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땅거북과 우리의 조상이 같대? 연극 '스고파라갈'

글 입력 2023.09.05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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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연 <갈라파고스> 천추력강!!!"

 

 

[국립극단]스고파라갈_홍보사진 05.jpg

 

 

무언가 비틀리고 뒤집힌 장소, 스고파라갈. 이곳에 일곱 인간이 도착한다.

 

자신이 어디서 온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거듭 묻지만, 그 누구도 기원과 방향을 파악하지 못한다.


혼란스러워하는 인간들 앞에 한 명의 땅거북이 등장한다. 그는 "바다로 가야 한다"는 말만 거듭할 뿐 계속 스고파라갈 둘레만 빙빙 돌고 있다. 갑자기 나타난 땅거북을 지켜보던 인간들은 얼핏얼핏 어슴푸레 건너건너 들었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윈다 스찰 선생과 크스머로닐 양반이 반했던 장소이자, 냐파스에 해적들, 드랜글링 해군들, 아니포리캘 광산업자들까지 너도나도 찾던 곳, 스고파라갈.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가는 이 세계에서 땅거북은 왜 자꾸 바다로 가야 한다는 걸까? Quo Vadis, 땅거북!


"땅거북이 거꾸로 돌기 시작했어!"

"거꾸로?"

"반대 방향으로 말이야"

 

 

[국립극단] 스고파라갈_공연사진 01.jpg

 

 

 

모든 것이 뒤집힌 세계에서도 관통하는 동시대성


 

연극 <스고파라갈>의 세계는 거꾸로 뒤집혀 있다. 마치 현재 우리 시대의 평행세계 같기도 하고, 미래의 세계 같기도 하며, 어쩌면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인, 그렇다. 모든 것이 뒤섞여 있다.

 

윈다 스찰 선생과, 30년 만에 부활한 스저지와 그의 제자 로드베, 땅거북을 관광상품화하는 크스머 로닐이 있는 이 세계관 속의 존재하는 것들은 우리의 세계에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연극을 보는 내내, 풍자적으로 다가오는 거꾸로 말하기는 화두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화두, 그렇다 이 연극은 우리에게 화두를 던지고 있다. 그래서 이 연극의 로그라인을 하나로 정의하는 일 자체는 크게 의미가 없다. 본 연극의 대사들과 배우들의 몸짓을 따라가며, 계속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는 일, 이 연극의 방향성이 아닐까 싶다.

 

보고 나오며 이 연극은 한 번 더 보면 또 다른 지점을 낚아낼 수 있는 공연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나의 눈에 스고파라갈에 도착한 7명의 사람들의 모습이 '바다, 바다로 가야 해!'라고 외치던 땅거북의 여정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배우들의 느릿한 몸짓으로 시작하는 본 연극은 느린 몸짓을 하는 것에 더 코어가 필요한 것처럼, 단단히 계속 동시대성을 잃지 않고 관통해 내는 심지를 갖고 있었다.


기후 위기라는 이야기의 시작점에 위치한 주제의식은 진화라는 지점에 가닿고, 진화는 변화하는 환경과 사회구조에 맞닿아 있으며, 자본주의 사회구조 속에 가치의 희소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시 돌고 돌아 자연 속의 자원을 인간은 어떻게 욕심내고 소비하는지까지 달려간다.

 

가치가 있는 것은 어떻게 가치가 생기는지, 높은 가치에 구매하기 위해 인간은 얼마나 탐욕적인지, 그러한 인간 역시 누군가에게 선택되기 위하여 각자의 장점을 어떻게 부각시키는지, 이러한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가치를 평가받던 땅거북과 인간의 조상이 같다는 윈다 스찰 선생의 말이 왜 기억에 남게 되는지, 곰곰이 고민해 볼 만하다.

 

 

[국립극단] 스고파라갈_공연사진 09.jpg

 

 

이러한 지점에 가장 크게 부각되는 장면이라면 '경귀장' 장면일 것 같다. 느린 땅거북들을 가지고 웰빙이라는 포장지를 씌워 경기를 시키는 장면, 그리고 그 장면 속에서 인간의 경주도 비교되어 등장한다.

 

'느리다'라는 속도에도 경쟁과 가치를 매기는 인간들과, 자기 자신의 장점을 보여줘야 하는 인간들의 경주, 그리고 마침내 각자의 남다름을 표현하다가 하나의 소리로 뭉쳐지는 것까지. 기후 위기와 그러한 현상의 기원을 쫓아가며 만난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부분들이 확 와닿는 장면이었다. 본 공연에는 관객 참여 시간이 있는데, 관객의 좋은 리뷰와 5만 원을 거래하는, 정말 말 그대로 자본주의적인 거래의 현장이다. 


모든 게 뒤집힌 세계, 어쩌면 환상 속의 섬, 스고파라갈 속에서 발견한 현재 우리의 모습은 웃프기 그지없다.

 

 

[국립극단] 스고파라갈_공연사진 05.jpg

 

 

 

그렇지!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지


 

본 공연에서는 '보여?' '안 보여?'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봐?' '그렇지,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지.'라며 주고받는 대화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가진 맹점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후 위기의 전조증상, 진화의 시작, 어떠한 문제의 발생은 어쩌면 우리가 있어도 보지 못하고, 보아도 없다고 치부해버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알고 있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아니,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계속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티키타카, 그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잘 보고 있고, 듣고 있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 공연이 '연극'이라는 매체에 굉장히 적합한 지점을 건드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본질적으로 연극이라는 매체 자체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인다고 생각하고,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연을 볼 때, 연출과 배우들이 완성하는 장면을 보기 위해 보이지 않는 땅거북도 보인다고 상상하고, 암전 시 발광하는 마킹용 형광 테이프를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암전 시 발광하는 형광 테이프는 관객인 내게 이따금 별처럼 보이기도 한다.)

 

 

[국립극단] 스고파라갈_공연사진 12.jpg

 

 

우리는 이처럼 어떠한 의도에 의하여 정돈된 정보들에 의하여 보이는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고,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인다고 판단한다. 우리가 가지는 맹점 역시 비슷한 성질이다. 맹점이라 함은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한 모순이나 틈을 비유적으로 의미하는데, 생물학적으로 안구 자체에 존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모든 인간은 신체적으로 맹점을 타고난다. 그러한 맹점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두 개의 안구를 갖고 있으며, 그를 통해 시야각은 넓어진다. 그렇기에 본 연극이 보여주는 화두의 측면에서, 관객들에게 계속 시야각을 넓히기 위한 사례들을 던진다. 진짜로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알았어도 모른 척 한 것인지, 이미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기후 위기, 그리고 자본주의의 균열을 우리는 정말 몰랐는지, 아니면 알았어도 그냥 흘려보내고 있었던 것인지, 계속 고민하게 했던 80분의 시간이었다.


프로그램북이 공연장 내에 비치되어 있긴 했지만, 홈페이지에서 프로그램북 파일을 다운로드해 읽었다. 왠지 그러고 싶었다. 친환경적으로 말이다. 땅거북이 바다에 도착하길 응원하는 마음으로.

 

 

 

아트인사이트_컬쳐리스트_고혜원.jpg

 

 

[고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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