배우들이 무대 위에 오른다.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오는 9월 17일까지,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일자에 관객들과 만난다.

 

 


무언가 비틀린 섬 '스고파라갈'


 


무언가 비틀리고 뒤집힌 장소, 스고파라갈. 이곳에 일곱 인간이 도착한다. 자신이 어디서 온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거듭 묻지만, 그 누구도 기원과 방향을 파악하지 못한다.

 

혼란스러워하는 인간들 앞에 한 명의 땅거북이 등장한다. 그는 "바다로 가야 한다"는 말만 거듭할 뿐 계속 스고파라갈 둘레만 빙빙 돌고 있다. 갑자기 나타난 땅거북을 지켜보던 인간들은 얼핏얼핏 어슴푸레 건너건너 들었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윈다 스찰 선생과 크스머로닐 양반이 반했던 장소이자, 냐파스에 해적들, 드랜글링 해군들, 아니포리캘 광산업자들까지 너도나도 찾던 곳, 스고파라갈.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가는 이 세계에서 땅거북은 왜 자꾸 바다로 가야 한다는 걸까? Quo Vadis, 땅거북!


"땅거북이 거꾸로 돌기 시작했어!"

"거꾸로?"

"반대 방향으로 말이야."

 

 

[국립극단] 스고파라갈_공연사진 08.jpg

 

 

지난주 수요일 늦은 저녁에 아트센터 지하의 소극장으로 발을 향했다. 순도 높은 첫인상을 남기기 위해 공연 소개글에서 스치듯이 접한 ‘기후 위기’와 ‘땅거북’이라는 키워드 말고는 아무 정보도 없이 객석에 들어섰다. 그래서였는지 예상을 한참 빗겨나간 무대가 눈앞에 펼쳐졌다. 나무 패널로 된 바닥 위로 나무 한 그루만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고, 중앙부 사방으로 배치된 객석에 자유롭게 앉을 수 있었다. 무엇 하나 생소하지 않은 구석이 없었지만 그 덕분에 공연에 대한 기대도 부풀어 올랐다.


조명이 꺼지자 객석 사이의 통로를 가로질러 무대에 일곱 명의 인간이 등장했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스고파라갈’ 섬. 감정이라곤 엿볼 수 없는 두 눈을 부릅뜨고, 거북을 연상시키는 복장을 입은 채 얼키설키 기워진 캐리어를 끌면서 아주 느리게 줄지어 걸어온다. 과연 낯선 섬을 찾은 이들은 거북일까, 인간일까. 일곱 명의 배우들이 순서를 앞다퉈 다급하게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각자를 ‘예술가 K’, ‘A’, ‘S’, ‘A++’ 등의 알파벳으로 소개하면서 저마다 지닌 배우로서의 장점을 경쟁하듯 어필한다. 키가 작아서 의상비가 절약된다던지, 액션 연기에 강하다던지, 체격이 좋다던지, 대사를 빠르게 읊을 수 있다던지, 심지어는 ‘전지현을 닮았다’던지. 일곱 명 모두는 각자의 강점에 대해선 그 누구보다도 확실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어느 한 순간, 처음의 멍청한 눈빛으로 돌아와 고개를 갸웃대며 말한다. “가만히 좀 있어 봐.” “가만히 있는 게 뭔데?” “난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이윽고 이들은 섬 둘레를 돌고 있는 땅거북 한 마리를 발견한다. 딱딱한 나레이터의 음성으로 땅거북의 목소리가 반복해서 들린다. “바다. 바다로 가야 해.” 대체 수영도 할 줄 모르는 땅거북이 바다로 가야 한다는 이유는 무엇이고,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들은 저마다 땅거북에 대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윈다 스찰’ 선생이 최초로 발견한 섬 스고파라갈에는 본래 땅거북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이 섬이 발견된 후로 사람들은 좋은 단백질 공급원인데다 잡기에도 용이하고 착착 쌓아 운반하기에도 편리했던 땅거북을 계속해서 잡아들인다. 결국 해적들과 해군들, 광산업자들까지 이 섬으로 벌떼처럼 모여들게 되고, 인간들의 욕심은 ‘땅거북 재테크’로 이어진다. 음식뿐만 아니라 관광 사업, 웰빙 사업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심지어 ‘크스머로닐’ 양반은 땅거북 경주까지 만들어낸다. 느리디 느린 땅거북들의 대회가 대체 무슨 재미가 있었을까 싶어도, 오히려 거북이 느리기 때문에 상품가치가 있었다나. 땅거북이 섬을 한 바퀴 도는 데만 일주일이 걸리는 덕에 일주일 단위의 관광상품을 개발해 팔아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일곱 배우들은 땅거북의 용도를 설명하면서 ‘구지가’의 리믹스 버전을 부른다. 둥글게 둥글게 무대를 돌고, 또 신명나게 춤을 추면서 이렇게 외친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놓아라. 내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 익살스러운 가사와 고개를 까딱이게 만드는 흥겨운 가락이지만 인간들의 탐욕에 비추어보면 오싹하게 다가온다. 윈다 스찰이 밝혀냈다는, 이들 존재와 땅거북은 사실 조상이 같다는 사실까지 떠올려보면 더더욱 말이다.

 

 

[국립극단] 스고파라갈_공연사진 10.jpg


 

그러던 중 땅거북이 정체불명의 가루를 토해낸다. 무대 한켠에 쌓인 흰 가루를 보며이들은 열띤 토론을 벌인다. 모래라는 합리적인 추측부터 거북의 위장에 남아있었던 빵가루라는 의견까지 나오지만 엉뚱하게도 이들이 내린 결론은 ‘금가루’다. 크스머로닐의 땅거북 경주의 피날레에서 1위를 차지한 땅거북은 금가루를 토해냈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더 많은 금가루를 얻기 위해서 땅거북은 계속해서 같은 방향으로 섬을 돌고 계속해서 도착선을 넘어야 한다. 

 

그러나 갑자기 땅거북은 거꾸로 돌기 시작한다. 이들은 우왕좌왕 혼란에 빠진다. 대체 무엇이 잘못됐길래 땅거북은 갑자기 반대로 도는 걸까. 이들은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를 하나 꺼내놓는다. ‘스저지’ 선생과 ‘로드베’ 선생의 이야기다. 신의 아들인 스저지가 인간들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 처형을 당했고, 그를 따르던 로드베 역시 스저지의 부활 이후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세상을 떠났다는 바로 그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재현한다.


로드베의 십자가 처형처럼 뒤집혀버린 이곳에서 인물들은 갈 곳을 잃어버린다. ‘땅거북이 금가루를 토하지 않는다면, 대신 우리가 땅거북이 되어 똑바른 방향으로 섬을 돌자.’ ‘땅거북처럼 땅거북 흉내를 내면 땅거북이 될 수 있을 거야.’ 이들은 일곱 개의 머리를 맞대 계획을 세워보지만 해결책은 뭉툭하기 짝이 없다. 이들의 혼란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혹시 이 가루가 금가루가 아니라 모래라면?’, ‘땅거북이 땅거북이 아니었다면?’ ‘그런데 우리는 어디서 온 걸까?’ 셀 수 없이 질문들이 쏟아지고, 지금껏 쌓아올린 서사가 한순간에 뒤흔들린다.


그러고는 다시 처음의 그 순간, ‘예술가’들의 자기소개 장면으로 단숨에 전환된다. 이들은 자신들이 다시 국립극단 무대에 서려면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고, 좋은 평가를 위해선 관객분들의 좋은 후기가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바로 지금 좋은 한줄평을 남기는 분께 ‘신사임당이 그려져 있는 노란 종이’와 입장권을 교환해 드리겠다고 말한다. 단, 초대권이 아닌 일반구매권에 한해서 말이다.  또 국립극단 홈페이지에 남길 수 있는 좋은 온라인 후기의 예시까지 야무지게 일러준다.


깜짝 이벤트가 끝나고, 공연은 책들로 도미노를 쌓고 책장을 뜯어 허공에 날리는 촌극으로 마무리된다. 마이크처럼 하드 아이스크림을 손에 쥔 예술가 K가 립싱크로 부르는 존 레논의 ‘Imagine’을 배경음악 삼아, 줄지어 세운 책들이 힘없이 쓰러지고 새하얀 종이가 맥없이 흩날린다. 조명의 열기에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은 마룻바닥 위로 뚝뚝 떨어진다. 연극보다는 시각예술 퍼포먼스처럼 느껴지는 이 마무리는 BGM 덕인지는 몰라도, 어쩐지 아련한데다 시적이기까지 하다. 


 

 

과연 '거꾸로' 돌아가는 것은 무엇인가


 

[국립극단] 스고파라갈_공연사진 22.jpg

 

 

극이 진행되는 내내 그 아무도 ‘기후 위기’는 고사하고 그와 비슷한 단어조차 내뱉지 않는다. 이 키워드는 인물들이 ‘연극’의 맥락에서 빠져나와 관객 이벤트를 설명하는 순서가 되어서야 겨우내 등장한다. 극에서 다루는 이슈의 무게중심 역시도 기후 위기보다도 자본주의에 쏠려 있다. 각각 지구의 이상징후와 이 시대의 경제 체제를 일컫는 두 단어는 전혀 다른 색깔을 띄는 것 같지만, 사실 둘 사이의 경계는 혼탁하게 뒤섞여 있다.


자본주의의 핵심에는 고도의 인간중심주의가 도사린다. 환경 파괴의 역사는 인류가 눈앞의 이득을 취하려고 자연의 생태 리듬을 깨트리면서 시작됐다. 자본 축적에 눈이 멀어 본연의 질서를 무너뜨린 자들의 이기주의가 오늘의 사태를 촉발했다. 극중의 ‘스고파라갈’ 섬과 ‘윈다 스찰’, ‘크스머로닐’ 등이 갈라파고스 섬과 찰스 다윈, 일론 머스크 등의 실제 지명이나 인물명에서 차용됐다는 사실은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물론 일론 머스크가 벌인 관광업은 가상의 설정이지만, 이를 제외한 나머지 이야기들은 실제 사건에 기반해 서술된다.

 

천장에 매달린 나무와 거꾸로 도는 땅거북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땅거북은 나무가 심겨진 천장보다도 한참 위, 실제 무대에선 보이지 않지만 관객의 눈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경계 위편에 산다. 일곱 명의 인물들은 스고파라갈 섬에 당도했다고 말하지만, 이들은 땅거북이 디딘 지면과는 다른 장소에서 땅거북을 바라본다. 거북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 그리고 거북이 토해낸 가루가 쏟아지는 곳도 위편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국립극단] 스고파라갈_공연사진 20.jpg


 

과연 땅거북은 '거꾸로' 돌고 있는 걸까? 사실 경계 위편의 세상은 제 방향대로 돌아가고 있다면? 그리고 일곱 인물들의 장소야말로 거울처럼 뒤집힌 세상이라면 어떨까? 이 아이디어는 우리 인간이 이성과 합리를 쫓아 행했던 일들이 과연 정상적인 행위였는지 질문하게 한다. 인류의 개입이 없었다면 조용히 제 순리를 따라갔을 자연 생태계에게, 과연 정상의 상태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들려올까.


당장 우리에게는 숨 쉴 고민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 귓가에는 끊임없이 환경 보존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이마저도 익숙해져 버렸다. 자연이 당면한 위기는 우리가 몸담은 짧은 세월 앞에서는 별로 긴박하지 않다. 예술을 매개로도 그 심각성은 쉬이 와닿지 않는다. 서두에서도 언급했듯 예술이 시의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주제가 다루어지든 간에 실제만큼의 충격이 감상자에게도 동등히 전달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연극 ‘스고파라갈’의 방식은 일반적인 어법과는 다르다. 이들은 연극, 나아가 예술을 매개로 우리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고 심지어는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허황된 목소리를 앞장서서 무력화한다. 적극적인 자조와 풍자의 방식으로 말이다.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의 폐해를 그저 연극의 주제로 대상화하지 않고, 본인들 스스로의 자본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무대 위로 적극 소환한다. 이 자기비하적인 방식은 객석을 향해 예상치 못한 직격타를 날린다. 토론의 대상이라고만 여기며 우리의 일상으로부터 유리시켰던 이 쟁점이 사실은 서슬퍼런 현실임을, 또 우리 모두가 이에 일조해 왔음을 불현듯 일깨운다.


연극으로, 연기로, 또 예술로 어떤 생산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역시 썩 괜찮은 대답이 될 것 같다. 무대 위의 이야기만으로는 이 세상을 좀먹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Imagine’의 노래 가사(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 / You may say I’m a dreamer)처럼 몽상가의 덧없는 상상과도 같다. 흘러내린 아이스크림처럼 빙하가 녹아내리고, 인간의 욕심으로 동물들이 멸종 위기에 처하고, 기술 발전 혹은 경제 성장이라는 명목으로 자연의 섭리가 파괴되는 오늘날 순진하게 희망을 부르짖는 건 무의미하다. 그 대신, ‘스고파라갈’은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무능함을 차갑게 공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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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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