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가능’과 ‘옳음’ 사이의 거리를 재는 일 - 김동하 장편소설 ‘달고나 여행사’

SF 세계관을 경유하여 소설 '달고나 여행사'가 묻는 가치
글 입력 2023.09.02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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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가능’의 의미를 더해주는 한자 ‘可’는 그 자체로 ‘옳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할 수 있는(가능한) 것’과 ‘옳은 것’이 항상 같지는 않음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이 둘 사이의 고민과 갈등은 처음 공동체 안의 규범이 생겨난 이후로,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계속 존재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특히 점점 더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 기술이 우리에게 ‘가능’의 영역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확장하고 있기에,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우리의 도덕 기반은 이렇게 ‘가능’의 영역과 접하게 된 무수한 경계에서 크고 작은 도전을 마주하고 있다.


너무 빠르게 이미 우리에게 ‘가능한 것’이 되어버린 수많은 것들 사이에서, 그것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을 우리는 어떻게 ‘잘’ 해나갈 수 있을까? 다양한 이해관계와 가치들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정의와 원칙을 어떻게 다시 세우고 합의해 나갈 수 있을까?


김동하 작가의 장편소설 ‘달고나 여행사’는 ‘공유 신체’가 가능해진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여 이러한 질문들을 우리 앞에 더욱 가깝고 선명하게 가져다 놓는다. 이는 SF라는 장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자, 어쩌면 SF 장르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달고나여행사-표1(띠지).jpg

 

 

 

‘가능’과 ‘옳음’ 사이의 거리를 재는 일


 

인간의 ‘몸’은 인간인 우리가 커다란 자연의 법칙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매개이자, 존재 자체로 스스로에 대해 인지하게 하는 ‘자아’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인간에게 신체는 ‘한계’로 작동하며 자연의 법칙을 넘어서려는 도전과 욕망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생명과 인간성을 유지하는 본원적인 자원이자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가능성과 가치가 부딪히는 격전장으로서 인간 신체는 그만큼 그 의미와 기능, 형태와 가치가 계속해서 변화해 왔다. 특히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AI 기술과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메타버스 등의 가상공간, 신체의 다양한 기능을 분담하고 있는 보조 기구와 노동시장 등은 이러한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될 이러한 변화는 우리에게 신체가 지닌 의미를 어떻게 바꿔놓을까? 소설 ‘달고나 여행사’는 SF적 상상력을 통해 인간 신체가 지닌 한계이자 가치에 도전하며, 오히려 인간 의 신체가 가진 존엄과 가치의 기준을 반문한다.

 

 

공유신체란 말 그대로 타인의 신체를 공유하는 개념이다.

이해하기에는 대여 신체라는 표현이 더 낫겠지만.

13년 전부터 지속된 장기간의 팬데믹, 그로 인해 모든 국경의 출입이 봉쇄된 게

지금처럼 공유신체 산업이 급성장하게 된 발단이었다. 나라 간의 물리적인 왕래와

 교류는 정치, 비즈니스에 한해 극히 제한적으로만 허용됐다.

관광 차원의 왕래는 전면 차단된 것이다. 그로 인한 여파는 엄청났다.

몰락하는 산업과 새롭게 부흥하는 산업의 희비가 빠르게 교차했다.

그 와중에 급부상한 산업 중 하나가 공유신체를 베이스로 하는 관광산업이었다.

가령 한국인이 루브르박물관에 가고 싶으면 프랑스에 거주하는 사람의 신체를

일정 기간 대여하는 방식이었다. 

 

- pp.25-26.

 

 

인간이라면 어떤 누구에게라도 태어날 때부터 오직 하나의 신체가 주어진다. 하지만 소설의 핵심 소재가 되는 ‘공유 신체’라는 기술은 이러한 신체가 지니는 ‘유일성’을 깨뜨리면서 한 사람에게 하나의 신체마저 보장되지 않을 수 있고, 동시에 한 사람에게 여러 개의 신체가 허락되는 상황을 가능케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의 신체는 재화만 있다면 자신의 욕구를 위해 언제든 빌리고 바꿀 수 있는 소비재가 되었다. 한계를 넘어 오히려 도구화된 인간의 신체는 인간에게 ‘가능’의 영역을 획기적으로 넓혀주었지만, 그 한계 안에서 보장되었던 최소한의 자원과 존엄을 위협받게 된 사람들은 더욱 취약한 자리로 내몰리게 되었다.

 

 

수열은 처음부터 공유신체 기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획기적인 과학 혁명은 결국 가진 자의 특권을 극대화하는 것에 불과했다.

당연한 것처럼 가난한 사람은 가진 자의 예비 신체로 전락하고 있었다.

 

- p. 74

 

 

물론 소설 속에서 공유신체를 대여해주는 사람들(‘호스트’)은 대여에 따른 보수를 받는다고 하지만, 그것이 ‘가능’의 영역으로 들어온 공유신체기술의 ‘옳음’을 보장할 수 있을까? 신체의 공유가 이루어지는 동안 신체를 대여해 준 ‘호스트’는 자신의 몸에서 벌어지는 일을 전혀 알 수 없고, 신체를 대여한 ‘게스트’들은 어떠한 물리적 피해나 제약 없이 자신의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 과정에서 ‘호스트’에게 가해지는 생명과 존엄에 대한 위협은 너무나 쉽게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온다. 실제로 소설 속에서 오랫동안 식물인간으로 입원해 있는 딸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공유신체 서비스를 운영하는 회사의 ‘호스트’로 등록한 ‘가은’은 자신의 몸으로 마약을 한 ‘게스트’ 때문에 하지도 않은 마약 중독 증상으로 고통받는다.


공유신체기술은 일정 부분 인간이 지닌 물리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해주었지만, 소설 속 이 기술을 둘러싼 각각의 사연과 복잡한 이해관계는 이 기술이 지닌 윤리적 취약함을 ‘호스트’의 간절함이나 ‘게스트’의 양심과 호의에 대한 기대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움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호스트’가 어떠한 이유와 사연으로 자신의 신체를 대여해주었는지 하나하나 심판하고 증명하는 것도, ‘게스트’가 어떠한 의도로 타인의 신체를 대여했는지 굳이 몰입하고 공감하는 것도, 이러한 기술이 지니는 윤리적인 취약함을 제대로 바라보는 방식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렇게 구조적으로 윤리적인 취약함을 가질 수밖에 없는 기술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이를 둘러싼 이해와 가치를 제대로 논의하고 합의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의 필요성은 당연히 SF 세계관이나 과학 기술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다. ‘가능’과 ‘옳음’ 사이의 거리를 재고 이 둘 간의 균형점을 찾는 일은, 이전에도 그랬듯 앞으로도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영역에서 지속될 것이다. 이는 ‘가능’과 ‘옳음’이 무엇을 대가로 교환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인 동시에 결국 우리 자신인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가치에 대한 정의와도 연결된다.


따라서 윤리적인 취약함을 지닐 수 밖에 없는 기술이나 시장 등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더라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가능’과 ‘옳음’이 무엇을 대가로 교환되고 있는지 제대로 살피고, 윤리적 취약함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어떻게 정비할 것인지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실에서는 소설 속 ‘도훈’의 뛰어난 신체능력을 장착한 ‘수열’이 손녀를 구해내는 영웅적인 이야기보다는, 대다수의 노력과 합의로 인간의 생명과 존엄이 보호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 안에서 편리한 기술이 활용되는 일상의 장면이 이어지기를 바라본다.

 

 

 

SF에 침투한 빛바랜 ‘가부장’ 영웅의 가족 회복기


 

과거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SF 장르 작품이라고 하면 꼭 떠오르는 클리셰가 있었다. 가족이나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영웅적인 우주비행사들의 모습이다. 어떤 장르보다도 창의적인 방식으로 참신한 내용을 전달할 것 같은 SF 장르가 때로는 역설적으로 보수적인 가치를 지키는 방패가 되고, 영웅적인 인물을 통해 국가주의나 가부장제를 ‘세련’되게 재현하는 수단이 되는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소설 ‘달고나 여행사’도 이러한 SF라는 장르를 경유하여, 사회와 의식의 변화에 따라 조금은 빛이 바랜듯한 가치들을 다시 돌아본다. 특히 이 소설은 ‘신체공유기술’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소재로 하는 SF 소설이기도 하지만, 소위 ‘실패한 가장’이었던 전직 경찰 ‘수열’이 손녀 ‘도희’를 구하기 위해 전 사위 ‘도훈’과 힘을 합치고, 딸 ‘가은’과의 관계를 회복해 가는 ‘가족 회복기’이기도 하다.


병원 안에서도 안전하게 지낼 수 없고, 경찰도 믿을 수 없는 ‘무법지대’에 한순간에 떨어진 수열의 가족에게 결국 ‘가족’이라는 관계만이 서로를 지키고 구하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이들은 도희의 납치라는 공동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유례없이 단합하고, ‘빛바랜 가장’이었던 수열과 도훈에게는 ‘가장의 역할’을 수행할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


이처럼 국가나 정부, 혹은 사회의 인프라가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역할이 가부장에게 그대로 위임되는 ‘가부장 영웅’의 이야기는 장르를 막론하고 그리 낯설지 않은 서사이다. 하지만 무법지대에서 다시 호명된 가부장 영웅의 고군분투가 다시 이어 붙인 ‘가족’은 아름다운 포장만큼 단단하고 가치 있는 관계를 담아낼 수 있을까?


소설 속에서 현재에 닥친 중대한 어려움을 해결해야 하는 수열과 도훈, 가은에게 과거의 시간을 해명하고 이해하는 과정은 그저 ‘가족’이기에 자연스럽게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된다. 하지만 이렇게 마법처럼 만들어진 가족 간의 결속이 ‘역시 결국은 가족’이라는, 관계의 이름에 맹목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된다면, 그 관계는 너무나 쉽게 다시 해체될 수 있다.


어떤 관계든 그 관계의 이름 자체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정작 그 관계의 이름 아래 형성된 각기 다른 유대와 규범을 제대로 살필 수 없다. 그렇기에 결국 이전의 질서와 관계를 회복해 낸 가부장 영웅이 재현하는 가족의 모습 반대편에서 가족이라는 관계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묻는 것이 필요하다. 즉 한 명의 영웅이 아닌, 가족이라는 관계 속 각각의 구성원들이 보내 온 시간과 그로 인해 형성된 각기 다른 형태의 유대에서 가족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살펴야 한다.


이렇듯 오랜 시간 우리에게 ‘당연하게’ 중요한 의미를 지녔지만 이제는 다양한 이유로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가치를 다시 살피는 소설의 물음은 인물 간의 구도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예컨대 나이 드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자 하는 ‘수열’과 기술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고자 하는 ‘헤라’의 대립 구도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원칙이나 가치가 영원히 고정된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특히 소설의 주인공 ‘수열’은 단편적인 모습만으로는 SF 장르와 동화되기는 어려운 인물로 보인다. 혁신적인 기술들 사이에서 혼자만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잃어버린 6년의 기억보다 더 과거에 머물러 사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수열의 모습은 오히려 소설 속에서 ‘아날로그 감성’을 고수하는 ‘수열’과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거대한 세력 간의 대결을 성사시키며, 대립하는 각기 다른 가치들 속에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한 번에 뒤집어 버리는 기술을 어느 정도와 범위에서 활용할 수 있을지, 이제는 의미 없다 여겼던 것들의 유효성을 확인했을 때 이를 어떻게 현재에 맞게 다시 수용할 수 있을지, 이는 급변하는 환경 속 우리에게 계속해서 과제처럼 남을 물음일 것이다.


그리고 그 물음의 답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합의해 나가야 하는, 혹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지키고 싶은 것들, 소중한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소중한 존재를 지키기 위해 절실하게 변화하고 용기를 낼 수 있는 존재라는, 변하지 않는 사실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소설 속에서 소중한 존재를 위해 용기있게 변화를 선택하고, 절실하게 스스로를 고수해낸 인물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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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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