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

함부로 꿈꾸라고 하지 않을게
글 입력 2023.09.02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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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뮤지션 '후라이의 꿈' 가사.[사진=멜론뮤직]

 

 

하다못해 네모도 꿈을 꾸는데, 아무도 꿈이 없는 자에겐 기회를 주지 않아. 하긴 무슨 기회가 어울릴지도 모를 거야.

 

랜덤 재생된 플레이리스트 속에서 악동뮤지션의 신곡 <후라이의 꿈>이 흘러나왔다.


다들 꿈을 꾸라고 하는데 꽉 눌어붙어있는 것도, 나른하게 그냥 있고 싶다는 노래를 들으면서 내 걸음도 점점 느려졌다. 꿈이 없어도 되는 거야? 그런 질문은 해본 적이 없다. 빨리 걷는 게 습관이 돼 목적지가 없어도 바쁘게 갈 필요가 없어도 걸음은 항상 빠르다. 찌푸린 얼굴로 정신없이 걷다가 길거리에서 아는 사람을 마주칠 때만큼 민망할 때가 없다.

 

언제부턴가 꿈과 장래희망을 혼동하기 시작했다. 아마 어릴 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른들의 '넌 꿈이 뭐냐'는 질문은 장래에 커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과 결을 같이 했으니까. 그러니까 꿈은 없으면 안되는 거였다.

 

그러나 꿈을 좇는 사람들의 얼굴이 늘 아름답지 않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거울을 보아도, 라라랜드의 미아나 세바스찬도, 제리 맥과이어의 제리도, 에어의 소니도. 어느 순간부터 그런 사람들의 성공 스토리를 보는 게, 그 사이에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보는 게 피곤하다. 꿈이 거창할 필요가 있나, 꿈을 이루어야 할 필요가 있나. 아니 그 전에 꿈이란 게 있어야 할까. 그런 질문엔 아무도 답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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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에서 말한 박명수 말 중 가장 옳은 말이라고 생각한다..[사진=MBC]

 

 

박명수가 무한도전에 나와 그런 말을 했다.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웃었지만 나는 가슴이 뛰었다. 나도 진짜 그러고 싶다, 눈을 반짝이다가 곧 생각은 다시 나 뭐하고 놀고 싶지? 로 틀어진다. 아니 그러니까 '뭘' 꼭 해야 하냐고,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 게 어렵다.


같은 맥락으로 나는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부터 쭉 그래왔기 때문에 딱히 이유를 찾아보려 한 적 없다. 최근 여러 이유로 일본 드라마를 들춰보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가슴에 답답하게 걸린 게 있었다.


정확하게는 간절하지 못한 여유로움이 고까운 거 같은데.

아무래도 그렇지. 한국만큼 드라마마저 야망 가득한 곳은 미국밖에 없을 듯

그니까ㅋㅋ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갑자기 하고 싶었던 조그만 가게를 운영한다든가, 고등학교쯤은 안 가도 된다고 말하는 부모가 있다든가. 조금 더 일상에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오히려 현실 감각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그런 일상을 겪어본 적이 없어 꿈같은 이야기라고 쉽게 말하게 된 것도 서글펐다. 꿈같은 이야기라니. 내가 언제부터 꿈을 환상을 일컫는 의미로 사용하게 됐더라. 꿈 깨. 이 말을 그렇게 싫어했는데...


위로는 엉뚱한 곳에서 받았다. 이 드라마 속 사람들은 암만 힘들어도 편의점에서, 카페에서, 집에서 밥은 그렇게 잘 챙겨 먹더라. 집에 오면 일단 밥을 해, 그리고 자신을 열심히 먹인다. 우리나라는 밥의 민족이라면서 퇴근하고 힘들게 돌아와 밥을 먹는 건 죽도록 안 보여준다. 위스키로 목이나 좀 축이고 그러더만 성공을 위한 고독한 길엔 밥도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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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1개의 도시락 스틸컷.[사진=네이버영화]

 

 

물론 나도 의식주 중 '식'이 가장 하위 단계인 사람으로서 힘들면 밥부터 포기하고 침대로 기어들어가 잠에 들거나 신발장에서 잠시 기절한다. 위로를 받았으니 나도 같은 테라피를 해볼까 한다. 뭐든...그래 밥부터 챙겨 먹자. 꿈이고 나발이고 다. 밥부터 먹읍시다.


올해 초엔 주짓수를 그만두기 전에 같이 운동을 하던 동생이 상담을 해와서 나는 휴학 후 여행을 권했다.


외국을 나가 봐. 교환학생도 좋고 여행도 좋아. 가서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 와. 돈 없으면 알바해. 놀려고 알바 빡세게 하는 건 또 괜찮더라.


그리고 그 친구는 고맙게도 내 말을 들어줬다. 외국을 돌아다니더니 얼마 전엔 제주도 한 달 살이를 가 새카맣게 타서 돌아왔다. 그 삶을 위해 그가 몇 개의 아이스크림을 펐던가... 그건 묻지 않았지만 행복하다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이 조언들은 끊임없이 대물림된다. 내가 또 다른 선배한테 최근 진로 고민을 털어놓자 '수빈 씨는 실패하고 다시 돌아와도 괜찮을 나이예요' 라는 답이 왔다.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지, 맞지. 나도 아직 너무 어리지. 나도 모르게 또 빠른 걸음으로 조바심을 치고 있었다.


찬바람이 느껴지기 시작하니 또 이놈의 조급증이 도지는 모양. 아, 맞아 내가 이래서 가을을 싫어했었어. 그런 빈틈없는 깨달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여전히 장래희망은 있지만 꿈은 없다. 그래도 오늘은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괜찮은 상태는 늘 유동적이라 내일을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러니까 남은 가을 겨울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좀 찾아볼까. 꼭 꿈을 꾸지 않아도 되잖아. 그러면서 따뜻한 밥에 계란후라이를 올려서 먹어볼까. 뜨끈한 버섯칼국수도 챙겨 먹을까. 걸음은 좀 늘어지게 걸어보자. 함부로 꿈꾸라고 하지 않을게. 오늘의 일기엔 이렇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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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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