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내려놓은 마스크처럼 '너희'를 받아들일 때 - 도서 '이주하는 인류'

글 입력 2023.09.0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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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단일민족이라 정의하는 한국인의 '이민의 삶'은 이주민과 본토인의 충돌로 역사를 써내려가는 미국인의 '이민의 삶'은 분명 다른 무게를 지닌다.

 

오늘 리뷰할 책은 <이주하는 인류>다. 책의 저자는 언론인으로서 여러 나라를 오갔던 샘밀러로, 이 책을 통해 그는 '소수의 경험'으로 정의되는 이민의 경험을 '인류의 핵심적인 특성'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하지만 아까 말하던 것을 좀 더 이어 말해보자면,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까지 한국인으로서 아직 이주자의 삶을 상상하는 것은 잘 와 닿지 않는다. 미국이 선도하는 문화 콘텐츠에서 이주자의 삶은 근 이십 년간 주목받아 왔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동양인의 정체성과 맞물리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현실적인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이민자의 삶을 가까운 거리에서 경험하는 것은 어렵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과 근무하는 분야의 특성이 한몫했겠지만,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이민정책을 유지하는 한국에서 다문화 가정이나 탈북민의 이야기는 일상 밖에서 굴러다닌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내가 사는 이 세계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우려에 대한 나름대로 답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의 이러한 읽기 동기는 굳이 오늘날 이 책을 번역하여 출간한 출판사의 기획의도와 상당히 일치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저출산, 고령화 때문에 필연적인 인구학적 변화를 앞두고 있다. 우리 사회는 젠더와 경제적 문제를 표적으로 삼고, 인터넷 세상에서는 추잡한 개개인을 표상한 허수아비를 신 나게 후려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러한 원인을 시대적 변화라고 보고 이미 국가가 나서서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이미 정부는 2006년부터 약 280조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과 정책적 수단이 출산율을 향상 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상기시킬 필요도 없이 그런 노력은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 이러한 방법으로 인구감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이제 다른 접근이 진지하게 고려될 필요가 있다. 인구감소 현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인구감소에 맞는 정책에 집중하거나, 이민자를 받거나 일 것이다. 

 

첫 번째 접근은 좀 더 예방적 차원에서 수행할 수 있는 부분이니 두 번째 접근에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가와 시민은 이제 출산정책에만 목매지 않고 다양한 대책과 인식 개선이 병행할 필요가 있다.

 

캐나다나 호주와 같은 이민 국가는 영주이민을 중심으로 대규모 이민을 받아들이고 생산인구 증가를 도모하고 있다. 일례로 캐나다는 2018~2019년 전체 인구 증가의 82%를 이민자로 받아들여 채웠다. 호주의 지역 추천 이민제도와 같이 이민 국가들이 채용한 이민 정책들은 단순한 인구 증가뿐만 아니라 수도권에 집약된 현상의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출산 정책이 실패로 돌아간 지금, 이민 정책은 인구의 질과 규모를 조정할 좋은 기회일 것이다.

 

하지만 국내 이민정책은 갈 길이 멀다. 현시점에서 이민 정책을 전담하는 부서도 개설되지 않았으며, 논의되는 문제도 가사근로자 도입이나 산업인력 보충과 같은 단편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이민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고민해도 우리나라가 앞두는 결과는 인구감소로 인한 경제 침체와 같은 자멸적인 미래뿐이다.

 

우리나라 정치가들이 아직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 것은 시민에게도 책임이 있다. 진영논리에 물든 언론 보도와 이제는 허리가 움푹 파인 허수아비를 보면서 냉소하는 무익한 관찰을 그만두고, 미약한 한 시민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된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를 통해 확산된 낯선 타지인을 향한 적의감은 마스크가 그러했던 것처럼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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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뷰할 <이주하는 인류>는 아직 한국인에게 낯선 이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고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책은 기본적으로 이민의 역사를 추적하고, 각 시간과 대륙을 넘나들면서 저자가 느낀 것들을 세장 이내의 에세이를 끼워 넣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역사를 기술하는 부분에서 책은 익히 알려진 대규모 이민을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한다. 성경시대의 이민부터 70년대 멕시코 이동까지, 익히 알려진 이주자의 와 닿지 다루지만, 저자는 단순한 역사 기술의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짧게 제시되는 와 닿지 통해 그는 자신의 목표가 역사적 추적이 아니라 이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제고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의도에 맞춰 책의 감상을 이야기해보자면, 이민자에 대한 그의 시선은 두 가지 포인트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로, 그는 이민자에 대한 두 가지 상충하는 인식이 있음을 소개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민자는 호기심을 가진 탐험가로서 영웅이 되거나, 핍박받는 자들이 된다. 이민자들은 적응하여 새로운 나라의 건국자가 되거나, 권력자가 될 수 있지만 '추방'이 최대 형벌이 될 정도로 역사 속에서 방랑자는 가장 비천한 존재로 취급되었다.

 

성공한 이주자는 아메리칸 드림을 꿀 수 있었지만, 점토 벽부터 지금까지 이민자는 험한 대우를 받아왔다. 이는 당연한 것으로, 역사가 정착자들을 위하여 쓰인 것이기 때문이다. 애당초 최초로 이민자에 대한 부정적인 기술은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시작되었는데, 땅의 개간이 시작되면서 그 땅이 '자신의 땅'이 되어 이민자들로부터 구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이민자에 대한 광범위한 정의다. 저자는 "이주민은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옮겨간 사람으로, 그가 경험하는 두 번째 문화는 첫 번째 문화와 크게 다르며,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도전 과정을 겪기에 충분한 시간 동안 머문다"라고 표현한다. 이에 따라 노예무역과 같이 자유의지와 상관없이 이주한 경우도 이민자로 정의할 수 있다. 그가 자유의지를 고려하지 않고 이주민을 정의한 것은, 재난이나 전쟁, 어린아이와 여성의 발언권을 고려하면 이민에 얼마나 자유의지가 발휘되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이민은 좀 더 폭넓은 개념이 되고, 인류의 역사에서 이민은 특수한 행동이라기보다 좀 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해된다. 이민은 '정지'가 아니라, '이동'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자신만의 정착지를 찾기 위해서 언제나 자연스럽게 거처를 옮겨왔다. 기후의 변화와 생활방식으로 인해 이주를 택했던 원시인도 이민자가 될 수 있고, 명예 백인으로서 여왕을 알현했던 포카혼타스도 이민자가 될 수 있다.

 

첫 번째 포인트와 엮어 생각해보자면, 이민자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수자'의 이미지는 상당히 왜곡된 것이다. 모든 문명은 이주의 결과다. 그럼에도 그들이 '소수자'인 것은 정착자들의 정서적, 현실적인 이득에 의해 그렇게 정의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런 접근과 역사적 추적은 이민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논리적이고 경험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하지만 저자가 끝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 책의 논의 범위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민에 대한 인식적 제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까닭에 현실적인 이민 문제에 대한 사고를 발전시키지는 못한다.

 

이 책을 읽게 되는 많은 독자가 대부분 이민에 대한 현실적인 논의를 기대했을 것을 고려할 때, 이러한 저자의 접근은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분명 현실적으로 실현해야 할 이민 정책을 받아들이는 어떤 마음의 준비에 중요한 토대를 쌓아 올리고 있다. 그리고 저자의 접근은 단일민족이라 이십 년간 정의하는 한국에서 더 빛을 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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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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