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조의 피아노와 림의 글

글 입력 2023.08.3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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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동네 친구 같은 두 동기가 있다. 스무 살 때부터 셋 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했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이제 동네 친구라고 해도 될 때가 됐다 싶다. 우리 셋이 만나면 거의 토크쇼 하나를 만들어 낸다. 할 얘기가 너무 많다. 매번 점심 약속으로 만나는데, 밥에서 끝나지 않고, 카페에 가고, 셋 중 누구의 집에 갔다가, 결국 저녁까지 먹고 헤어질 때가 되어서야 그나마 토크가 마무리된다.


피아노를 10년 만에 만난 건 그런 날 중 하루에서였다. 그날 우리는 어김없이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갔다가도 헤어지기 아쉬워 최근 이사한 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 그 친구는 원룸인데도 불구하고 집에 기타와 전자 피아노가 있었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기타를 몇 번 딩딩 거리다가, 그나마 어릴 때 좀 쳤던 피아노 앞에 앉았다. 뒤에서는 침대에 앉은 두 친구의 포근한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음악을 연주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나는 한 시간 뒤, 그 피아노에 앉은 채로, 건반 위에서 억지로 뻣뻣하게 손가락을 움직이며, 눈물을 터뜨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울 일인가 싶지만. 그때의 나는 절망감, 속상함, 무력감, 오기, 패배감 등이 한데 섞인 복합적인 감정의 파도에 쓸려 속절없이 눈물을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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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데는 문제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 악보가 없다. 아니, 오히려 너무 많다. 인터넷에 악보를 검색하면 유료 사이트들에서 미리보기 한 페이지를 제공한 채 판매하고 있었다. 문제는 같은 곡인데도 악보가 다른 버전이 너무 많아, 뭐가 ‘진짜’ 악보인지 알 수 없었다. 초등학생 때는 그냥 학원에 있는 교재를 사면 됐는데. ‘악보’라는 저작권에 대해 실감하게 된 순간이었다.


둘. 내 실력이 너무 처참하다. 10년이 넘게 건반조차 만지지 않았던 내 손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사이트에서 미리보기로 제공하는 첫 번째 페이지조차 완곡할 수 없었다. 악보를 보고 그게 무슨 음인지 파악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는데, 그 음을 손가락으로 잡을 때까지 또 시간이 걸렸다. 한 마디로 악보와 내 손가락과 내 의지가 페어링 되는데 너무 오래 걸려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구식 기계와 신식 디바이스가 페어링 될 때 하염없이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나는 내 답답함 속에서 결국 그 페어링 시간을 견뎌내지 못했다.


혼자 피아노와 씨름을 하다가 결국 나는 눈물을 터뜨렸다. 초등학생 때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고 운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던 친구들도 내가 진짜 눈물을 줄줄 흘리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꾸역꾸역 피아노를 치려고 하는 나를 친구들은 피아노 앞에서 끌어 내렸다. 그리곤 쉬라며, 피아노 안 쳐도 된다며 나를 토닥토닥 안아주었다. 저런 것 못 해도 된다며, 아예 피아노 뚜껑을 닫았다.


 
“나는 왜 되는 게 하나도 없을까?”
 


이렇게 말하며 나는 울었다. 괜한 인생의 다른 서러움까지 다 치밀어 올랐다. 그전까지 당황하던 친구의 표정이 속상함으로 물들었다.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지 마….’ 내 친구는 다 잘될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너 잘 해내고 있다고, 그러니 잘될 거라고 얘기해주었다. 위로를 들으려고 눈물을 흘리는 건 아닌데. 이런 위로를 하게 만드는 이 상황이 미안하기도, 부끄럽기도 했지만, 이 친구들이니까 그냥 왕창 울었다.


그리고 또 금세 웃었다. 이번에는 친구들이 당황이 아니라 황당해했지만. 황당해하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친구가 덮었던 피아노 뚜껑을 다시 열고 피아노를 다시 쳤다. 얼마 못 치고 나도 ‘이제 됐다’고 손을 털었다. 친구들이 ‘수고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조금 민망해졌다. ‘내일부터 피아노 학원 다닐 거야, 그래서 저 노래 꼭 다 연주한다’고 다짐도 했다. 완곡을 꼭 내 손으로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실제로 학원에 다니지는 못했다. 우리 집 근처에 피아노 학원을 세 군데 정도 상담받으러 갔다. 두 군데는 시간이 맞지 않았다. 나는 그때 저녁 시간에 알바하고 있었는데, 성인부는 저녁 시간밖에 없다고 했다. 아무래도 학교 끝나는 시간에는 학생들을 받아야 하니 그렇겠지. 다른 한 군데는 아예 정식으로 기본기부터 레슨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초등학생 때 쓰던 하농, 소나티네, 체르니 같은 교재를 모두 배워야 원하는 곡을 레슨 받을 수 있다고. 그렇게까지 피아노에 시간을 많이 투자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이것도 마땅치 않았다.


피아노에 무너졌었기에 피아노를 다시 원하는 수준까지 연주하고 싶었다. 그래야 그날의 절망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데 환경이 마땅치 않았다. 어쩔 수 없었지만 속상했다. 그날을 못 이겨내는 것 같아서. 친구들한테도 미안했고. 그들을 위해서라도 꼭 완곡하고 싶었는데. 그래도 내가 시간이 좀 더 여유로워지면 꼭 피아노를 배워야지, 마음에 담아두었다. 그리고 두 계절이 지난겨울, 그때 함께 있었던 친구의 블로그 글을 보게 됐다.


 

새로운 걸 시도하고 실패하고 울기 그러고 곧 다시 괜찮아진다

얘는 회복 탄력성이랄까.. 그 탄성이 너무 좋다

 


피아노를 치며 고전하던 나를 다른 친구가 가르쳐주고 있는 상황을 찍은 사진이 함께 덧붙여져 있었다. 이 글을 보고 머리가 띵, 했다.


내 절망과 무너짐과, 심지어 피아노와 관계없던 내 인생의 자조까지 섞은 나의 너무나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초라함을 모두 생생한 날것으로 지켜봤던 친구였는데. 그 아이는 나에게는 패배로 남은 기억을 회복으로 봐줬던 거다.


피아노를 다시 치지 않으면 그날을 이겨내지 못하는 거로 생각했는데, 그래서 그날이 떠오를 때마다 마음 깊이 계속 찜찜함이 남았는데. 이 아이의 코멘트는 그날의 내 경험을 좀 더 유의미하게 바꾸어줬다. 약간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목구멍이 시큰거렸다. 그래, 이런 친구라서 내 밑바닥을 가감 없이 드러냈었지.


 

“나는 왜 되는 게 없을까?”

 


일 년이 지났지만, 나는 이 생각을 아직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다. 괜히 그런 기분이 드는 날이 있다. 내 인생이 교통체증에 꽉 막힌 긴 터널 속에 갇힌 기분이 들 때가. 그러나 기계의 페어링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때나, 터널 속에 꽉 막혀 갇혔을 때나,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내 인생은 그렇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분명히 있다.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의 답답함과 할 수 있는 게 있어도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느끼는 답답함 중 어느 것이 더 힘들까?


나는 여전히 피아노를 못 친다. 그러나 나는 분명 어디론가 나아가야 한다. 지하는 끝이 없다. 추락과 비상은 한 끗 차이지만, 나는 이게 비상이라고 믿을 만한 일을 해야 한다. 어쩌면 실패를 한가득 쌓아두는 게 회복 탄력성이 좋은 걸까? 나는 수많은 실패의 늪에서 그래도 두 발 딛고 서 있다.


자의로 에세이를 처음 써 본다. 소설밖에 쓸 수 없는 사람이었는데, 최대한 힘을 빼고 노골적으로 써 봤다. 어렵고, 이게 제대로 된 글인지도 모르겠다. 한 단계 나아간 깨달음도 없고 깊은 사유도 없는데. 그래도 이 피아노에 대한 기록은 꼭 남기고 싶었다.


너희에게 피아노 연주로 되돌려 주지 못해서, 이 글을 너희에게 바친다.


내가 연주하고 싶었던 음악은 ‘돌이킬 수 없는 걸음’. 내가 요즘 비가역적이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거든. 세상 이치가 다 그렇겠지만, 나는 너희를 만나고 정말 비가역적인 상태가 되었어. 되돌릴 수 없는 나의 모든 걸음에, 힘을 실어주어 고마워.


언젠가 우리 다시 같은 동네에 사는 날이 있기를. 정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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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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